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서민 위해 친환경 유기농산물 식단 고집

기자명 유정미 기자 (sky79091@skkuw.com)

이곳을 어떻게 찾게 됐느냐는 질문에 여인 넷의 수다는 끝이 없다.
“음, 뭐랄까요. 북극곰도 생각하고, 풀과 나무도 생각하고, 그리고 중요한 건 내 몸도 생각하다 보니 그냥 오게 되던데요”
“어우 정말, 그게 뭐야(웃음)”
“이 근처에서 일하는데 제가 처음 소개했어요. 산책하다 보니 어느 날 여기가 눈에 보이더라고요. 그냥 호기심에 문을 열었다가 지금은 이 년째 오고 있어요”
“처음엔 남기지 말아야 하는 점이 약간 낯설었달까요. 지금은 즐거운 마음으로 밥그릇을 비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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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5일 마포구 서교동에 자리한 ‘문턱없는밥집(이하:밥집)’을 찾았다. 곧 있으면 찾아올 손님들을 위해 음식을 준비하느라 무척 분주해 보였다. 그 와중에도 “사진기자님, 예쁘게 찍어주세요”하며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도시 서민 위한 밥집
밥집은 전북 부안 ‘변산공동체’를 꾸린 농사짓는 철학자 윤구병 선생의 뜻으로 시작됐다. △자연을 살려 우리까지 잘살 수 있고 △머리보다 몸을 쓰는 사람을 더 높게 생각하며 △도시서민들의 건강과 삶까지 책임질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던 것이다. 이러한 취지로 밥집은 가까운먹을거리(로컬푸드)ㆍ착한먹을거리(슬로푸드) 운동을 4년째 이어오고 있다. 그래서인지 밥값은 자신의 처지에 맞게 원하는 만큼만 내면 된다. 원래대로 계산하면 점심메뉴 비빔밥 한 그릇 원가가 5천 원 안팎인데도 손님들은 작게는 안 내는 사람부터 많게는 10만 원 이상을 내는 사람까지, 평균 2천 원을 지불한다.
“2007년에 윤구병 선생을 도와 밥집을 열게 됐죠. 모교인 성대에서 유학을 전공한 후 ‘한국철학사상연구회’에서 전통의학과 기(氣)에 대해 연구하던 중, 예방 차원의 먹을거리 전파를 생각하게 됐기 때문이에요. 밥집은 2005년 설립한 ‘민족의학연구원’의 산하기관이에요. 얼마 전엔 노동부로부터 사회적 기업으로 인증받았습니다”라며 민족의학연구원 김교빈 원장이 밥집의 설립 과정을 설명했다.

친환경으로 버무리는 건강한 맛

 

12시 땡, 손님들이 하나 둘 밀려들었다. 손님이 많은 날은 점심시간 1시간 30분 동안 남녀노소 불문 없이 90여 명이 찾는다고. 비빔밥 한 메뉴로 구성된 점심 차림은 소박했다. △국과 △나물 세 가지 △밥 위에 얹어 먹는 유정란 △요리하고 남은 재료로 구수하게 끓여낸 강된장뿐이다. 부족하면 더 먹을 수 있으나 남길 수는 없다. 절에서 발우 공양 하듯 빈 그릇에 숭늉과 무를 넣어 고춧가루 작은 알갱이까지 닦아 먹는 ‘빈그릇운동’에 동참해야 이곳의 식사는 끝이 난다. 이곳 모든 재료는 친환경 유기농 농법으로 자라난 것들이다. △두레생협 △변산공동체 △한살림 등 환경을 생각하는 공동체에서 모든 재료를 구입하기 때문이다. 작년 배추 파동에 계속되는 추위로 재료 값이 많이 올랐지만, 꿋꿋이 정직한 음식을 제공한다.
‘귀농운동본부’에서 일하는 박호진 씨는 이 집을 자주 찾는다. 모임 때문에도 오지만 자신의 철학과도 잘 맞아 서로 협력하는 기분으로 식사하고 간단다. “밥을 먹고 나면 뱃속이 편안하고 소화도 잘돼요. 자율적인 분위기도 정말 좋죠”라고 강조했다.
일하는 곳에서 받는 한 달 월급을 30만 원으로 팍팍한 생활을 하다 밥집을 알고 나서 형편이 나아졌다는 권은지 할머니는 매일 점심을 여기서 해결한다. “여긴 친구를 데려와도 가격 부담이 없어서 좋아. 혼자 사는 처지에 좋은 밥을 큰 돈 안 들이고 먹으니까 영양보충이 돼”
저녁상차림은 가짓수가 많고 가격이 정해져있다. △각종 전골 △잔칫상 △주안상세트 등 다양한 메뉴와 함께 친환경 전통주도 판매한다. 최근에는 방문자가 늘어 저녁 상차림으로 부족한 밥집 운영비를 메워 가는 중이다. 국물 내고 남은 △다시마 △멸치 △무는 간장으로 조려 ‘나머지 조림’이란 메뉴로, 김치를 썰고 남은 것으로 ‘꼬다리’ 전으로 재탄생한다. 그래도 남은 음식물은 지렁이를 이용해 퇴비로 만든다.

나눔과 비움 통한 도시공동체 형성
 
“아주 가끔 난감할 때도 있어요. 빈그릇운동에 대해서 내 돈 내고 이걸 해야 하느냐 화내시는 분들도 계시고요. 음식물 쓰레기를 안 남기려고 정토회(사) ‘에코붓다’와 협약 맺은 걸 두고, 종교적 색채가 있다 오해하시곤 꺼리는 분들도 계세요” 그래도 고영란 직원은 이 일이 보람차단다. “그렇게 화내시던 몇몇 분들이 다시 오세요. 원래는 일반 직장에 다녔는데 금전적, 정신적으로 별 보람이 없었죠. 직장을 그만두고 여기서 일하고부터는 저도 함께 발전하는 기분이에요”라며 건강한 삶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손님 중 어떤 분은 우리 집에서 자주 밥을 드시고 몸이 건강해졌다고 손수 편지까지 써주셨어요. 그때마다 자부심을 느낀답니다” 이영선 주방장은 처음 온 날 바로 일하기로 했다. 근무시간도 8시간으로 일정하고, 의료지원이나 샤워시설 같은 직원복지가 잘돼 있어 힘닿는 데까지 일할 계획이라고.
직원들은 돈을 내지 않는 사람들이 많아도 행복한 마음으로 이해한다고 한다. 의식주를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본래부터 금전적인 이익을 추구하지 않기 때문이다. 넉넉하지 않은 상황에서도 근처 ‘토끼똥 공부방’을 지원하고 있다. 인천 계양구에는 밥집 2호점이 생겼고, 3호점을 내겠다는 사람들이 종종 찾아오기도 한다. 3월부터는 여러 단체와 함께 ‘마포도시농부학교’를 운영할 계획이다.
도시는 삭막한 곳이라는 인식이 강한 오늘날, 식물 자체의 치유 능력을 믿고 자연이 순환하는 섭리에 따르는 사람이 늘어나 도시공동체 형성을 꿈꾸는 곳 문턱없는밥집. 이곳을 찾는 발걸음이 모두에게 보약이 되기를 꿈꿔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