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토마스 크라운 어페어> 속 그림 <인간의 아들(The Son of a Man)>

기자명 김영인 기자 (youngin09@skku.edu)

주인공 토마스 크라운은 세상의 모든 것을 다 살 수 있는 억만장자입니다. 그러나 모든 것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 오히려 그의 삶을 따분하게 만들지요. 그는 단순히 삶의 긴장을 위해 미국 최대의 미술관에 있는 모네의 그림을 훔칩니다. 한편 그림을 되찾기 위해 파견된 보험수사관 캐서린 배닝은 기막힌 상황판단 능력으로 토마스를 범인으로 지목하고, 치열한 두뇌 싸움을 즐기면서 모든 일을 해결해 갑니다. 그녀와의 관계로 새로운 긴장을 얻은 그는 그림을 돌려주고 그간 벌였던 게임의 파트너였던 그녀와 즐거운 도피생활을 하게 됩니다.

영화 속에서는 한 그림이 끊임없이 등장합니다. 바로 르네 마그리트의 ‘인간의 아들(The Son of a Man)’입니다. 그림은 집착스러우리만큼 그를 따라다니고 있지요. 영화가 시작함과 동시에 등장한 이 그림은 그가 작품을 훔치고 수많은 군중 속에 섞여 유유히 미술관을 빠져나갈 때도, 그녀와 첫 만남을 가질 때도 계속해서 등장합니다. 특히 이 그림은 그가 그녀에 대한 신뢰를 입증하고자 훔쳤던 그림을 미술관에 되돌려놓는 부분에서 더욱 빛을 발합니다. 토마스는 검은 코트 차림으로 중절모를 눌러 쓰고는 관람객 속으로 사라져갑니다.

그를 지켜보던 수많은 경찰들이 정신을 차려 보니 미술관에는 똑같은 차림새의 남자들 투성입니다. 경찰이 토마스를 찾아 심문하지만, 그는 토마스를 흉내 낸 사람일 뿐입니다. 또한 마치 경찰을 비웃기라도 하듯 그가 들고 있는 가방 에서는 수십 장의 인간의 아들 복사본이 쏟아져 나옵니다. 극의 흐름을 극대화할 뿐 아니라 그림 자체로서도 의미를 갖습니다. 보는 이로 하여금 인간, 즉 우리 모두의 본질에 대해 생각하게끔 하는 것이지요. 그림 속의 남성은 검은 양복에 검은 중절모를 쓰고 연두색 사과로 얼굴을 가리고 있습니다. 그림 속 남성이 누구인지 분별할 수 없게끔 하는 사과는 단순한 과일이 아닙니다. 사악한 뱀의 꼬드김에 못 이겨 결국 먹고야 마는, 에덴동산 속의 사과인 것이죠. 그 사과를 아담과 이브가 먹음으로써 두 사람의 영생불멸의 삶은 마감되고 에덴동산에서 내침을 당합니다. 결국 신이 창조한 특별한 존재에서 하나의 나약한 존재인 인간이 되는 것이지요.

그림은 초현실주의의 대표자로 불리는 르네 마그리트의 작품으로 정확하고 현실적인 소재를 비현실적으로 배치한다는 평을 받으며 많은 이들의 상상을 자극해왔습니다. 현실 속에 존재하는 또 다른 환상의 세계를 표현한 것이죠. 그러나 영화 속에서 등장하는 주인공의 모습에서 우리는 인간 본연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인간의 기본 욕구 중 하나인 쾌락을 위해 사회질서를 어기는 그의 모습에서, 스스로 너무나 당당하지만 결국은 좋아하는 남자와의 아슬아슬하게 이어지는 관계로 인해 불같이 질투를 느끼는 그녀의 모습에서, 우리는 우리 스스로와 같음을 느낍니다. 겉모습이 어떠하던 우리 모두는 그 자체로서 욕망이라는 원죄를 내장한 삶을 사는 사람들일 뿐이지요.

경찰이 수많은 군중 속에서 토마스를 알아보지 못했듯, 우리 또한 그림에서 중절모를 쓴 남성의 얼굴을 평생 알 수 없을 겁니다. 그러나 그것이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사과를 접하기 전의 가장 순수했던 모습도, 사과를 먹고 변해버린 모습도 모두 우리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모두 얼굴이 사과로 가려진 인간의 아들들입니다. 그 모두를 서로 구별해내기란 얼마나 어려운 일일까요? 또한 얼마나 부질없는 일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