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일(시스템) 교수

기자명 성대신문 (webmaster@skkuw.com)

얼마 전에 스위스에서 열린 국제 표준화 워크숍에 참석하고 돌아왔다. 워크숍의 주제는 “접근성(accessibility)과 표준화”였다. 3대 국제 표준화 기구인 ISO, IEC, ITU가 모두 참석하는 대규모의 회의였는데, 향후 모든 표준의 제정에 있어서 가장 중요하게 다룰 의제가 바로 접근성이다. 장애인과 고령자같이 신체적, 지적 기능이 떨어지는 사람들이 일반적인 제품과 시설물, 정보 등을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기본적인 기능이 바로 접근성이다. 접근성을 모든 제품과 시설물, 그리고 웹과 같은 정보통신 서비스에 반영함으로써 모든 사람들의 삶의 질(Quality of Life)을 높이겠다는 것이다. 접근성을 부여하면, 장애인과 고령자같은 사회적 약자들은 물론이고 일반인들도 사용이 편리해지는 장점이 있다. 즉 모두 다 Win-Win(윈-윈) 하게 되는 것이다.
애플의 아이폰 때문에 휴대폰 시장은 한동안 난리도 아니었다. 애플의 아이폰에는 멋진 디자인과 획기적인 앱스토어와 같은 서비스 이외에도 사용자들을 감동시키는 기능이 있는데, 설정 기능에 있는 “손쉬운 사용”이라는 메뉴가 바로 그것이다. 이 기능을 활용하여 장애인과 고령자 같은 특별한 사용자들이 자신에 맞게 화면을 조정하거나 글자를 읽어주는 기능을 활성화시킬 수 있다. 이 기능을 사용하면 전혀 앞을 볼 수 없는 시각장애인도 메시지나 메일을 확인할 수 있고 웹 페이지의 내용을 음성으로 들을 수도 있다. 삼성전자의 갤럭시S가 운영체제로 사용하는 안드로이드 운영체제에도 접근성 메뉴가 제공되고 있지만, 안드로이드 휴대폰은 아이폰과 달리 접근성 앱을 일일이 앱스토어에서 내려 받아야 한다. 한글로 음성을 읽어주는 TTS 엔진만 내장된다면 시각장애인이 아이폰에서처럼 메일이나 메시지, 웹 페이지 내용 등을 음성으로 확인할 수 있다.
일본의 통신회사인 NTT 도코모에서는 고령의 고객들을 위해서 동경 시내 한복판에 있는 서비스 센터에 고령자와 장애인들을 위한 상담소를 별도로 운영하고 있다. 여기에 가면 고령의 고객들에게 NTT 서비스를 제공하는 휴대폰에 대해 큰 글자와 그림으로 친절하게 만들어 놓은 사용설명서를 무료로 나누어 준다. 전담 직원이 고령의 고객에게 요금고지서의 내용을 자세하게 설명해주거나 확대해서 제공해주기도 한다. 또 시각장애인이 읽을 수 있는 점자 사용설명서도 무료로 나누어 준다. 우리나라에서도 고령이나 장애를 가진 고객에게 최적화된 유니버설 디자인 휴대폰을 무료로 보급하고 있다. 아직 최적화된 기술이라는 단어를 붙이기가 쑥스러울 정도로 접근성이 떨어지는 것이 사실이지만 말이다.
바야흐로 복지의 시대다. 그동안 음지에 가려져 있던 소수의 소비자 - 장애인과 고령자 - 들이 다수의 일반 소비자들에 포함되는 시대가 왔고, 이러한 추세를 스마트 기술들이 주도하고 있다. 애플의 컴퓨터와 아이폰, 마이크로소프트의 윈도우즈 운영체제, 토요타의 자동차 등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수많은 좋은 제품에는 언제나 장애인에 대한 배려가 겉으로는 잘 드러나 있지 않지만 분명히 존재한다. 이러한 기술과 제품을 통해 장애인들은 사회적 평등과 함께 행복을 누릴 수 있으니, 이런 제품들이야말로 진정한 명품이라 불려야 마땅하다.
고령화 시대에 맞는, 복지 사회에서 필요로 하는 인재의 양성은 이제 대학의 중요한 기능이다. 모름지기 대학생이라면 사회가 변화하는 방향과 필요로 하는 인재상을 미리 판단하고 스스로를 맞추어 준비할 수 있어야 하겠다. 아무래도 가까운 미래에는 ‘배려’가 바로 그런 인재상의 화두가 아닌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