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현실적이지만 근거 있는 이론으로 거듭나

기자명 차윤선 기자 (yoonsun@skkuw.com)

쌀쌀한 바람을 피해 따뜻한 찻집에 들어왔다. 무엇을 주문할지 고민하다 마침내 당신은 카라멜 마끼야또로 결정한다. 주문하는 그 순간에도 쌉싸래한 아메리카노가 생각나지만 결국은 달콤한 커피로 주문한다. 여기서 잠깐, 당신이 두 종류의 커피를 모두 마실 방법은 없을까? 하나의 우주에서는 카라멜 마끼야또를 주문하고 또 다른 우주에서는 아메리카노를 주문할 수 있다면? 이렇게 선택의 순간 우주가 여러 개로 나뉘어 각 우주 안의 자신이 각각의 선택을 할 수 있다면, 이 사실을 믿을 수 있겠는가?


이처럼 가능한 모든 경우의 세계가 실제로 실현돼 두 세계가 ‘나란히’ 존재한다는 이론을 바로 평행 우주론이라 한다. 다중 우주론이라고도 불리는 이 이론은 1957년 미국 물리학자인 휴 에버레트(Hugh Everett)에 의해 처음 제시됐다. 끝없이 마주 보며 늘어서 있지만 절대 만날 수 없는 평행선처럼 평행 우주도 각각의 우주에 영향을 주지 못한다. 이는 마치 라디오의 주파수를 맞추는 것과 같은데 수많은 전파가 라디오 주위를 감싸고 있지만 라디오를 켜는 순간 라디오에 맞는 주파수는 단 하나이다. 지금 우리가 존재하는 이 우주는 매우 많은 라디오 주파수 가운데 하나에 불과하다는 의미이다.

‘슈뢰딩거의 고양이’로 탄생한 평행 우주론
평행 우주론은 슈뢰딩거(Erwin Schrodinger)의 사고실험을 배경으로 한다. 한 상자가 있고 그 안에 한 시간마다 분열 가능성이 50%인 원자핵이 있다. 원자핵이 분열하면 방사능이 방출되는데 이것이 감지되면 밸브를 열어 독가스를 내뿜도록 장치를 설계한다. 그리고 이렇게 장치된 상자 안에 고양이 한 마리를 넣는다. 한 시간 뒤 고양이가 살아 있을 확률과 죽어 있을 확률은 1/2로 같다. 양자역학쪹 입장에서 표현하자면 한 시간 후 고양이는 반은 죽어 있고 반은 살아 있는 상태다. 하지만 이는 현실세계에서는 존재할 수 없는 현상이므로 역설적이다. 이를 타파하기 위한 방법으로 평행 우주론은 색다른 해법을 제시한다. 원자핵이 분열하거나 분열하지 않는 두 가지의 경우가 존재하므로 한 시간 후 두 개의 우주가 생성된다. 즉, 살아 있는 고양이가 있는 우주와 이미 죽은 고양이가 있는 두 갈래의 우주로 나눠지는 것이다.

‘평균’평행 우주, 타임머신을 타다
그렇다면 평행 우주론의 증거는 어디서 찾아볼 수 있을까?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를 통해서 그 답을 찾아볼 수 있다. 지구는 현재까지 알려진 행성 중 유일한 생명체가 살고 있는 행성이다. △태양으로부터 떨어진 거리 △지구의 크기 △달의 크기 등 우연의 일치라고 하기에는 너무 절묘하다. 천문학자 휴 로스(Hugh Ross)는 “우주의 모든 상수들이 지금과 같이 적절한 값으로 세팅될 확률은 폐품창고에 태풍이 불어 닥쳐서 보잉747 제트기가 자동으로 만들어질 확률과 비슷하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평행 우주론으로 보자면 지구의 ‘축복’은 그다지 놀랍지 않은 사실이다. 단 하나의 우주에서 거듭된 우연이 일어난 것이기보다는 셀 수 없이 많은 평행 우주 가운데 가장 적합한 ‘평균’우주일 뿐이다.
이러한 근거를 통해 당위성을 얻은 평행 우주론은 타임머신에 관한 ‘시간 역설’을 해결한다. 자신이 태어나기 전의 과거로 시간 여행을 갔을 때 만일 자신의 부모를 죽인다면, 인과 관계상 미래의 나는 존재할 수 없는 모순이 생긴다. 하지만 평행 우주론을 적용하면 시간 여행을 하는 순간 새로운 우주가 탄생하고, 새 우주는 그 이전의 우주와는 별개다. 따라서 과거 속의 부모를 죽인다 하더라도 미래의 ‘나’가 사라져버리는 모순이 발생하지 않는다.

황당한 공상과학? 당당한 우주이론!
평행 우주론은 물리학적 이론으로 과학계에 거론되고 있지만 그저 공상에 지나지 않는 이론이라고 비난을 받기도 한다. 첫 번째로 새로운 우주가 생성될 때 에너지 불변의 법칙을 성립시키지 못한다는 주장이다. 우주를 탄생시키는 데 필요한 에너지가 어떻게, 어디서 생성되는지 반론을 제기한다. 두 번째로는 평행 우주끼리의 상호작용이 불가능해 새로운 우주의 탄생을 확인할 길이 없다는 점이다.
한편 평행 우주론 지지자들은 이러한 비판에 대해 변론한다. 우선 에너지 불변의 법칙에 위배된다는 주장에는 우주는 무(無)에서 창조될 수 있다고 설명한다. 우주에는 무한한 에너지가 존재하지만 그 에너지가 모두 양의 값을 갖지 않는다. 중력에는 에너지가 음으로 저장되기 때문에 우주 에너지의 총합은 0일 수 있다. 따라서 총 에너지가 0인 우주는 에너지조차 없는 무의 상태에서 탄생할 수 있는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 또 상호작용이 불가능하다는 점에 대해서도 반론을 제시한다. 두 파동함수쪹의 진동이 다른 물질일 경우 서로 영향을 줄 수 없다. 우리 우주와 다른 우주의 파동함수는 다른 위상을 갖고 있기 때문에 상호작용이 불가능한 것이다.

상상하라. 우주는 끝이 없을지니
평행 우주론은 다소 기괴한 생각에서 출발했지만 이미 많은 과학자들은 이 이론을 수용했다. 선택을 할 때마다 또 하나의 ‘나’가 생기고 각각의 삶을 살아가는 모습은 상상조차 가지 않는다. 아마도 선택의 분기점마다 만들어졌던 평행 우주는 가히 무한할 것이고 지금 이 순간에도 계속해서 만들어지고 있을 것이다. 다만 지금 우리 우주에 갇혀 또 다른 우주 속의 ‘나’와 소통할 수 없을 뿐이다. 물리학자 프랭크 월첵(Frank Wilczek)은 “나와 아주 조금 다른 무수히 많은 인간들이 평행우주에 살고 있으며 그들이 무언가를 관측할 때마다 또 다른 내가 생겨나서 각자 다른 미래를 경험하고 있다”고 했다. 여러 개의 내가 존재하지만 그 실체를 확인할 수 없다는 평행 우주론. 언젠가 여러 개의 내가 조우하게 되는 날이 올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