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명

기자명 성대신문 (webmaster@skkuw.com)
저와 6살 터울의 동생이 올해 대학에 들어갑니다. 비록 다른 학교지만 오빠이기에 앞서 대학생 선배로서 대학생활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다 문득, 불과 5~6년 차이임에도 제가 입학했을 당시와 지금의 학교 분위기가 사뭇 달라졌음을 느낍니다.

1학년 때 저는 학회생활을 했습니다. 어느 날 토론을 하다 ‘대학생의 역할’이라는 조금은 진부한 주제를 갖고 이야기를 나누게 됐는데, 그때 저는 목표 없이 시류에 휩쓸려 도서관에서 토익공부와 고시공부를 하는 이들을 비판하는 말을 했던 기억이 납니다.

08년 12월 제대를 한 후, 자연스럽게 가방에 계산기와 1천 페이지도 넘는 책을 들고 다니는 고시생이 됐습니다. 같이 OT를 갔던 11명의 선배와 동기들 중 6명은 저와 같이 회계사 공부를 하고 있고, 1명은 행정고시, 1명은 7급 공무원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작년 한해 제가 낸 학원비와 수험교재 값이 2백만 원 가까이 되는 걸 확인한 후 잘난 대학생씩이나 돼서도 여전히 학원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제가 한심스럽기도 합니다. 한편으로는 1학년 때 힐난했던 20대의 전형이 돼버린 지금의 모습이 조금은 씁쓸하지만 당장 눈앞에 빽빽하게 꽂힌 두꺼운 수험서를 바라보면 그런 생각조차 사치스럽게 느껴집니다.

같이 술 마시고 놀던 여자 동기들은 대부분 취업을 하거나 인턴을 한 상태고 얼굴을 볼 수 있는 친구들은 대부분 도서관이나 고시반에서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경영대 도서관에는 CPA 공부하는 친구들이 너무 많아 가끔은 숨이 막혀 중앙 도서관으로 자리를 옮겨 보지만 중급회계 책이 민법으로, 세법이 형법으로 바뀐 것을 빼면 그곳 분위기 역시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하루 종일 책과 인터넷 강의를 보다 밥을 먹거나 가끔씩 있는 술자리에서도 용산에서 철거민이 죽었다는 뉴스보다는 지겨운 수험 생활이나 합격 후에 펼쳐질 금빛 미래에 대한 이야기만이 오고갑니다.

이과를 선택한 동생이 학과 선택에 어려움을 겪는 모습을 보면서 지금 제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고시와 공무원, 자격증 공부를 시작하는 사람들이 대부분 그렇듯이 시험 합격 후에 찾아올 막연한 기대감 때문에 한손에 잡히지도 않는 무겁고 두꺼운 책을 보는 것 같습니다.

영하 10도 밑으로 떨어지는 방학임에도 도서관에 빈자리 찾기가 힘든 모습을 보면서 같은 학교 학생으로서 뿌듯함을 느끼기 보다는 쓴웃음을 짓는 건 비단 저뿐만이 아닐 거라고 생각합니다. 예전에 사법고시를 합격한 유명한 법관이 고시는 청춘의 무덤이라고 했습니다. 저는 청춘의 늪이라고 표현하고 싶습니다. 나도 모르게 빠져들게 되고 한번 빠지면 1년, 2년... 헤어날 수 없는 늪에 우리는 어느새 발을 담그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