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엄보람 기자 (maneky20@skkuw.com)
장장 5시간에 걸친 논술시험과 오들오들 떨면서 치른 생애 첫 면접까지 마쳤던 날의 내가 생각난다.
온 정성을 다 바쳐 논술을 쓰고 나왔을 때는 비록 횡설수설 장황해 논리성이 부족하더라도 끝까지 펜을 놓지 않은 끈기가 가상해 곱게 봐주시지 않을까하는 기대를 했었다. 하지만 면접장을 나오는 심정은 정말 참담했다. 어느 것 하나 제대로 대답한 것이 없는 것 같았고 심지어 무슨 말이 내 입술을 통해 흘러나갔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았다. 낙방을 예견한 나는 언제나처럼 자기 합리화를 시작했다. 어차피 잘된 일인지도 모른다, 그 고생을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자고 파릇파릇한 새내기 때부터 하겠느냐, 이건 하늘이 내게 놀 수 있을 때 더 놀아두라고 주신 계시다 등등.
그래도 가시지 않는 씁쓸함에 못 먹게 되어 버린 감 찔러나 보는 심정으로 그 날 밤에 성대신문 홈페이지를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그러다 선배들의 수습일기를 보게 되었다. 아슬아슬 하게 쌓아올렸던 위안과 단념이 와장창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하늘같아 보이던 선배들의 풋풋한 수습시절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글들은 “이번에 떨어지면 2학기 때 또 지원하고야 말리라.”하는 의지를 활활 불태우게 만드는 동시에 제발 면접에서 망발을 일삼은 내가 합격하는 기적이 일어나기를 싹싹 비는 계기가 되기에 충분했다.
언제나 그렇듯, 나는 결정적인 순간에 또 한 번 운이 좋았다. 발딱발딱 가슴 설레며 읽었던 수습일기라는 것을 지금 내 손으로 쓰고 있으니 말이다. 수습기자 환영회 날엔 면접관이셨던 두 선배님들께 정말 진지하게 저를 왜 합격시켜주셨냐고 토끼 눈을 떴고, 혹시 인원이 부족해서 땜빵용으로 들어오게 된 것은 아닐까하는 의문마저 들었다. 기대할 수 없었지만 열망했던 일이 이루어졌기에 그만큼 기쁨도 컸다.          
막상 수습기자 생활을 돌이켜보니 어설프게 어영부영 지나가 버린 느낌뿐이다. 좀 더 많은 것을 배워둬야 했고, ‘수습이니까’라는 어리광 섞인 변명을 할 수 있었던 유일한 시간을 과연 나는 제대로 보낸 것일까. 자신이 없다. 하지만 이런 모양새의 회의는 신문사 생활 내내 매번 고개를 들 듯 하니 이쯤에서 접어두기로 하고 다가오는 준정기자라는 이름에 일단 기뻐하기로 한다. 내가 구상한 기획이 기자단의 입을 통해 논의되고, 내 이름을 매단 기사가 매주 실릴 자리가 생겼다는 사실. 어설프고 허술했던 내 수습기자 생활을 곱씹을수록 참으로 과분하게 느껴지는 보수다.
하루하루가 새롭고, 피곤하고, 벅차고, 즐겁고, 즐겁고, 즐겁다. 신문사에 꽁꽁 매여 여름을 뜨겁게 즐기지 못함을 한탄하다가, 쏟아지는 과제 분량에 쩍 벌어지는 입을 애써 다물다가, 완고를 갈구하며 또다시 오늘과 내일의 경계를 넘는 시계를 보다가, 아주 자주 난 지친다. 하지만 아주 자주, 아주 잠깐의 한숨 사이사이 분명 내 온 몸은 즐거워하고 있다.
미친 게 틀림없다. 미치도록 즐거운 게 틀림없다. 신문사라는 중독성 강한 세상에서 내일이 없는 사람처럼 사는 오늘, 어김없이 아이러니한 행복이 돋아나니 말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