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적으로 접근한 통일, "소통으로 인간다운 화합 추구"

기자명 황보경 기자 (HBK_P@skkuw.com)

누구나 통일의 필요성을 논하지만 그 뒤를 잇는 화두는 ‘경제적 비용’이다. 또 통일을 위한 선결과제가 무엇이냐 물으면 ‘경제적ㆍ정치적 포용’이라고, 이제는 초등학생도 입을 모은다. 그런데 여기에 중요한 하나가 빠졌다. 통일을 말하면서 정작 통일의 주체인 사람에 대한 이야기는 없는 것이다.

통일을 사회과학적 측면에서만 보면 어딘가 구멍이 생겨요. 그것을 메울 수 있는 것이 인문학입니다” 그래서 이들은 통일에 대한 담론에 인문학을 접목시켰다. 여기서 ‘이들’이란 건국대학교의 통일인문학연구단을 말한다.
지난 2008년, 건국대 문과대 교수들은 통일이 인간의 진정한 화합이 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인문학이 필요함을 절감했다. 이에 따라 그들은 통일에 대한 담론을 인문학적 측면에서 진행하는 ‘통일인문학’을 제시한 것.
그렇다면 이들이 개척한 ‘통일인문학’이란 과연 무엇일까? 그것을 자세히 들여다보기 위해 통일인문학연구단의 단장인 건국대 철학과의 김성민 교수를 만났다.

통일인문학연구단장 김성민 교수

우리는 같은 사람이다
우선 수많은 학문 중에서 왜 인문학이 선택됐을까? 김 교수를 비롯한 연구진이 연변대학교에서 열렸던 학술대회 ‘두만강 포럼’에 참여했던 때였다. 당시 포럼에는 북측의 학자들도 참여했는데 그들과의 만남은 연구진을 두 번 놀라게 했다.
“일단 남북한의 인문학은 연구 대상부터 내용까지 서로 너무나 달라요” 김 교수는 설명했다. 그런데 분단의 결과를 새삼 느끼던 연구진들이 더욱 놀랐던 것은 대회를 마친 후 북한 학자들과의 대화에서였다. “학문적 연구는 달랐지만 동일한 민족이라는 의식 때문에 정서적으로는 그들과 금방 소통할 수 있었습니다” 바로 이것이 통일이라는 담론에 인문학을 끌어들인 이유다. 우리와 그들 사이에 같은 사람, 특히 같은 민족이라는 공통분모가 있음에도 현재까지 나온 대부분의 통일 담론은 모두 체제적 통일이나 경제적 포용에만 국한됐고 ‘인간 통합’에 대한 고찰은 턱없이 부족했던 것.
따라서 이들은 진정한 통합의 핵심을 ‘사람 사이의 소통’에서 찾기로 했다. “이것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 생겨나는 감정에 관한 것입니다. 감정의 문제는 인문학적 차원에서 다뤄져야 하죠”

소통과 치유로 인간다운 화합
이에 따라 결성된 통일인문학연구단은 연구부를 △사상이념 △정서문예 △생활문화의 세 팀으로 나눴다.
우선 철학자들로 구성된 사상이념팀은 ‘통일을 해야 하는 이유’와 같이 가장 기초적 질문을 인문학적으로 재조명한다. 즉 ‘분단됐으니 통일을 해야 한다’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사람이 사람 대접을 받으며 진정한 화합을 이룰 수 있는지를 연구하는 것이다. “통일을 인식론적으로 다시 고찰해보는 것입니다. 매우 원론적이고 기초적인 작업이지만 원론이 있어야 각론도 존재할 수 있어요”
이와는 달리 문학 전공자들로 구성된 정서문예팀은 전쟁과 분단을 겪으며 사람들이 받은 상처와 트라우마를 문학적 차원에서 치료하는 데에 초점을 둔다. 치료 대상에는 남북한 주민들 뿐 아니라 여러 역사적 요인 때문에 세계 각지로 흩어진 해외 동포들이 포함된다.
예컨대 일제 때 연해주나 간도로 갔던 이주민들과 이들의 후손, 탈북자들의 트라우마를 유형별로 분석해 그 원인을 규명하고 치료 방법을 모색하는 것이다. 치유의 방법에 대해 김 교수는 “다름 아닌 소통”이라며 “직접 만나서 서로의 삶과 그 역정에 대해 대화하고 그 때 느끼는 카타르시스를 통해 상처를 보듬는 것입니다”라고 설명했다.
한편 역사학자와 북한학자가 주를 이루는 생활문화팀은 분단 이후 달라진 생활 풍습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연구한다. 어떻게 하면 다름을 다름으로 인정하면서도 두 삶의 문화를 새롭게 통합할 수 있을지 논하는 것이다. “서로 같아지는 걸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다름이 대등하게 양립하는 것이죠. 이렇듯 인문학은 감성적 차원에서 출발합니다.”
이처럼 통일인문학은 소통과 치유를 중심으로 인간다운 화합을 추구한다. 실제로 연구진은 체계적인 연구를 위해 일 년에 수차례씩 하와이와 만주 등지를 오가며 각지에 흩어진 7백5십만 명의 동포들을 만나 설문조사를 실시하고 그들과 직접 소통했다.
그러나 세계 각지를 도는 작업에 어려움 또한 적잖다. “과학적 서베이를 위해 더 많은 연구진이 필요한 것이 사실이에요. 또한 국내에서는 통일이라는 주제가 때론 민감하게 다뤄져 연구 내용을 표현하는 데 어려움을 겪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발전 전망은 매우 긍정적이다. 통일인문학연구단은 출범 후 2년 동안 10번 이상의 국제ㆍ국내 학술 심포지엄을 열고 열 권을 웃도는 연구 총서를 발간하는 등 많은 양의 성과를 냈다. 또한 이들은 한국연구재단의 ‘인문한국(HK) 지원사업’에 선정됐으며 지난 6월에는 한국과 북한, 외국에서 발간된 3천여 권의 도서를 갖춘 ‘통일인문학도서관’을 출범했다.

정송이 기자 song@
인류의 가치를 제시할 때까지
현재 연구단이 진행하고 있는 연구의 주제는 ‘민족적 공통성이란 무엇인가?’이다. 이를 위해 중국과 일본의 이주민을 대상으로 설문을 실시하고 있는데 결과물은 내년 8월쯤 나올 예정이다.
또한 이들의 궁극적 지향점을 물었다. 이에 김 교수는 ‘온전한 한국학’의 정립을 가장 먼저 이야기했다. “남한에서는 한국학, 북한에서는 조선학이라 불리는 서로 다른 한국학이 진행되고 있어요. 그러나 이것은 반쪽에 불과합니다. 이들 모두를 아우르는 온전한 한국학 혹은 조선학을 재탄생시키는 것이 필요해요”
나아가 통일인문학은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실천하는 방법론이 될 수 있다. “현재 분단을 겪는 나라는 전 세계에서 우리나라가 유일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민족이 이러한 연구를 더욱 발전시킨다면 결국 ‘인류는 이런 가치관을 지향해야 한다’는 것을 말할 자격을 갖는 것이죠.”
그렇다면 통일이 된 이후에는? 혹시라도 통일 이후에 이 학문이 사라질 것으로 예측했다면 큰 오산이다. “통일이 된 이후에는 할 일이 더욱 많아집니다. ‘다름을 인정하면서 어떻게 서로 인간답게 살아가는 사회가 될까’ 하는 고민이 있는 한 통일인문학의 패러다임은 계속될 것이에요” 따라서 몇 년 후 ‘통일인문학전문대학원’의 출범도 기대해봄 직하다.
이들에게 있어서 통일은 어느 순간 탁! 하고 터지는, 장막이 뚫리고 휴전선이 걷히는 식의 사건이 아니다. 그것에 대한 담론을 준비하는 모든 과정이 이미 통일인 것이다. 김 교수는 덧붙였다. “우리에게 통일은 ‘현재 진행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