시 부문 심사평
시 부문 심사평
  • 성대신문
  • 승인 2009.12.21 02:08
  • 호수 14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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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우택(국문) 교수

과거 성대문학상은 성대 ‘스타 탄생’의 등용문이었다. 성대문학상이 발표되면 겸손을 빙자한 오만과 치기, 축하를 가장한 시기와 부러움이 캠퍼스 문학장에서 들끓었다.

예전만한 열광은 아니지만, 이번 성대문학상 시 부문에도 58명이 127편의 시를 보내는 성황을 이루었다. 작년에 29명이 52편의 작품을 응모한 것보다 두 배가 넘었다. 이런 열기에는 시를 쓰도록 하는 어떤 현상이나 사실이 작동하고 있을 것이다. 출로를 찾지 못한 청춘의 절박한 사연과 심정이 소통을 갈구하는 방식으로 시라는 형식을 호출해낸 것이었다.

그래서인지 이번 응모작들에는 “나의/ 지치고/ 병든/ 아픔”을 알아달라고 호소하고 애원하는 목소리가 넘쳐났다. 소통 부재를 호소하며 유폐된 자아의 실존적 고뇌를 표현하는 작품들이 하나의 경향을 형성하고 있었다. 투고 시를 심사하는 동안, 이 시대 청년 학생들의 막힌 전망과 지친 심신, 왜소한 실존적 처지가 느껴져서 안타까웠다. 그러나 시는 자기의 감상과 타협하고, 정신을 무장해제하고, 떠오르는 생각을 그냥 써 내려가는 것으로 성립하지 않는다. 안이한 넋두리로 상처와 절망을 넘어설 수 없기 때문이다. 자기 내면을 과장하거나 작위적인 언어들을 조합하거나 파편적 사유의 나열로 만들어진 이미지나 형상은 자기기만의 허상이기 십상이다. 

시라는 형식이 성립하기 위해서는, 먼저 나와 세계를 정직하고도 치열하게 대면하는 자세, 끝까지 관찰하고 탐구하는 ‘궁구(窮究)’의 자세가 중요하다. 그리고 언어의 적확한 선택과 배치로 고농축의 폭발력 있는 이미지와 의미를 생성해내는 성실성이 요구된다. 지구력을 가지고 사유를 끌고 가는 정신력, 용기를 가지고 모험을 감행하는 상상력도 필요하다. 이것들은 시를 잘 쓰는 방법이면서 잘 살아내는 방법이기도 하다.

이번 응모작들에서 아쉽게도 이러한 시적 덕목을 두루 갖춘, 반짝이는 작품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그 중 조아람의 <세안법>을 비롯한 네 편의 작품이 균질한 성취를 보이고 있었다. <세안법>은 오랜 숙련이 느껴지는, 언어와 이미지가 깔끔하고 깊으며 다층적으로 배치되어서 읽을 때마다 새로운 상상력이 펼쳐진다. 엄마, 단풍, 물은 긴밀하게 연계되어 의미를 생성하고, 의미와 이미지를 물질화한 ‘자갈’의 배치는 통쾌했다. 아련한 그리움과 원망과 연민과 안타까움의 감정이 중층적으로 교직되면서 다채로운 울림을 전해준다.

  서기슬의 <2호선 홍대입구행, 막차, 새벽 한 시>와 황건수의 <설중화>는 우열을 가리기가 어려웠다. 황건수는 절제된 언어로 단아한 풍경을 창조했다. 특히 걸어온 “발자국”이 꽃으로 피어난다는 통찰은 눈에 띄었다. 그런데 시상을 끝까지 밀어가지 못하고 “추억은 아름다운” 것이라는 상투적인 결론으로 환원하며 그 통찰은 빛을 잃었다. 서기슬은 “불 꺼진 전철 안”의 “새벽 한 시”라는 시공간을 조합하여 과거와 미래, 이곳과 저곳의 단절 속에서 길을 잃고 방황하는 젊음의 초상을 안정되게 형상화했다. 다만, 주제의 상투성을 극복할 치열한 사유가 보태지기를 기대한다. 권미진의 <귤>은 사소한 일상의 반복으로 살아남은, 청춘의 어정쩡한 시간적 단층을 투시하는 자세를 높이 샀다. 수상작에 들지는 못했지만 김수진의 <포도알>과 윤주환의 <지도 위의 산책>은 아마 다른 심사위원의 눈에 띄었다면 더 크게 주목받았을 수도 있다. 이밖에도 지면관계 상 언급하지 못한 작품들이 있다. 용기를 내어 정진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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