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김은진 기자 (eun209@skkuw.com)

‘러시아 문학’이라 하면 무엇이 가장 먼저 떠오르는가? 죄와 벌? 톨스토이?… 아마 대부분 어린 시절 필독서로 읽은 기억뿐일 것이다. 여름의 문턱을 넘어 스산한 가을바람이 불고 있는 어느 금요일 저녁, 서울의 한 평생학습관에서 러시아 문학 강좌를 운영하는 이현우 교수를 만났다. 추석을 앞둔 금요일인데도 불구하고 고등학생부터 어르신들까지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강의에 참석해 최근 불고 있는 인문학 열풍을 증명해주는 듯했다.
이날 강의에서는 러시아 작가 니콜라이 바실리 예비치 고골의 작품에 대해 같이 사유해보는 시간을 가졌다. 고골은 러시아 근대 문학을 만든 푸시킨과 함께 러시아 문학의 기본 토대를 이뤘다. 그는 20세기 러시아 최고의 극작가로 평가받았는데 그의 콤플렉스는 크고 긴 코였다. 그래서인지 그의 작품 속에 나오는 코는 상징성을 띈다. 이것은 대표 작품 『코』에서 두드러지게 발견할 수 있다. 이때 코는 △사회적 지위 △욕망의 상징 △지위에 대한 욕망 등을 나타낸다.

노원평생학습관 제공

『코』의 주인공 코발료프는 속물적 인물이다. 당시 러시아의 계급제도인 14등관제에서 8등관이었던 그는 자신의 지위에 대해 속물적인 만족감을 갖고 있었으나 5등관에 대한 욕심도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코발료프의 코가 없어졌다. 사회적 지위를 의미하는 코가 없어진 것이다. 코발료프의 코는 여차여차하다가 결국 주인에게 돌아오지만 제자리에 붙을 때까지 끝끝내 말썽을 피운다. 이런 황당한 상황은 코발료프에게 5등관이란 위치가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는 자신에게 5등관이 될 자격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 현실에 순응해 8등관으로 살아간다. “여기 코발료프와 비슷하신 분이 많이 계시지 않으신가요? 현실 타협적인 욕망, 속물적인 욕망… ‘나는 무엇이 되고 싶어’, ‘안되면 말고’… 이런 것 말입니다”라고 이 교수는 말했다.
하지만 『광인일기』의 포프리시친은 코발료프와 다른 형태의 욕망을 보여준다. 포프리시친은 하급관리의 대명사인 9등관이다. 그는 자신의 지위에 만족하지 않으며 자신은 매우 대단한 존재라고 생각한다. 게다가 나이차와 신분차에도 자신이 일하는 국장 댁의 딸 소피와 잘 될 것이라는 터무니 없는 욕망을 품고 있었다. 그런데 소피가 지위가 높은 사람과 결혼을 약속하자 그는 통제력을 잃어버린다. 그리고 “그가 뭐 그리 대단하다고. 그저 관직의 하나일 따름이지 그 이상 아무것도 아니다”라며 “나는 왜 이런 차별적인 구조, 차등적인 대우가 일어나는지 알고 싶다. 무슨 까닭으로 나는 9등관이어야 하는가? 어쩌면 나는 백작이나 장군인데 9등관처럼 보이는게 아닌가?”라고 주장한다. 여기서 이 교수는 “고골 작품 통틀어 드물게 볼 수 있는 똑똑한 주인공의 모습”이라고 칭하며 “굉장히 도발적이고 혁명적”이라고 언급했다.
목숨을 걸고 욕망을 이루려고 했던 포프리시친은 사회적으로 광인으로 취급되어 격리 수용되는 반면 욕망이 있었지만 쉽게 포기하고 순응한 코발료프는 잘 살아간다. 이에 대해 이 교수는 “작가는 이 두 작품을 통해 욕망을 가진 인간이 절제하지 않으면 필연적으로 파국을 맞이할 것이라고 말한다”고 설명했다.
이 강의를 통해 수강생들은 러시아 문학 작품 속 인물들이 당시 사회 속에서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으려는 욕망에 대해 깊게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또한 강의에서 이 교수는 작품의 내용을 설명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작품 속에 담긴 인물들의 모습과 지금 우리의 모습을 돌아볼 수 있도록 우리를 이끌었다. 이제 막 한 걸음 내딛기 시작한 가을, 욕망을 말하는 러시아 문학 두 편에 빠져보는 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