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이은지 문화부장 (kafkaesk@skku.edu)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작품 속에서 ‘박식한 노동자’는 이미 이렇게 묻고 있다. '누가 일곱 문을 가진 도시 테베를 건설하였는가?' 그 어느 사료도 무명의 석공들에 대해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지만, 이 질문은 여전히 의미 있는 것이다."    -『치즈와 구더기』 이탈리아어판 서문


지지난 학기에 들은 <역사학입문>은 내 인생의 지침을 돌려놓은 수업이었다. 교양 과목의 특성 상 여러 교수님의 ‘역사학입문’이 존재하고, 수업 방식과 목적은 다양할 것이다. 그 중에서도 우리 수업은 평범한 이들의 삶을 통해 역사학을 마주할 수 있도록 했다. 이를 위해 우리 시대 역사학의 대표적 성과로 인정받는 역사책을 읽어가는 방식을 택했다. 인문학의 지형에 역사학이 어떻게 개입하는가를 살펴보는 것이 목적.

수업을 통해 접한 네 권의 책은 △미시사 △젠더사 △사회사 등 하나같이 오늘날 역사학계의 화두를 다루고 있었다. 이런 책들 중 특히나 내 마음에 쏙 들어온 책은 카를로 진즈부르그의 『치즈와 구더기』였다. 이 책은 16세기 이탈리아 시골 방앗간 주인 ‘메노키오’를 주인공으로 한다. 당대 평민들과 결코 다를 바 없던 평범한 그의 일상과 신변잡기, 무심코 한 행동들을 추적하며 그가 가진 독창적인 세계관이 교회라는 권위와 마찰을 빚는 과정을 그렸다.

우리는 으레 ‘역사적 인물’이라고 하면 나라를 길이길이 빛내며 혁혁한 업적을 세운 영웅, 천재를 생각하지 않는가? 그런데 우리의 메노키오는 친근해서 오히려 입체적으로 다가온다. 어찌 보면 ‘너무나 평범해서 쓸데없는’ 것들에 눈길을 준다. 그가 살던 프리울리 지방의 장소성과 지리적 입지, 자주 읽던 책과 그 책을 건네 준 사람, 그리고 이웃과 나눴던 시시콜콜한 대화와 지역에서의 평판에 이르기까지.

그런데 신기한 점은 이 과정에서 △당대의 이데올로기 △문화 △사회 변동 등이 자연스럽게 드러난다는 것이다. 메노키오와 손을 잡고 같은 눈높이에서 종속 계급을 무시하던 지배 계급의 오만, 그러나 인쇄술의 발달과 종교 개혁으로 독자적 문화를 형성했던 민중을 본다고나 할까. 이처럼 ‘미시사’는 개개인의 구체적인 일상과 행동, 그리고 마음을 면밀히 탐색함으로써 복잡다단한 사회 변동의 실상에 접근할 수 있다는 믿음을 전제로 한다.

메노키오와 함께함으로써 독자가 얻는 것은 단순히 미시사의 효용을 깨닫는 데 그치지 않는다. 비로소 자신이 사는 시대를 보는 새로운 눈을 갖게 되는 것이다. 해외 원자력발전 수주나 G20정상회의 개최와 같은 ‘역사의 기념비적’ 사건보다 청년들을 ‘잉여롭게’ 만드는 사회를, 물건값을 두고 옥신각신하는 아주머니들 등 가까운 삶을 관찰하고, 기억한다. 미셸 푸코는 모든 자료는 그것을 남긴 자의 기념비일 뿐 여기에 투영된 기념비성과 신화성을 도려내고 기록물로 환원해야 한다고 했다. 그가 지적한 것처럼, 그리고 브레히트가 박식한 노동자로 분해 던진 질문처럼, 이름 모를 일상에 깃든 진정성에 애정을 쏟는 것이다.

이번 호 신문에는 특히나 이런 애정을 느낄만한 기사가 많았다. 사회기획면의 슬로시티와 문화기획면의 도시 관련 기사가 그것이다. 정작 ‘슬로시티즌’의 목소리를 들어내는 데는 소홀했던 슬로시티에서 정부의 설계와 기획의 장막을 걷어내고 실체를 마주한 사회기획면. 낡으면 허물어 재개발되고, 돈 없으면 가난한 지역으로 쫓겨나는 삭막한 인간 사육장의 도시를 뒤집고자 한 문화기획면. 이 모든 기사들은 이름 모를 대중들에게, 그리고 당신에게 귀를 기울이고 있다. 아니, 이번 기획만이 아닐 것이다. 성대신문이 1479번 발행되는 동안 꾸준히 향해 있는 지점은 평범한 모든 학우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