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과 교양’갖춰 사회 참여… 이들의 역할 오늘날에도 요구돼

기자명 고두리 기자 (doori0914@skku.edu)

“크나큰 고통을 겪어 이제는 행복해질 권리가 있는 인류의 이름으로 진실의 빛을 밝히는 것, 그것이 단 하나뿐인 나의 정열입니다. 불타오르는 나의 항변은 내 영혼의 외침일 뿐입니다. 나를 중죄 재판소에 고발한다 해도, 백일하에 나를 심판한다 해도 두렵지 않습니다”
-에밀졸라(Emile Zola)의 ‘나는 고발한다!’ 기사 中 -

펜은 칼보다 강하다, 에밀 졸라
 
때는 1894년. 알프레드 드레퓌스 대위는 독일대사관에 프랑스의 군사정보를 팔았다는 혐의로 유죄선고를 받는다. 내통한 비밀서류의 글씨체가 드레퓌스의 것과 비슷하다는 이유만으로 그가 스파이로 지목된 것이다. 다행히도 에밀 졸라를 비롯한 드레퓌스 지지파들의 투쟁으로 그는 억울한 누명을 벗을 수 있었다. 드레퓌스 사건을 운운할 때마다 항상 거론되는 인물은 단연 에밀 졸라다. 그는 신문 <로로르>지에 ‘나는 고발한다!’라는 기사를 기고하여 드레퓌스 사건에 대해 폭로한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그가 드레퓌스의 무죄를 밝히고자 한 것이 아니라 드레퓌스가 유죄선고를 받게 되는 과정에서의 불합리성을 얘기하고자 한 것이다.

에밀 졸라를 ‘지식인’이라 조명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그는 누구의 청탁이나 부추김도 아닌 오로지 자발적 의지에 따라, 정의와 진실의 추구만을 위해 어떠한 위험도 감수한다. 진실을 밝혀 소수의 전횡을 견제함으로써 여론에게 사회의 부당함을 알리는 사람, ‘펜은 칼보다 강하다’는 것을 몸소 보여준 사람, 그가 바로 에밀 졸라였다. 드레퓌스 사건은 프랑스 역사에 큰 변화를 가져온 만큼 그 배후에 많은 사건이 존재하지만, 여기서 우리는 이러한 것들을 배제하고 에밀 졸라를 표현하는 ‘지식인’에 초점을 맞추려 한다.

지식과 교양을 갖춘 사람
지식인이란 무조건 사회를 비판하는 사람만 지칭하는 것일까. 시인 김수영은 지식인에 대해 “지식인이라는 것은 인류의 문제를 자기의 문제처럼 생각하고, 인류의 고민을 자기의 고민처럼 고민하는 사람이다”라고 규정한다. 지식인의 능력은 개인이 아닌 사회 전체에 속한다는 것이 그들에게 특별한 책무를 부여하는 근거가 된다. 결론적으로 지식인이란 사회제도 자체에 문제의식을 갖고 비판하는 진보이든, 현 사회체제의 유지를 위해 노력하는 보수이든 간에 더 올바른 사회가 되기 위해 사회에 참여하는 사람들 모두를 아우른다. 

더 나아가 지식인에게는 그들이 수반해야할 능력이 있다. 사전적 정의에 의하면 지식인이란 ‘일정한 수준의 지식과 교양을 갖춘 사람’을 말한다. 여기서 지식을 갖춘 사람은 단지 학문적 지식만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한 사람들을 우리는 지식인이라 부르지 않고 ‘전문가’라 부른다. 지식인과 전문가, 이 두 종류의 사람들은 모두 사회가 요구하는 지식을 창조하고, 현상을 분석한다는 점에 있어서 다를 바 없다. 그러나 전문가는 대체로 분석과 관찰에 그치고 만다. 예를 들어, 그들은 노동문제를 연구하되 노동자의 억울한 수탈현상을 담담하게 분석하는 데 만족한다. 그렇기에 이들에게 악과 맞서 싸울 힘을 기대하기란 어렵다. 하지만 지식인은 노동자의 마음까지 이해하고, 공감하여 그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 이것이 지식인과 전문가의 차이다.

그렇다면 교양을 갖춘 사람은 무슨 의미일까. 『B급 좌파』를 쓴 김규항은 교양에 대해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의 옳고 그름을 따지고 그 뜻과 관계를 파악하는 능력”이라며 이를 실천에 옮기는 사람을 ‘교양 있는 사람’이라고 정의한다. 즉, 우리가 흔히 말하는 ‘교양을 쌓는다’는 문화생활을 즐기고 우아한 말과 행동을 일컫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분별력을 갖춘다는 의미다.
이제 우리는 왜 에밀 졸라가 진정한 지식인의 표상인지, 왜 그를 지식인이라 부르는지 알 수 있다. 그가 만약 글만 잘 쓰는 작가였다면 우리는 그를 지식인이라 부르지 않았을 것이다. 그를 지식인이라 부를 수 있었던 이유는 전문가로서의 글 쓰는 지식뿐만 아니라, 사회의 옳고 그름을 따지는 분별력, 즉 ‘교양’을 갖췄기 때문이다.

시대가 변해도 지식인의 역할은 변치 않아  
시대변화에 따라 지식인에 대한 학자들 간의 의견 역시 변하고 있다. 그에 따라 오늘날 지식인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을 보이는 학자들도 많다. 사회학자 프랭크 퓨레디의 『그 많던 지식인들은 다 어디로 갔는가』에서 그는 △지적 삶에 대한 시장의 영향력 증대 △지적 삶의 제도화 및 전문화 △미디어의 영향력 증가 △자율적 공공 영역의 감소 등으로 전통적 지식인이 몰락했다고 말한다. 학문적 출세주의가 지적 삶의 생명력에 큰 타격을 입혔다는 말이다. 사르트르도 우리의 관심이 실용적 지식을 갖춘 전문가를 양성하는 데로 쏠리게 됐다며, 오늘날은 지식인보다 전문가를 더 원하는 사회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 전북대 강준만 교수 역시 “대학마저 기업효율성의 지배를 받는 세상에서 지식인 개념 자체가 의미가 있는지 의문이다”며 생각을 표했다.

하지만 오늘날 지식인의 입지가 좁아졌다 한들, 이럴수록 이들의 역할은 더 중요해진다. 이들의 목소리가 개진돼야 우리 사회도 바람직한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중요한 건 시대가 변함에 따라 지식인에 대한 학자들의 의견은 분분하지만, 지식인의 ‘역할’은 변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오히려 이들의 사회참여 방법은 다양해졌다. 전통사회에서 지식인의 사회참여 수단이 단순하고 폐쇄적이었다면, 현대사회는 매체가 발달함에 따라 참여 방법이 다양해졌다. 이들은 사회 문제에 대해 책을 쓰고 블로그에 글을 올리는가 하면, 강연을 통해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어떻게 보면 오늘날 이들의 움직임은 예전보다 더욱 적극적이라 할 수 있다. 시대가 변한다 해서 지식인 집단에 새로이 요구되는 역할은 없다. 단지 이들은 앞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지식과 교양’을 갖춰 새로운 사회 변화에서 나타난 사회문제를 읽고 올바른 해결방안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