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엄보람 기자 (maneky20@skkuw.com)

정송이 기자 song@skkuw.com
잡지란 말 그대로 잡다한 것들을 모아 놓은 종이묶음이다. 그 얄팍한 갈피갈피를 탈탈 털면 다양한 목적을 지닌 이야기들이 쏟아져 나온다. 잡지의 끝에는 반드시 ‘이익’을 갈구하는 누군가가 서있기 마련. 하지만 요즘, 온전히 자신들의 목소리를 낼 수단으로 잡지를 선택하는 고고한 무리들이 생겨나고 있다. 독립잡지라는 자유로운 이름 아래 문화의 다양성을 살찌우고 있는 그들. 독립잡지는 누구이며 무엇을 원하고 있는가. 

왜 ‘독립’이며 어찌하야 ‘잡지’인가
잡지에는 여러 종류가 있다. 발행 기간에 따라 △주간지 △월간지 △계간지 △연간지로, 성격에 따라 △시사지 △PR지 △학술지 △홍보지 등으로 나뉜다. 하지만 최근 이런 익숙한 명칭들 사이로 혜성처럼 등장한 장르가 있으니 바로 독립잡지다. 독립잡지는 ‘셀프 퍼블리싱(self publishing)’에 기반을 두고 발간되는 잡지 형식의 소규모 출판물을 뜻한다. 특정 출판사나 거대 자본을 끼고 발행되는 일반 잡지들과 달리 뜻이 맞는 작은 공동체나 1인 체제로 운영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따라서 기획부터 제작, 배포까지 공수전환에 능해야 함은 물론이거니와 자금난과도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가 되기 일쑤다. ‘원수가 있다면 잡지를 하도록 부추겨라’, ‘독립잡지는 알면서도 적자를 향해 달려가는 일이다’ 등의 말은 그들의 고충을 대변해준다.
그럼에도 이들은 왜 ‘독립’을 선택했으며 하고많은 매체 중 ‘잡지’였을까. 독립잡지가 등장하기 시작한 배경은 인터넷의 보급과 밀접하게 맞물려 있다. 발행 2주년을 맞은 월간 독립잡지 <브뤼트(Brut)>의 김봉석 편집장은 상상마당 열린 포럼 ‘2010 독립적 목소리, 잡지를 말하다’에서 “인터넷의 보급으로 인해 커진 주류 문화의 힘과 그에 반기를 든 사람들의 세분화된 취향, 표현 욕구가 독립잡지의 탄생을 부추겼다”고 말했다. 인터넷이라는 매체 덕분에 관심분야의 정보를 쉽게 접할 수 있게 된 것은 사실이지만 주류의 목소리를 낼 수밖에 없는 매스미디어의 특성상 개인의 세분화 된 취향을 충족시키는 일은 불가능했다. 이에 따라 오히려 기존의 것과 다른 자신만의 시각과 욕망에 대한 발언권을 갖고자 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그들이 선택한 방법이 바로 형식과 내용에 제약이 없고 대중이 가볍게 접근할 수 있는 잡지, 그중에서도 타인의 간섭이 배제된 독립잡지였던 것이다. 일반 잡지가 순응해온 체제에 반기를 들고 만들어진 만큼 △담고 있는 주제 △소통의 방식 △제작 과정 또한 천차만별임은 당연지사. 범위 규정이 불가능할 정도의 개성, 그로부터 파생되는 다양성이야말로 기성 잡지와 구별되는 독립잡지만의 정체성이자 최대 장점이라고 할 수 있다.

구하기=별 따기?… ‘깨는’ 구성 돋보여
독립잡지는 수지가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서점을 비롯한 각종 판매처의 외면을 받는다. 고로 독자가 알음알음 발행인에게 연락을 취해 구독 신청을 하지 않는 한 잡지를 구하기도 어려운 경우가 다반사다. 다행히 최근 들어 독립잡지에 대한 관심이 날로 높아져 가는 만큼 독립간행물을 취급하는 장소들이 하나 둘 생겨나는 추세다. △상수동 ‘더북소사이어티(thebooksociety)’ △이태원 ‘포스트포에틱스(postpoetics)’ △혜화동 ‘이음’ △홍대 ‘유어마인드(yourmind)’ 등이 모두 다양한 독립잡지 및 소규모 출판 도서를 한자리에서 만나볼 수 있는 공간들이다. 특히 우리 학교 인근에 위치한 책방 ‘이음’은 5년 전 처음 문을 연 이래 꾸준히 독립잡지와 소규모 출판 서적을 취급하고 있다. 책방 지기 김한수 씨에게 독립잡지를 들여놓는 이유를 묻자 곧바로 “만드는 사람들을 위해서”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인디라는 이름에 자부심을 품고 배포까지 직접 하는 열정이 보기 좋아요. 재미있는 데다 찾는 분들도 있고요.” 그의 책방 한가운데 위치한 꽤 널찍한 매대 위에는 희귀하고 독특한 독립잡지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누런 종이에 빼곡한 검은 글씨에도 지레 질리지 않는 것이 신기한 흑백 잡지 <뚜껑>은 편집장의 말대로 ‘뚜껑스러운 무언가’가 있다. 의식의 흐름 기법을 사용한 듯 독특한 인터뷰, 거침없는 단어들이 인상적인 각종 리뷰 글 사이로 미니 픽션들이 맥락 없이 튀어나오는 구조는 그간 쌓아온 잡지라는 개념을 통째로 뒤흔든다. 딱 손바닥 하나 반만 한 크기의 <빨간뻔데기>의 존재감 또한 예사롭지 않다. 타박타박 넘어가는 책장 위로 △수묵화 만화 △의미 모를 사진 △자유분방한 전시회 설명 △커다란 문구 디자인들이 지나가는 모양새가 마치 어릴 적 갖고 놀던 요지경을 방불케 한다. <인디.진 2分>은 또 어떤가. 집어든 채로 얌전히 넘기면서 보면 여행과 관련된 이야기가 펼쳐지고 별안간 마음이 바뀌어 위아래로 훌렁 뒤집은 다음 넘기면 시와 책, 미술의 세계로 갈아탈 수 있으니 그야말로 이름에 충실했다고 할 수 있겠다. 우리 학교 미술학도들이 뭉쳐 발행했다는 <홍조로다> 또한 이곳에서 만나볼 수 있다. 이처럼 다양한 독립잡지 한 권의 가격은 대개 3천 원부터 7천 원 사이다. 김한수 씨는 “바코드가 없는 탓에 장부에 판매 사항을 일일이 기록해야 하는 번거로움도 있지만 응원의 의미로 종종 구매하는 분들이 있어 기쁘다”며 감회를 전했다.   

내겐 너무 무거운 독립의 무게
정식으로 출판과정을 거치지 않은 독립 간행물들은 일반 대형 서점에서 취급하지 않는다. 때문에 개별적으로 배부처나 판매를 대행해 줄 루트를 스스로 개척해야 하는데 발행 부수도 적거니와 수익률도 낮은 독립잡지를 맡아 팔아줄 이를 찾기란 현실적으로 하늘의 별 따기다. 서점 마진율과 잡지의 순수성 사이의 접점을 찾지 못하거나 지하철 매대의 엄청난 뒷돈 거래에 회의를 품은 독립잡지 발행인들이 결국 무료배포를 선택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실제 독립잡지의 운영 자금은 광고 수익으로 충당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며 판매를 통해 얻는 수익은 ‘대박이 나야 다음 호를 찍어낼 정도’라고. 고질적이다 못해 고리타분한 자금난, 유통 문제를 차치하고도 독립잡지임에 겪어야 하는 몸살은 이만저만이 아니다.
더 큰 자유, 더 적은 제약을 위해 선택한 대안인 독립잡지지만 모순적으로 ‘독립잡지’라는 이름이 족쇄가 되기도 한다. 색다른 것, 기존의 시각과 전혀 다른 획기적인 것을 추구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다룰 가치가 있는 소재를 무시하거나 수용자를 배려하지 않은 채 폐쇄성이 짙어지는 경우가 바로 그것이다. 게다가 홀로 기획이며 취재와 제작까지 도맡아 하는 1인 잡지는 다수가 기획회의나 토론 등을 거쳐 결과물을 내놓는 일반 잡지에 비해 관성화 된 인터뷰, 틀에 박힌 형식에 콘텐츠만 바뀌는 일이 되풀이될 위험성이 짙다. 타 요소의 영향을 받지 않는 장점 이면에는 자기논리에 갇혀버릴 가능성이 늘 산재해 있는 것이다.
내용적 측면뿐 아니라 구조적으로도 ‘독립’이라는 단어는 발행인을 괴롭힌다. 부산의 문화를 조명하는 지역 무가지 <보일라(Voila)>의 강선재 편집장은 “기득권, 인맥, 지연, 학연, 자본으로부터의 완전한 독립이 결코 우리의 바람직한 모델이 아니다”라고 역설한다. 지나친 독립을 추구하다가 ‘정기적이고 지속적인 발행’이라는 잡지의 기본적인 조건을 상실하거나 극단적으로는 발행을 중지하는 사태가 적잖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독립잡지는 잘 쓰면 약이 되고 자칫하면 목숨을 위협하는 독초마냥 만드는 이의 세심한 주의와 경계를 요한다고 할 수 있다.

문화다양성 도모하는 용감한 잡지
정기 발행을 2년 가까이 안정적으로 유지하거나 독창성이 유달리 돋보이는 독립잡지는 출판사나 잡지사로부터 러브콜을 받기도 한다. 하지만 그들은 ‘인디’라는 특권과 명예를 포기하지 않을뿐더러 위기에 처해 종말론까지 나오고 있는 종이 매체 또한 고수하고 있다. 독립잡지 포럼에서 편집장들이 밝힌 ‘종이 매체를 사용하는 이유’는 크게 △만질 수 있는 물질성을 무시할 수 없는 탓 △아직 세대교체가 덜 된 덕분 △포기할 수 없는 아날로그적 진심 등으로 압축됐다. 블로그며 소셜네트워크 사이트 등 실시간 쌍방향 소통이 가능한 매체들이 풍년을 이루고 있음에도 독립잡지를 펴내려는 움직임이 점차 늘어나고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어릴 적부터 손으로 책장을 넘기고 그 안의 정보를 공유해온 우리는 아직 종이매체에서 진정성을 느끼는 세대인 것이다.
여전히 △유통문제 △자금난 △지속성 등 구조적 개선이 필요한 부분이 적지 않지만 독립잡지가 비주류 문화의 다양성을 유지하고 풍요롭게 할 자양분이라는 점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이상을 위해 스스로 불모지를 걷고 있는 용감한 그들. 독립잡지가 우리나라 문화 예술계와 맞물려 거둘 시너지 효과에 기대를 모아본다.

*기사 내용 및 인용된 멘트 일부는 2010년 12월 KT&G 상상마당에서 개최한 제20회 열린포럼 ‘2010 독립적 목소리, 잡지를 말하다’의 도움을 받았음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