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과캠 당구소모임 ‘매지션’

기자명 엄보람 기자 (maneky20@skkuw.com)

녹색 테이블 위로 공 세 개가 구른다. 점박이 노란 공이 테이블 벽을 세 번 두드리더니 미끄러지듯 빨간 공에 이마를 부딪친다. 누군가 분필로 갈 길을 미리 그어 놓은 것만 같아 보면 볼수록 신기하다. 가로 2,336㎜×세로 1,168㎜의 초록빛 세상. 이 공간을 움직이는 색색의 요술은 모두 자과캠 당구소모임 ‘매지션’의 소행이다.
시작은 단순했다. 당구치기 좋아하는 물리학도들의 친목모임이 학과 소모임으로까지 발전한 것. 그 후로 일 년 반이 흐른 지금, 다양한 전공과 학번을 가진 20여명의 식구들로 북적이게 됐다. 조남인(물리07) 회장이 들려준 ‘매지션’의 의미는 소박하고 명쾌했다. “당구를 칠 때 운으로 잘되는 사람을 보고 ‘얘 마법사야’라며 장난처럼 말하는데 그게 소모임 이름이 됐어요. 마술 부리듯이 잘 치고 싶다는 의미도 있고요”
소모임으로 출발했지만 그들의 나래 짓은 결코 작다 할 수 없다. 매주 3시간의 연습으론 성에 안 차서 이번 학기부터는 금요일 이론 세미나도 새로 생겼다. 선후배 간에 실력을 전수하고, 세미나에서는 세계적인 선수들의 경기를 보거나 공부한 내용을 토의한다.
회원들의 내공도 승승장구하는 중이다. 지난 5월 ‘한국대학당구연맹’이 주최한 ‘전국대학대항당구대회’에서는 단체전 우승 및 여러 수상실적을 올리며 매지션의 이름을 다시 한 번 세상에 알렸다. 이들은 수상의 기쁨에 취하기보다 많이 배우고 돌아온다. 대외적인 대회는 타 대학과의 교류 및 대규모 행사 진행과 운영 방식을 익힐 기회가 된다고.
오는 11월에는 매지션 주최의 세 번째 교내 당구대회가 막을 올린다. 올해 새 식구가 된 황선혁(공학10) 회원은 “소모임에 불과한 우리가 학교 전체를 대상으로 여는 행사라 자부심과 소속감을 느끼는 계기가 됐어요. 특히 대회를 주최하면서 우리 모임이 당구를 전문적으로 대하고 있다는 게 느껴지더라고요”라며 첫 대회의 소회를 되새겼다.
안타깝게도 매지션 회원들이 쉽게 모일 수 있는 공간이 없다 보니 여러 가지 제약이 따른다. 하지만 이런 자잘한 불편은 ‘우리 동아리방은 당구장’이라는 호탕한 우스갯소리로 날려버린다. 자비충당으로 교내대회 홍보 포스터와 부스를 마련해야 하고, 애써 붙이고 세운 그것들이 비바람에 엉망진창이 돼도 설움 따위 낮술 한 잔에 얹어 털어 넘길 수 있다. 이 모든 것이 좋아서 하는 일이기에 가능한 것이리라.
‘유일무이의 당구동아리’라는 이름이 탐날 법도 한데 조 회장이 말하는 소원은 엉뚱하게도 정반대다. “우리를 시작으로 당구동아리들이 많이 생기면 좋겠어요. 학과별로 리그전 한 번 열어보는 게 꿈이에요” 당구에서 배우는 인생교훈도 ‘진짜 많다’고 입을 모으는 이들의 얼굴에 순수한 열의가 어린다. 누군가에겐 시간 죽이는 놀이일지도 모르는 당구. 매지션에겐 배려와 정신력을 가르치는 선생이자 소중한 인연을 이어주는 월하노인이다. 해 떨어지고 잠자리에 눕자마자 천정에 당구대 그리기 바쁜 사람들. 공 굴러가는 것도 예뻐 보인다는 이 팔불출 마법사를 밤하늘의 별인들 달인들 말릴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