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오페라의 유령> 속 오페라 <한니발>

기자명 이은지 기자 (kafkaesk@skku.edu)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은 △<레미제라블> △<미스 사이공> △<캣츠>와 함께 세계 4대 뮤지컬로 꼽히는 걸작 중 하나입니다. 프랑스의 동명 소설을 모태로 한 <오페라의 유령>은 최고의 음악과 비극적 이야기가 빚어내는 매혹적인 분위기, 그리고 웅장한 무대 미학과 특수효과 등으로 세계인에게 많은 사랑을 받고 있지요. 지난해부터 우리나라에서도 한국 배우들의 공연을 시작한 바 있습니다.

오페라 하우스의 유령이자 우리의 주인공인 ‘팬텀’의 가면 뒤에는 몹시 뒤틀리기까지 한 끔찍한 얼굴이 있습니다. 이 때문에 세상에게 버림받은 그는 사실 영혼을 채우는, 기묘하고 달콤한 목소리를 지니고 있지요. 자신이 지닌 천재적인 재능을 단지 외모 때문에 펼치지 못하고, 그는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유령’으로 살아갑니다. 일반인들에게는 수수께끼이며, 사랑하는 여인 ‘크리스틴’에게는 꿈속의 천사일뿐인 쓸쓸함. 그는 엄연히 존재하는 인간인데 말입니다. 이 기이하면서도 숙명적인 슬픔은 이야기의 매력을 극대화하는 요소이지요.

크리스틴을 향한 팬텀의 위험한 사랑이 빚어내는 팽팽한 긴장감 외에도 극 속의 오페라들이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오페라의 유령>은 1911년 파리의 오페라 하우스를 배경으로 펼쳐집니다. 그런 만큼 자연스럽게 극중극으로 여러 오페라가 등장하는데, △<한니발> △<일 무토> △<돈 주앙의 승리>가 바로 그것이죠. 웅장한 세트와 화려한 의상이 포함된 충실한 재현은 그 자체로도 하나의 완결된 오페라 공연을 보는 듯하다는 평가입니다.

그 중 초반에 등장하는 오페라 <한니발> 드레스 리허설 장면은 특별한 의미를 지닙니다. 모든 단원들이 합창하는 와중에 극장의 새 매니저를 맞는 상황인데요. 우리의 유령은 이 때 천정에서 무대 장치를 떨어뜨려 자신의 존재를 극장의 모든 이들에게 각인시킵니다. 도대체 왜 하필이면 이 장면일까요?

오페라의 그 장면은 카르타고의 장군 한니발이 나라를 구하고 온 것을 만백성들이 환영하며 반기는 모습입니다. 모형 코끼리가 나오는 화려한 무대로 경쾌한 느낌이 물씬 풍기지요. 실제로도 한니발은 코끼리로 알프스를 넘은 명장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뮤지컬에 나오는 늠름한 배우와는 달리 실제 한니발은 얼굴 반쪽이 일그러졌으며 전쟁에서 한쪽 발을 다쳐 절름발이었다고 합니다. 또한 한쪽 눈에 안대를 찬 그는 초상화를 그릴 때도 항상 성한 눈이 자리한 쪽의 옆모습만을 그릴 정도로 외모에 대한 콤플렉스도 어마어마했던 인물이라지요. 극장의 그림자 속에 숨어 살며 조심스레 천국을 동경하는 팬텀의 운명과 겹쳐보이는 부분입니다.

이런 팬텀과 한니발의 유사점과 함께 이 장면이 뮤지컬의 초반에 등장하는 것은 앞으로 극 전개에 있어 관객들에게 넌지시 실마리를 쥐어주는 것은 아닐까요. 한니발은 나중에 ‘전략의 아버지’로 불릴 만큼 전투의 여러 요소를 적절히 배합하는 능력이 있었습니다. 리더십 또한 뛰어나 통상적인 전투력보다 몇 배나 되는 힘을 끌어내는 천재였다고요. 그러나 비운의 명장 한니발은 뛰어난 능력에도 불구하고 전쟁에서 지고, 비참한 최후를 맞게 됩니다. 사랑하는 여인을 향한 팬텀의 흠모와 호소, 또는 위협은 어떤 결론에 이르게 되는지 궁금하지 않으신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