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아이 엠 러브> 속 영화<필라델피아>

기자명 서준우 기자 (sjw@skkuw.com)

영화 <아이 엠 러브> 속 엠마와 안토니오
자기 자신을 꼭꼭 숨기며 사는 삶, 과연 얼마나 행복할 수 있을까요?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행동하고 하고 싶은 말을 다 하면서 살 수 있다면 참으로 좋겠지요. 하지만 우리는 그렇게 살아갈 수 없다는 것도 잘 알고 있어요. 우리를 구속하는 수많은 규율과 나와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들의 존재는 우리의 입을 스스로 막게 하고 머리를 조여 오지요. 그런데 그 넘을 수 없을 것 같은 벽을 넘는 순간, 혹은 침범받고 싶지 않은 나만의 공간을 잃는 순간 인간은 걷잡을 수 없이 타오르는 자신을 만나게 될지도 몰라요.
영화 <아이 엠 러브(I am love)>에서 엠마는 러시아에서 태어났지만 이탈리아의 재벌가문 레키 가의 며느리로 들어오게 됩니다. 엠마는 외로운 타지에서 세 남매의 엄마와 아내 역할을 훌륭히 잘 해내지만 명망 높은 가문에서의 생활은 그녀를 점점 지치게 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재능이 넘치는 요리사 안토니오가 파티를 맞아 집을 방문합니다. 엠마의 아들 에도는 안토니오를 맘에 들어 해 함께 사업을 구상하게 되고 이후 그는 집안 행사마다 찾아옵니다. 에도의 여자친구의 생일파티 날 안토니오의 요리를 맛본 엠마는 기쁨을 넘어선 황홀함을 온몸으로 표현하며 그가 다가와 말을 걸 때까지 음식에서 손을 떼지 못합니다. 이때부터 엠마는 그의 훌륭한 요리솜씨와 매력에 푹 빠지게 됩니다.
안토니오의 등장으로 변화가 찾아온 일상, 그녀는 우연히 세탁물의 주머니 속에서 딸 베타가 동성에게 사랑의 감정을 느낀다는 내용의 편지를 발견합니다. 그동안 딸과 남자친구의 다정한 모습을 지켜봐 왔던 엠마는 딸의 숨겨왔던 비밀에 잠시 혼란에 휩싸이지만 곧 그 고백을 담담히 받아들입니다. 그리고는 자신도 안토니오가 사는 곳인 산레모로 발길을 옮깁니다. 그리고 그동안 숨겨왔던 사랑을 그에게 뜨겁게 분출합니다.
영화의 후반부에 엠마가 침실에서 보는 영화 <필라델피아(Philadelphia)>에는 침범받은 자신의 영역을 지키려는 한 남자가 등장합니다. 필라델피아의 주인공 앤드류는 촉망받는 변호사지만 자신이 동성애자이며 에이즈 환자라는 사실을 숨기고 지냅니다. 그러나 어느 날 작성해오던 고소장이 마감 하루 전날 사라지고 자신이 해고됐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이 해고가 자신의 능력 부족이 아니라 자신의 비밀이 발각됐기 때문이라고 생각한 그는 이 처사가 부당하다고 여겨 라이벌 변호사 조에게 변호를 부탁합니다. 조는 앤드류를 위해, 또 소수자에 대한 사람들의 편견을 깨기 위해 해고가 위법이었음을 입증해냅니다.
엠마는 영화 속 앤드류를 보면서 어떤 생각을 했을까요. 두 주인공은 특정 인물 또는 사건이 계기가 돼 인생의 완벽히 새로운 국면을 맞이합니다. 엠마는 자신을 옭아매는 굴레를 집어던지고 감정에 충실하며 짧지만 이전에 맛보지 못했던 해방감을 만끽합니다. 앤드류는 숨기고 싶은 자신의 모든 것이 그를 비난하는 사람들에게 공개됐지만 결국 보란 듯이 승리를 거두지요.
사실 영화 속 엠마와 앤드류는 행복한 결말을 맞이하지는 못합니다. 하지만 희미하고 길게만 지속되는 인생보다 이들처럼 짧은 순간이라도 강렬하게 타오르는 인생이 때로는 우리에게 더 큰 희열을 주기도 합니다. 그것은 우리가 존중받고 싶어 하고 사회적으로 규정지어진 틀을 깨고 싶어 하지 않지만 가슴 한편에는 누구나 자유에 대한 갈망이 있기 때문일 거예요. 내가 바라는 만큼 다른 사람에게도 덜 엄격해진다면 각자의 불꽃이 분에 못 이겨 일순간 타오르고 곧 사그라지는 현상을 보는 일이 조금은 줄어들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