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유영재 기자 (ryuno7@skkuw.com)

수습기자 시절 있었던 일련의 일들이 지금은 너무나도 희미한 기억으로 겨우 남아 있다. 시간을 탓할 것인가. 아니다, 몇 달 전만 하더라도 나는 여기서 최고가 되겠다는 욕심으로 가득 찬 겁 없는 수습기자였다. 그런데 기억은 거기서 멈췄다.
당시 나는 '최선'보다는 '최고'를 택했다. 욕심의 방향이 잘못된 것이다. 나는 수습기자 시절에 최선을 다했다고는 말할 수 없다. 대신 트레이닝 순간에 최고가 되기 위해 어느 정도 신경을 썼던 것은 사실이다. 다른 수습기자들과는 다른 관점, 다른 수준, 다른 어휘력의 트레이닝 과제를 해냄으로 돋보이고자 하는 욕심이 있었다. 다른 수습기자들에게 '어휘력이 다르다' 등의 칭찬을 들을 때 속으로 우쭐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 이상의 노력은 존재하지 않았다. 쉽게 들어온 돈은 쉽게 나간다는 말이 있듯, 나의 나태했던 수습기자 시절 쌓은 경험은 너무나 쉽게 내 기억 속에서 사라져버리고 있다(그렇다고 내가 최고의 수습기자였던 것도 아닌데 말이다).
겁이 난다. 지금 겪고 있는 수많은 경험들이 수 년 뒤에 일말의 기억으로 남아있기는 할까? 답은 쉽게 나오지 않는다. 이는 지금 준정기자라는 직함을 달고도 최선을 다하고 있는지조차 지각하지 못하는 비루한 나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문득 비교되는 순간이 있었다. 수험생 시절. 나의 수험생 시절은 최고보다는 최선이었다. 연세대를 꿈꿨던 나는 보다시피 목표에 다다르지 못했다. 한때 패배감과 좌절감에 몸부림치기도 했다. 하지만 난 적어도 우리 학교에서는 내가 가장 열심히 했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가시적인 성과도 있었다. 때문에 수험생 시절은 나에겐 하루 종일 공부방에 갇혀있어야만 했던 쓰디쓴 기억보단 최선을 다했다는 확신을 가질 수 있는, 그리고 내가 원하는 것을 위해 나아갈 수 있는 추진력이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해 주는 과거로 남아있다.
나의 향후 학보사 기자 생활도 훗날에 이런 기억으로 남았으면 하는 것이 지금 제일의 목표다. 비록 자랑스레 내놓을 만한 기사가 없더라도, 동료들에게 가장 훌륭한 기자로 기억되지 않더라도, 나는 그저 열심히, 오늘이 마지막인 것처럼 열심히 해야겠다고 다짐한다. 후에 누군가가 대학생 시절 가장 값진 순간이 언제였냐고 물을 때 '신문사 하던 때'라고 답할 수 있을 만큼. 물론 최선을 다한 신문사 활동으로 얻을 수 있는 자기계발과 내면적인 성장이 뒤따라와야 가능한 이야기다. 그러나 나는 믿는다. 최고와는 인과관계가 불명확하지만, 성장과는 뚜렷한 인과관계를 지닌 ‘최선’의 가치를.

물음표가 붙을 수도 있겠다. 수험생 시절엔 그렇다 치고, 왜 하필 스펙도 취미도 아닌 신문사 활동에 최선을 다할 생각인지. 최선을 다한 신문사 활동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가장 중요한 이유 하나를 꼽자면, 부서브리핑 문건에서 본 정광윤 전 기자의 글 때문이다. 이 글을 보고 받은 충격은 내가 수습기자 시절 얻은 가장 가치 있는 경험이다.
‘논객으로 이름난 몇몇을 제외하고 여러분들이, 대학생들이 사회에 대해 하는 얘기는 기본적으로 이미 나온 담론에 대한 2차적, 3차적 가공이다. 거기에 현실에 대한 뼈저린 인식은 부재하다. 아닌 것 같나? …본인 앞에 놓인 현실부터 똑바로 볼 줄 아는 사람이 비로소 그 밖의 것에 대해 심도 있게 얘기할 수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나는 대학교에 들어오고 나서 대학생이 가져야 할 기본적인 의식에 대해 고찰하고 그것을 갖추기 위해 나름대로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 글을 보고 난 뒤 내가 쌓았다고 생각했던 의식은 누구나 가지고 있는, 가질 수 있는 가공품으로 변해버렸다. 진정으로 사회에 대한 깊은 의식을 갖기 위해 당장 내가 속한 사회부터 알고자 뛰어다니는 것, 그것이 바로 내가 최선의 노력을 기울일 대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