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화작가 장재록

기자명 성대신문 (webmaster@skkuw.com)

검은빛의 자동차 한 대, 맑게 빛나는 보닛 위로 어리는 나뭇가지에 자동차를 사랑하는 이들은 신선한 충격을 받는다. 마음속 깊은 곳, 잠자고 있던 소유욕을 자극하는 이 충격에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 자동차로 다가간다. 순간, 충격은 놀라움으로 전이되며 다시 한 번 감탄을 자아낸다. 어느새 자동차는 사라지고 먹의 농담과 붓의 스침만이 남았기 때문이다. 이 놀라움을 만들어 낸 사람이 바로 한국화 작가 장재록 씨다. 현대 물질들로 둘러싸인 도심 한가운데서 바로 그것들을 먹으로 담아내는 그를 만났다.


   
 
성대신문(이하:성) 미술에 많은 장르가 존재하는데 한국화에 뛰어들게 된 계기는
장재록 한국화 작가 (이하:장) 어렸을 때부터 그림에 관심이 많았다. 유치원에 다닐 때부터 미술학원에 다녔고 수채화, 유채화 등 많은 분야를 배웠다. 그러나 어릴 적부터 어머니가 서예를 하는 모습을 계속 봐왔기 때문일까, 나는 먹을 사용하는 분야를 받아들이기가 쉬웠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 때문에 서예를 어른들의 취미, 고상한 것이라고만 느꼈다. 결국 내 관심은 먹빛 그림을 그려내는 한국화에 머무르게 됐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동양학과를 전공하면서 먹의 스밈과 번짐이라는 것을 알았고 여기에 영감을 받아 한국화를 계속 그리고 있다. 

성 전통적인 것과는 다른 느낌인데, 작가가 그리는 한국화는 어떤 특징을 지니는지
장 보통 한국화라고 하면 산수화나 풍속화를 떠올린다. 먹색으로 표현된 곡선의 미, 그 안에 옛적 쉽게 볼 수 있던 모습들을 담아낸 그림이다. 눈에 보이는 모습, 그것을 자연스럽게 화폭에 담아내고 당시의 풍경과 사회를 표현했던 것이다. 그래서 나도 눈에 보이는 모습을 그리기 시작했다. 산과 물이 어우러진 풍경은 이젠 도시에서 보기 어렵다. 도시에 사는 내 눈에 보이는 모습은 빌딩과 자동차 등과 같은 현대물질 뿐이었다. 따라서 나의 한국화에는 당연히 도시의 풍경들이 담기게 됐다. 이런 풍경을 더 적절하게 표현하기 위해 한국화에 직선을 접목해봤다. 원래 곡선의 미가 살아 있는 것이 한국화지만 도시에는 직선의 미가 숨 쉬고 있지 않은가. 먹색의 사용 방법도 바꿨다. 전통적 한국화에서는 먹색의 변화를 중요하게 사용하는데 나는 먹색 간의 경계를 분명히 하는 것이다. 보통 세 가지 정도 농도의 먹색을 정해놓고 그것을 사용해 그림을 그린다.

성 특히 자동차를 그리는 데 집중하는 이유가 있는가
장 내가 그릴 그림의 소재를 정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현대적 한국화라는 분야 자체가 개척되지 않은 상태라서 내가 가야 할 길에 대한 사례를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가 가장 관심 있는 것을 그리기로 했다. 어떤 사람들은 오로지 고상한 멋을 풍기기 위하는 데 집중하여 소재를 찾기도 한다. 하지만 이 경우엔 겉모습에 집착한 나머지 진짜 마음을 담은 그림을 그리기 어렵다. 그래서 마음속으로부터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을 꺼내서 그림으로 표현키로 했고, 곧 자동차를 떠올렸다. 어려서부터 자동차를 좋아했고, 멋진 자동차를 보면 사진으로 남겨두곤 했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 날, 사진을 보며 자동차를 그려봤는데 내가 진정 좋아하는 것을 그리려니 마음이 굉장히 편했다. 이것이 결정적 계기가 돼 자동차를 비롯해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그리는 데 집중하게 됐다.


성 그림 속에 담긴 현대 도시의 모습을 어떻게 감상하면 좋을지 궁금하다
장 나의 그림을 보면 무엇을 그린 것인지 바로 알 수 있다. 나의 그림은 절대 어렵지 않다. 현대 문명에 대해 긍정적이거나 부정적인 시각을 그림 속에 담아내려 하기보다는 그저 있는 그대로의 풍경을 그림으로 옮겨내고자 한다. 뉴욕에 있는 작업실에서 맨해튼의 풍경을 그리고 있는 것도 같은 이유다. 잘 아는 곳을 그리려다 보면 그림에 나의 감정이 개입돼서 있는 그대로 그리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도시의 모습을 그릴 때는 진짜 그 도시를, 자동차를 그릴 땐 진짜 그 자동차를 보는 것처럼 똑같이 표현하려고 한다. 이렇게 그림을 완성하면, 그 그림에 대한 감상은 전적으로 관객의 몫으로 남겨줄 수 있기 때문이다. 관객들은 나의 그림을 보고 실재를 본 듯이 느끼면 된다. 전시회에 온 남성 관객들은 나의 자동차 그림을 보고 환호하기도 하며, 실제 자동차를 사러 갈 때처럼 기대와 호기심에 가득 찬 표정을 짓기도 한다. 여성 관객들은 보석 그림에서 그 아름다움과 소유에 대한 욕구를 느낀다. 이것이 바로 내가 바라는, 나의 작품에 담긴 현대 도시를 감상하는 방법이다.

성 박사 과정을 밟고 있다고 들었는데, 학업에도 열심히 임하는 특별한 이유가 있는지 알고싶다
장 그림을 그리는 것은 하나의 기술인 것 같다. 열심히, 또 많이 그리면 그림 그리는 실력이 나아진다는 것이 느껴진다. 그러나 학교에 다녀보니 그곳에서만 배울 수 있는 것들이 있었다. 선진들의 이론을 배울 수 있었는데, 더 중요한 것은 이론을 배운다는 자체가 아니었다. 기성의 이론을 배우고 연구하면서 다른 사람의 이론에 나의 그림을 얹기만 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직접 나의 길을 개척했을 때, 진짜 나의 그림이 나오기 때문이다. 아직 나의 그림을 정확히 규정짓지는 못했지만 배움을 통해 그 길에 다가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성 스스로의 길을 개척한 이야기, 우리 대학생들에게 살짝 공유해 줄 수 있을까
장 내가 대학생들을 만나면 자주 하는 말이 있다. 가장 좋아하는 것을 고민해보라는 것이다. 이를 위해, 먼저 관심 있는 모든 것들을 적어보라고 조언하고 싶다. 그리고 그것들을 비교해서 조금이라도 덜 관심 있는 것을 지우는 것이다. 이를 반복하면 정말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 내가 자동차를 좋아한단 것을 깨닫고 이것이 인생의 전환점이 된 것처럼 대학생들도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발견해낸다면 앞으로 무슨 일을 할 수 있을지 아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일을 즐기면서 돈도 벌 수 있다면 더 좋지 않을까. 다른 사람이 하는 것, 대세를 단순히 따르기보단 스스로의 길을 개척하라고 전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