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 『이름 없는 자들의 도시』 리뷰

기자명 고두리 기자 (doori0914@skkuw.com)

2010년 11월 1일. 한 아이가 탄생한다. 아이가 태어남에 동시에 그 아이의 존재를 입증할 첫 단계가 시작된다. 그것은 바로 한 생명체에 ‘이름’을 부여하는 것. 출생신고와 호적에 이름을 올림으로써 아이의 실체는 법적인 존재로 인정받게 된다.  하루에도 수차례 이름이 탄생하고, 그 이름을 부여받는 사물이 존재한다.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던 사물이 이름을 불러주니 ‘꽃’이라는 의미 있는 존재가 된 것처럼 이름은 그 자체만으로도 생명력을 가진다. 이처럼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그것이 가지는 내면의 고유성보다 추상적인 존재인 이름으로 규정지어지는 경우가 많다. 가령 누군가를 떠올릴 때 우리는 이름을 매개로 그 사람을 형상화한다. 즉, ‘이름=실체’의 공식이 성립된다. 사물이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 순간 이름 역시 소멸한다. 여기서 말하는 소멸이란 실체가 사라진 무의미한 이름을 말한다.

이렇게 우리는 이름 짓기와 의미 되기를 수평선상에 둔다. 하지만 정말 이름 그 자체만으로 의미 생성이 가능할까? 이름만으로 모든 것이 설명될 수 있을까? 주제 사라마구의 『이름 없는 자들의 도시』에서는 이름이 가지는 그 특별함에 반기를 든다. 주인공 주제는 중앙등기소 말단 사무보조원이다. 이곳에서 그는 사람들의 인적사항이 담긴 서류를 정리하고, 산 자의 서류와 죽은 자의 서류를 분리하는 작업을 한다. 삶과 죽음을 이분법적으로 나누면서 죽은 자의 서류는 점점 깊숙한 곳으로 들어간다. 그에 따라 죽은 자 서류에 적힌 그들의 이름은 등기소 직원들의 머릿속에서 서서히 잊히게 된다. 이름이 소멸하는 순간이다.  어느 날 주제는 유명인의 호적을 꺼내다 한 평범한 여성의 인적사항이 담긴 문서를 발견한다. △이름 △성별 △생년월일만 적혀 있는 서류만으로는 그 여자가 누구인지 알 도리가 없다. 하지만 주제는 갑자기 그 여성의 정체성이 궁금해지고 그녀를 만나고 싶은 욕망이 생긴다.

단순히 호기심으로 출발했던 주제의 그녀 찾기는 사실 무의미한 도전일 수도 있다. 이름 하나만으로 다중 속 ‘그녀’라는 실체를 어떻게 찾을 수 있단 말인가. 하지만 주제가 무의미한 도전을 한 이유는-우리 자신도 그렇듯이-이름이 한 사람의 모든 것을 담고 있을 거라는 믿음 때문이 아니었을까.  오로지 이름만을 가지고 시작한 그녀 찾기의 종착점은 결국 그녀의 존재가 사라진 시점이다. 이름은 아무런 존재감이 없는 의미 없는 글자에 불과했다. “죽음이란 다 똑같은 거야. 누구도 피할 수 없는 것이고, 어차피 세상은 아무 의미도 없는 것을”. 책 속 대사처럼 모든 삶은 죽음으로 귀결되기에 우리가 태어나자마자 이름 짓기에 열중하는 것 자체가 무용지물은 아닐까.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그에 맞는 이름이 있지만, ‘모든’ 이름들은 결국 ‘아무’ 이름도 아니었음을. 마지막으로 앞에서 언급한 ‘이름=실체’의 공식을 수정해본다. ‘이름≠실체’. 그리고 결론은 ‘이름=이름’일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