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멘터리 <먼지, 사북을 묻다> 리뷰

기자명 김영인 기자 (youngin@skkuw.com)

“1980년 4월 21일 동양 최대의 민영탄광인 강원도 정선군 사북읍 동원탄좌에서 광부와 그 가족 6천여 명이 들고 일어났다.”
사건을 요약한 몇 줄로부터 다큐멘터리는 시작된다. 한 여대생의 우연한 발걸음에서 번진 시선은 상영시간 내내 집요하리만큼 사건을 쫓아다닌다. 결국 기록 속에 묻혀 있던 사북사건이 표면으로 떠올랐다.
강원도 사북에는 말 그대로 막장에서 일하는 광부와 그 가족이 있었다. 일한 만큼 받기는커녕 그들은 인간취급도 못 받으며 공공연히 자본과 어용노조에 농락당했다. 5억의 동원탄좌 투자 금이 1백20억의 수익금으로 불어나는 5년 동안에도 그들에게 돌아간 것은 한 달에 벌레 먹은 쌀 3가마가 전부였고, 그들의 이익을 위해야 하는 노조위원장은 회사로부터 ‘받아먹기’ 바빴다.
1980년 4월 21일. 오래 참은 물결일수록 거세기 마련일까? 벼랑 끝에서 일어선 그들은 누구도 막을 수 없는 존재가 됐다. 광부들은 몽둥이, 곡괭이 등으로 무장하고 경찰과 맞섰고, 사북읍 입구에 바리케이드를 치고 자신들만의 세상을 만들었다. 이 과정에서 노조위원장 부인에게 폭력이 가해지기도 했다. 그리고 계엄군에 의해 3일 만에 그들의 세상은 끝이 났다.
사건의 작은 국면이 전체가 되는 일은 비일비재하다. 사북사건 역시 마찬가지였다. 부풀려진 노조위원장 부인의 폭력사건은 며칠 사이에 광부들을 ‘가장 천한 노예’에서 ‘불순세력의 사주를 받은 폭도’로 만들었다. 사회는 그들을 빨갱이로 낙인찍었다. 그들을 범죄자로 규정지은 경찰들은 한밤중에 마을 전체의 전기를 차단하고 무작위로 마을 사람을 연행했고, 끌려간 사람들은 극심한 고문에 시달렸다.
고문에 의한 거짓 자백과 경찰의 보복 수사는 사람들의 몸과 마음을 병들게 했고 당사자들 간의 증오를 키웠다. 그리고 무엇보다 사건에 가담한 사람들은 스스로를 부끄럽게 여겼다. 사회의 부정적 시선 속에서 20여 년을 보낸 그들은 카메라 앞에 당당히 나서지 못했고, 사실이 아닌 것이 이미 사실로 됐기에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들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감독의 인터뷰 요청을 거절했던 사람들이 하나둘 진실을 밝히고자 모이기 시작했다. 20여 년 전 그날부터 울음을 멈출 수가 없었다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잊으려 했고, 모두 잊혀진 줄 알았지만 결코 그럴 수 없던 것이다. 40여 년의 먼지 더미 속 최소한의 ‘사람다움’이 드디어 세상 앞에 섰다. 고문에 못 이겨 서로를 고발했던 사람들은 길고도 긴 증오의 시간을 덮고 화해를 했다. 물기 서린 목소리로 트로트를 흥얼거리던 한 사람은 “살아생전에 내가 노래를 다 부른다”며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2002년 4월 현재 이원갑, 신경, 강윤호, 조행웅이 민주화운동 명예회복 및 보상을 신청한 상태이다.”
영화는 다시 몇 줄의 사건요약으로 돌아와 끝을 맺는다. 그러나 더 이상 단순한 사실만은 아니다. 이미 끝난 낡은 이야기라고 말하기엔 아무것도 변화된 것이 없고, 앞으로의 갈 길이 멀기 때문이다. 그들이 희망을 꿈꾼 지 이제 10년. 오늘도 역시 먼지 속에서 한 발을 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