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박하나 기자 (hana@skkuw.com)

구성진 목소리로 사랑을 노래하고, 인생을 노래하는 배우들이 무대를 가득울린다. 최근 한국의 오페라, 한국의 뮤지컬로 불리는 창극이 지루하고 재미없다는 편견을 깨고 새롭게 변화하고 있다. 전통의 박물관에서 뛰쳐나와 오늘의 관객들과 만나고 싶어 하는 창극에 귀 기울여 보자.

창극, A to Z
창극은 우리의 국악을 바탕으로 한 전통 가무극을 뜻하며 웅장한 궁중음악부터 각 고장의 정겹고 구수한 토속민요까지 한국 전통음악의 모든 음악적 소재가 사용된다. 광대 혼자서 부르던 판소리는 남창과 여창으로 나뉘었으며 이어서 각각의 배역을 맡아 부르는 대화창으로 발전했다. 신라 시대에 이르러서는 마침내 배우들이 창과 함께 사실적인 연기를 동반하는 창극이 그 모습을 갖췄다.
창극은 조선 시대에 판소리 이론가인 신재효에 의하여 크게 발전했으며 1902년 이인직이 협률사에서 종래의 1인 입창이던 판소리를 각각의 배역으로 분창하는 연출을 시도함으로써 지금의 창극으로 발전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창극은 판소리를 재료로 삼아 다양한 춤과 음악을 함께 들려주는 음악극으로 차별화됐으며, 1908년에는 최초의 창작 창극으로 불리는 <은세계>가 등장했다. 1933년 송만갑, 이동백 등 당대 최고의 명창 40여 명이 이끄는 조선 성악연구회와 전속극단 창극좌의 탄생 이후 △동일창극단 △반도창극단 △조선창극단 △화랑창극단 등의 여러 창극단이 속속 생겨났다. 그러나 1950년대부터 창극을 대체할 수 있는 본격적인 연극이나 영화, 유행가와 팝송과 같은 대중문화가 유입되기 시작하면서 창극은 대중들에게서 냉정하게 외면당했다. 그러자 1962년 창극의 위기를 느낀 정부는 설 자리를 잃은 창극을 보호하기 위해 국립극장의 전속단체인 국립창극단을 창단했다. 그 이후로도 창극은 대중의 관심을 되돌리지 못한 채 국립창극단과 국립민속국악원, 그리고 국내에 유일하게 남아 있는 민간 창극 단체인 한국창극원을 통해 그 명맥만을 이어왔다.

 

 

창극, 젊음을 수혈받다
그런데 최근 들어 창극계에 새 바람이 일고 있다. 국립창극단이 창극의 대중화를 위해 나선 것이다. 2006년부터 ‘우리 시대의 창극’을 부제로 삼아 공연을 시작한 국립창극단은 올해에는 다섯 번째 작품 <춘향 2010>을 선보이기도 했다.
또한 국립창극단의 <청>은 현재까지 60회 이상 공연됐으며 8만 명에 가까운 관객을 동원했다. 국내 공연 중에는 뮤지컬 <명성황후>가 10년 동안 1백만 관객 기록을 세운 적이 있지만 창극이 4년 만에 이런 기록을 세운 것은 처음으로 창극이 대중적으로도 성공할 수 있다는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준 사례가 됐다. ‘우리 시대의 창극’이 이렇게 인기를 끌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일까? 바로 무대는 물론 음악까지도 이전의 창극과 다른 형식을 꾀했기 때문이다. 창극의 현실을 개선하기 위해 보편적인 음악극으로서 뮤지컬의 요소를 과감하게 도입한 것이다. 또한 고전에서는 효녀나 열녀로 묘사되던 심청이나 춘향이를 자기주장이 있고 당당한 여성으로 변모시켜 현대에 걸맞은 새로운 주제를 만들어냈다.
이와 관련 국립창극단의 유영대 예술감독은 “그동안의 창극은 굉장히 중요한 콘텐츠임에도 불구하고 대중성이 부족했다”며 “당대의 관람객들이 중요하고 그들에게 다가가기 위한 의미로 ‘우리 시대의 창극’이라고 이름 지었다”고 대중성을 중시했음을 강조했다.
이러한 시도뿐만 아니라 국립창극단은 ‘젊은 창극’을 표방하는 실험적인 창극을 내놓으며 변화를 모색하고 있다. 초기에는 연극으로 유명한 작품인 <맹진사댁 경사>와 <산불>을 창극화해 큰 관심을 받았다. 또한 서양의 고전 『로미오와 줄리엣』을 소재로 선택하기도 했는데 <로미오와 줄리엣>은 외국의 명작을 가져온 번안 창극으로 창극의 범위를 넓히고 그 무한한 가능성을 보여줬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러한 색다른 소재의 선택 외에도 작곡과 편곡을 모두 새로 해 파격적인 변화와 함께 보다 호소력 있는 느낌을 살렸다. 현대적인 악기와 함께 편곡해 전통을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모던한 분위기를 담았다.
이에 대해 유 예술감독은 “기존의 고전을 소재로 하는 창극은 젊은 사람들에게 다가가는 데 한계가 있다고 생각해 조금 더 도전적이고 실험적으로 새롭게 시도해본 것”이라며 “젊은 창극의 경우 전체 관람객 중에 대학생 관람층이 제일 많은 편”이라고 설명했다.

전통에 뿌리 두고 세계를 꿈꾸다
작년 11월에는 판소리 1백 년 만의 혁명이라고 불리는 ‘3인 창극’ <심청전>이 생겨나기도 했다. 한양대학교 문화콘텐츠학과에서 1년 넘게 개발해온 3인 창극은 이해하기 어려웠던 한자어 대사를 누구나 쉽게 즐길 수 있는 우리말로 개작하고 전통을 고수하던 완창에서 벗어나 공연시간을 90분 내외로 재구성했다.
또한 3인 창극은 판소리와 창극의 단점을 보완했다. 먼저 1명이 모든 역할을 맡아 드라마의 효과가 약한 판소리의 형식을 벗어나 3명이 극을 이끌어 나간다. 여기에 여자 창자, 남자 창자와 함께 고수가 극의 진행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점도 눈길을 끈다. 또 3인이 만들어 가는 작은 창극은 판의 부활이라는 의미도 가진다. ‘판’은 관객과 창자의 소통이 이뤄지는 중요한 공간이지만 창극이 주로 대규모로 공연되면서 점차 그 의미를 잃어갔다. 이에 3인 창극은 ‘관람’만 하던 창극에서 벗어나 관객과 교감하는 ‘판’의 진정한 의미를 되찾기 위해 소극장 공연을 택했다. 여기에 공연 단가를 낮추는 효과도 더했다. 대규모 제작비와 출연진 등의 문제점을 효과적으로 극복할 수 있는 경쟁력 있는 창극 양식인 셈이다. 이러한 이점은 창극이 해외로 진출하는 데에도 유리하게 작용했다. 올해 1월에는 일본의 후쿠오카 사가현에 위치한 나고야 주 박물관의 초청을 받아 창극을 널리 알리는 첫발을 내디뎠다.
3인 창극 <심청전>을 연출한 정도연 창극연출가는 “기존의 어려운 사설을 현대적으로 바꿔 관객층을 확대하고자 했다”며 “또한 해외 진출 또한 염두에 둔 작품으로 우리나라의 문화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해외에 보다 손쉽게 우리 것을 알릴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네 인생이 굽이굽이 담긴 그 구성진 음색이 현대적 악기를 만나 아름다운 화음을 만들고 화려하게 빛나는 무대 위를 가득 메운다. 그 어디에 견주어도 부족함이 없는 우리나라 음악극, 창극이 더 많은 이들의 귓가에서 울려 퍼질 날을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