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서준우 기자 (sjw@skkuw.com)

오월동주(吳越同舟)라는 말이 있다. 서로 미워하던 오나라와 월나라 사람이 원하는 바를 위해 한배를 탄다는 뜻이다. 여기, 시너지효과를 노리며 전략적 동승을 시도하는 이들이 또 있으니 예술을 동경한 기업과 브랜드, 역으로 그들의 도움을 갈망하는 예술이 바로 그것이다. 21세기는 이를 ‘콜라보레이션’이라 명명했다. 콜라보레이션, 그 오묘한 이름 아래 무수한 분야들이 한 배에 오르는 사연은 무엇일까?

샤넬의 수석 디자이너 칼 라거펠트의 디자인을 입은 코카콜라 
콜라보레이션, 단순한 ‘합작’?
콜라보레이션은 말 그대로 해석하면 ‘협업’, ‘합작’이라는 뜻으로 서로 다른 두 가지가 만나 시너지 효과를 만들어내는 것을 의미한다. 음악에서의 공동작업 등 다양한 분야에서 널리 사용되는 말이었지만 최근 패션, 디자인을 비롯한 문화예술 분야에서 큰 인기를 얻으며 유행을 선도하는 ‘대세’로 떠올랐다.
「키워드로 읽는 오늘의 세상 2011 트렌드 키워드」에서 콜라보레이션은 culture 분야에 ‘슬로패션’, ‘에코투어리즘’ 등과 함께 이슈가 되는 키워드로 선정됐다. 이 책에서 콜라보레이션은 “기업들은 제품의 차별화 및 고급화를 꾀할 수 있는 아트 마케팅의 효과를 얻고, 아티스트들은 대중에게 친숙하게 다가설 수 있는 기회를 잡는다는 점에서 매력적인 윈윈 전략”으로 소개됐다.
유행이 되는가 싶으면 사장되고 마는 요즘 시대에 콜라보레이션이 그 나름의 입지를 굳힌 것은 이렇듯 콜라보레이션에 참여한 주체가 모두 이익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기업은 새로운 시장의 개척, 디자인의 다양화 등의 이점을, 아티스트는 작품 활동의 새로운 지평을 열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다. 이와 더불어 소비자들의 성향이 달라진 이유도 있다. 콜라보레이션은 고급화와 차별화를 추구하는 소비자들의 욕구 다변화와 기업의 판매 전략이 맞아떨어져 탄생한 결과물인 것이다. 덕분에 우리는 또 언제 새로운 조합의 상품이 등장할지 아무도 예상할 수 없는 시대에 살고 있다.

다양한 변신 속 새로운 가치
그렇다면 콜라보레이션은 어떤 형태로 나타나고 있을까? 콜라보레이션은 크게 기업과 기업의 콜라보레이션과 기업과 개인의 콜라보레이션으로 구분된다. 기업과 기업의 콜라보레이션의 대표적인 예로 베네통 자전거를 들 수 있다. 국내 자전거 제조업체인 알톤 스포츠는 베네통과 손잡고 ‘베네통 픽시’, ‘베네통 미니벨로’와 같은 제품을 출시해 같은 성능의 기존 자전거와 비교해 더 비싼 가격에도 선풍적인 인기를 얻는 데 성공했다. 국내에서 2007년 LG전자가 프라다와의 제휴로 프라다폰을 출시해 세계적으로 100만 개가 넘는 판매량을 기록한 전례도 있다. 둘 다 기존과 비슷한 성능의 제품으로 명품을 소유하고 싶어 하는 소비자의 욕구를 잘 겨냥해 성공한 예다. 명품 이외에도 H&M은 랑방(lanvin)과의 콜라보레이션, 유니클로는 캐스키드슨(cath kidston)과의 콜라보레이션을 통해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에 기존과는 차별화된 제품을 소비자에게 선보이고 있다.

H&M과 랑방의 협업 로고 ⓒK.clark

기업과 개인의 콜라보레이션도 이에 못지않게 다양하게 나타난다. 디자이너가 제품의 디자인 과정에 참여하는 방식이 주를 이루고 있는데 코카콜라가 샤넬의 수석 디자이너 칼 라거펠트와 합작해 다이어트 콜라에 △핑크 △화이트 큐빅 △실버 등 세련된 색을 이용한 디자인을 입혀 여심을 공략한 것이 그 예다. 이 밖에 루이비통이 유명 힙합 뮤지션 칸예 웨스트와 합작해 출시한 한정판 운동화의 경우처럼 전문 디자이너가 아닌 유명인사와 기업의 합작품도 눈에 띈다.
제3, 제4의 콜라보레이션 형태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화장품 분야는 디지털 기기와의 콜라보레이션을 통해 진동 마스카라와 같은 신제품을 만들어 제품의 기능적 발전을 이뤄내기도 했다. 또 BMW코리아는 지난 4월 2011 서울 모터쇼에서 서울시 무형문화재인 손대현 장인과의 콜라보레이션을 통해 차 내부 곳곳에 나전칠기를 입힌 특별한 BMW를 제작해 전통문화가 신선한 방식으로 현대에 적용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줬다.
우리 학교 이경현(디자인) 교수는 “상품에 문화예술의 고부가 가치를 부여하기 위한 기업의 노력은 단순히 작가와의 협동 형태를 탈피한 지 오래”라며 “콜라보레이션은 한마디로 정의하는 것이 어려울 만큼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고 전했다. 이처럼 콜라보레이션은 범위를 한정하기 어려워 오히려 앞으로의 발전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

예술로 뿌리 뻗는 콜라보레이션
콜라보레이션은 기업의 판매 전략으로 시작됐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러나 최근에는 문화예술 분야에도 진출해 상업과 예술 사이에서 활발한 교류를 펼치고 있다. 일례로 지난해 6월과 7월 KT&G 상상마당에서는 ‘아트 콜라보레이션 프로젝트’가 열렸다. 이 프로젝트에서는 16개의 브랜드가 16명의 작가와 만나 만들어진 다양한 합작품들이 전시되고 판매됐다. 인기 웹툰작가 이말년이 디자인한 ‘why’ 티셔츠, 멀티 브랜드 Feltics의 옷을 입은 페이퍼토이 등 신선하고 개성 넘치는 작품이자 상품들이 선을 보였다. 이처럼 작품 자체가 예술품으로서 전시되기도 하고, 상품으로 판매될 수도 있는 등 콜라보레이션은 예술과 상업 사이를 교묘히 넘나들고 있다. 한편 국내 화장품 브랜드 CLIO는 올해 ‘제5회 클리오 코스메틱 아트전’을 개최하기도 했다. 이 전시회는 우리에게 친숙한 화장품을 소재로 대량 복제시대에서 예술작품의 순수함을 △조각 △회화 △설치미술 등을 통해 전달하려 했다. 이처럼 콜라보레이션은 단순히 판매를 목적으로 하는 상품을 넘어서 문화예술을 매개로 대중과의 소통을 시도하고 있다.

콜라보레이션의 참 의미 찾다
콜라보레이션 상품은 기존 상품보다 높은 가격에도 찾는 사람이 끊이지 않는다. 그 이유는 콜라보레이션의 결과물이 실용적 의미를 넘어 특별한 작품으로서의 소장 가치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디자이너의 손을 거쳐 탄생한 제품은 수량이 제한적인데, 그 희소성이 오히려 소비자에게 더욱 강하게 어필하고 있다. 하지만 콜라보레이션을 상품으로서의 가치만으로 평가할 수는 없다. 콜라보레이션이 문화예술을 매개로 대중과 소통하려 하는 만큼 우리는 잘 알지 못했던 예술가의 작품 세계를 친근한 상품을 통해 접할 수도 있다. 또한 나전칠기와 BMW의 조화처럼 콜라보레이션으로 인해 가치 있는 전통문화가 새로운 빛을 볼 가능성도 충분하다. 이 교수는 콜라보레이션의 미래에 대해 “문화예술과 브랜드 간의 접합은 서로의 가치를 상승시킬 뿐 아니라 국가의 큰 재산이 돼줄 중요한 분야”라고 전망했다. 단순한 마케팅 전략이 아닌 서로의 가치를 업그레이드할 수 있는 합작이 계속돼 우리의 삶이 더 다채로워지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