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차윤선 기자 (yoonsun@skkuw.com)

제러드 다이아몬드, 사이언스 북스
“저 구역질 나는 인간들은 한 달 중 아무 때고 섹스를 하더군. 자기가 뻔히 임신할 수 없는 상태인 것을 알고도 남편을 슬그머니 꼬이더라고. 아, 더 끔찍한 얘기도 있어. 세상에, 그 노인네들조차 섹스를 하지 뭔가? 대체 뭐하는 짓들인지 모르겠어. 그런데 진짜 이상한 건 바로 이거야. 다들 문을 닫아걸고 아무도 모르게 섹스를 하지 뭔가. 마치 무슨 죄라도 짓는 것처럼 말이야. 우리 같으면, 자존감을 지닌 개라면 누구든 떳떳하게 친구들이 보는 앞에서 관계를 가질 텐데 말이야”


위 대사는 저명한 생리학 교수 제러드 다이아몬드(Jared Diamond)가 저술한 『섹스의 진화』에 등장하는 ‘똑똑하다고 가정한’ 개의 대사 일부이다. 인간의 성생활이 지극히 정상적이라고 생각하는 우리들에게 일침을 가하는 말이 아닐 수 없다. 한 번이라도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던 사람이라면 이제 찬찬히 인간의 섹스에 대해 의문을 품어보자. 도대체 왜 인간은 이렇게 ‘특이한’ 성적 특성을 갖게 된 것일까?
앞서 말한 특이한 성적 특성이란 △1년 중 아무 때나 가능한 섹스 △인간 여성의 폐경 △남몰래 하는 섹스 등을 의미하고 이들 특성에 대한 의문에 작가는 진화적 입장에서 명쾌한 답을 제시한다. 뿐만 아니라 △남성보다 여성이 육아에 치우치는 현상 △여성을 포함한 암컷만이 참여하는 수유 △일부일처제, 하렘, 난교 등 동물들의 일반적인 성적 특성에 대해서도 상상 이상의 과학적 해설을 풀어놓는다.
그럼 지금부터 당연하게 생각했던 인간의 성적 특성 이면을 들여다보자. 예컨대 주위 많은 여성들은 자신의 배란일을 눈치채지 못한다. 우리 인간보다 훨씬 열등하다고 취급되는 원숭이나 침팬지, 심지어 개나 쥐들은 특별한 성교육을 받은 적이 없지만, 암컷 스스로 언제 배란이 일어났는지 느낄 수 있고 이를 수컷도 감지할 수 있다. 개코 원숭이의 경우 배란이 가까워지면 멀리서도 눈에 띄게 엉덩이가 붉게 물듦으로써 교미의 최적시기임을 알린다.
그러나 인간 여성은 자기 자신에게조차 배란일을 숨기도록 진화돼왔다. 작가의 설명을 따르면, 침팬지와 고릴라, 인간이 배란 신호가 약하게 나타나는 조상으로부터 분리될 때, 침팬지는 배란 신호를 더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고릴라는 그대로 약한 배란 신호를 갖도록 그리고 인간은 약한 배란 신호마저 나타나지 않도록 하는 진화의 길을 걸었다. 이는 인간이 택한 일부일처제와도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고릴라가 하렘을 이루고 침팬지는 난교하는 것과 분명히 대조되는 측면이다.
‘아빠를 집에’ 이론에 의하면, 여성이 배란일을 남편에게 ‘들키지’않기 때문에 남편은 수시로 아내와 관계를 맺으려 한다. 만일 개코 원숭이와 같이 엉덩이가 붉게 물들어 난자의 배란일임이 드러난다면, 아내의 배란일이 아닐 때에는 관계를 맺더라도 유전적 증식의 이득이 없으므로 남편이 외도를 할 확률이 높아지게 된다. 따라서 아빠를 집에 매어놓기 위한 수단으로 여성이 배란일을 숨기도록 진화해왔다고 설명할 수 있는 것이다. 더불어 저자는 여성 자신도 배란일을 모르게 된 것은 남편을 완벽히 속이기 위한 방법이라고 추측한다.
이렇게 작가는 어쩌면 자연스럽게 넘길 수 있는 전제나 가정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분석해 인간의 성을 요목조목 파헤친다. 사춘기를 지내고 성인이 된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궁금해하지만 비밀스럽게 또는 당연하게 여겨지던 성이 까발려지는 순간이다.
일단 호기심이 일었다면 더 이상 덮어두지 말고 제러드 다이아몬드의 이 책을 펴자. 작가가 제시하는 해설이 결코 쉬워서 술술 책장을 넘길 수는 없을지라도 넘어가는 쪽수만큼 서서히 성의 비밀이 벗겨지리라. 아 참. 책의 제목만으로 단순한 가십거리를 즐길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다면 이 책의 수준을 무시한 당신 자신이 부끄러워질 수도 있으니 주의를 요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