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플래시몹

기자명 고두리 기자 (doori0914@skku.edu)

어느 날 오후 5시. 서울 명동거리 한복판에서 마이클 잭슨의 노래가 흘러나온다. 갑자기 어떤 한 사람이 노래에 맞춰 춤을 추더니, 이어서 약속이라도 한 듯 다른 사람들도 춤을 추기 시작한다. 이내 춤을 추는 사람은 수십 명에서 수백 명으로 늘어난다. 노래가 끝나면 이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다시 아무렇지 않게 길을 걷는다. 이 퍼포먼스는 최근 국내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열린 마이클 잭슨 추모기념 행사로 세간의 관심을 받았다.

이처럼 서로 모르는 불특정 다수가 인터넷과 이메일, 휴대전화 등의 연락수단을 통해 약속된 장소에 모여 짧은 시간동안 특정행동을 취하고 제각기 흩어지는 현상을 플래시몹(Flash mob)이라 한다. 여기에 참여한 이들은 서로의 신상정보를 궁금해하지 않는다. 일상 속에서 일탈을 위해 만난 사이인 만큼, 불필요한 정보교류는 플래시몹의 설렘을 저하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온라인에서 마주했던 이들이 오프라인으로 나와 자신을 표현하고, 사람들과 소통한다는 것이다.

『참여군중(smart mob)』의 저자 하워드 라인골드는 오늘날 ‘군중’은 과거의 무지한 군중과 달리 인터넷과 휴대전화의 발달로 영리해졌다고 말한다. 이들은 공통의 관심사를 신속히 읽어내고 서로 간에 의견을 발신, 수신하며 공통분모를 찾아내 행동으로 옮긴다. 플래시몹 역시 ‘영리한 군중’이 만들어낸 새로운 문화현상이라 할 수 있다. 2003년 뉴욕 한 호텔 로비에서 군중이 동시에 15초간 박수를 치고 순식간에 사라져버린 것이 플래시몹의 시초다. 이후 플래시몹은 전 세계적으로 확산돼 다양한 형태로 행해지고 있다. 단순한 놀이문화로 시작된 플래시몹이지만 그 움직임은 상당히 조직적이다. 잘 모르는 사람들끼리 만나 단 몇 분 만에 조직적 행동을 만들어내고, 임무를 수행하고 나서 다시 익명 속으로 사라지는 것. 이는 사람들이 익명성을 불신하지 않고, 그 속에서도 소통할 수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valerio Pirrera

 
이처럼 플래시몹이 출현한 초기에는 단지 재미나 일시적인 호기심으로 행해지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일부 학자들은 이것이 일회성 이벤트에 지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수년이 지난 지금까지 플래시몹은 다양한 목적으로 변형돼 계속되고 있다. 플래시몹의 파급력을 이용해 일부 기업들이 마케팅으로 이용하기도 하며, 대중들의 새로운 여론 형성의 수단이 되기도 한다. 특히 후자는 최근에 활발히 일어나는 움직임으로, 플래시몹이 단순한 놀이에서 벗어나 이제는 사회적 메시지를 전달하는 도구로도 사용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작년 11월 14일에는 수능반대 플래시몹이 있었으며, 12월 3일에는 장애인의 날을 맞이해 장애인 차별금지를 위한 플래시몹 퍼포먼스가 열리기도 했다. 올해는 3ㆍ1절을 맞아 ‘대한민국 만세’를 제창하는 플래시몹이 진행됐으며, 곧 다가오는 6ㆍ2 지방선거에서 20대의 투표참여를 높이기 위해 충북유권자희망연대에서는 지난 19일 플래시몹 행사를 벌였다. 이처럼 플래시몹은 기존 사회운동과는 다른, 하나의 여론형성 방법론이 돼 사람들의 의식과 행동을 변화시키고 있다.

물론 플래시몹이 모르는 사람들과 한패가 돼 장소를 엉망으로 만들어 버린다며 부정적으로 보는 사람들도 존재한다. 무질서한 '군중'을 불신한다는 안티몹(Anti mob) 프로젝트가 대표적인 예로 이들은 '어느 날 17시 텅 빈 공원을 상상해 볼 것' 등 플래시몹과는 정반대의 행위를 제안하고 있다. 그럼에도 플래시몹이 주목받는 이유는 트위터, 미투데이 등의 소셜네트워크의 발달과 스마트폰의 등장으로 불특정 다수와의 관계가 유연해졌으며, 자기 자신을 표출하는 수단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인터넷 시대에 등장한 새로운 군중의 탄생, 그리고 이들이 만들어낸 새로운 놀이문화 플래시몹. 앞으로 더 기발하고 참신한 플래시몹을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