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성대신문 (webmaster@skkuw.com)

영화 “도가니”가 개봉 8일 만에 150만을 넘어서며 무서운 속도로 흥행을 이어가고 있다. 이 영화는 광주의 한 청각장애인 학교에서 실제로 벌어진 성폭행 사건이 그 소재다. 2005년에 벌어진 이 사건에 대해 영화를 본 관객들은 재수사를 요청했고, 경찰이 이를 수용하는 등 그 사회적 파장이 커지고 있다. 영화의 내용은 대략 이렇다. 무안의 자애학원에 부임한 서울 출신의 교사 강인호(공유분)는 학교 내에서 교장 및 교사에 의해 오랫동안 성폭행이 자행된 사실을 알게 된다. 고심 끝에 이를 지역 인권단체에 고발하게 되고, 이 사건이 미디어를 통해 알려지면서, 전 사회적 이슈로 커지게 된다. 피해 학생들을 대신해 성폭행 주범들의 처벌을 위한 힘겨운 법적 투쟁을 벌이지만, 결과는 기소되었던 교장 및 교직원의 ‘솜방망이’ 처벌과 학교 복귀라는 기막힌 현실로 되돌아 온다.
자칫 무겁고 상업성이 결여된 사회 비판물로 치부될 수도 있을 법한 이 영화가 이토록 놀라운 흥행을 기록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블로그에 올라온 평들을 보면 대개 우리 사회에서 들리지 않게 울부짖는 장애인들의 인권침해, 그리고 이들에 대한 국민적, 제도적 편견이 영화라는 예술 매체를 통해 잘 드러나고, 관객들에게 큰 감동을 주었다는 시각이 주류를 이룬다. 물론 이것도 맞다. 장애인들이 인권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고, 신자유주의의 확대와 맞물려 이들의 노동권과 인간답게 살 권리가 침해되고 있음도 널리 알려져 있다. 영화 속에서 ‘항거불능’을 좁게 해석한 법원이 성폭력 특별법의 원래 취지와는 달리 이 규정을 근거로 가해자들에게 무죄판결 내린 것이랄지, 현실에서 대부분의 기업과 정부가 장애인 고용목표를 달성하지 못한 것 등이 그 좋은 예들이다.      
그러나 나는 2011년 한국의 ‘도가니 열풍’을 좀 더 넓게 해석하고 싶다. 영화는 장애인 성폭력 문제를 넘어, 양극화, 청년실업, 학교체벌, 학생인권, 동성애, 사법개혁, 차별문제 등 한국이 당면하고 있는 어두운 단면을 잘 드러내고 있다. 영화의 현실 진단은 정확한 것이었고, 이러한 문제들의 심각성을 몸소 체험하고 있는 많은 국민들의 정서를 자극했다.  여론조사를 보면 한국인들은 우리 사회가 당면한 가장 큰 문제로 양극화, 실업 문제 등을 꼽고 있다. 학교체벌과 학생인권 문제는 중요한 사회적 이슈가 되었으며, 경제적 배경, 학력 등에 기반을 둔 차별은 사회통합을 저해하는 결정적 요소가 된지 오래다. 많은 한국인들은 그 어느 때보다도 경제적 개발에 드리운 어두운 그림자에 공포를 느끼고 있다.  
영화는 다양한 방식으로 경제적 취약계층으로써의 장애인들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13세를 갓 넘긴 청각장애아들은 고아이거나, 결손 가정의 구성원이라는 사실이 담담하게 그려진다. 교사 취업에 발전기금 명목의 금전 거래가 오가고, 교사에 의한 무자비한 학생 체벌이 학교 곳곳에서 벌어지는가 하면, 어린 남학생의 몸을 탐닉하는 남교사의 모습이 사실적으로 그려진다. 집시법 위반자에 대한 단호한 시위진압 과정은 한국 민주주의의 현주소를 그려보게 만들고, 금전과 학맥을 동원하여 판결에 영향을 미치려는 법집행관의 모습은 과연 한국에서 공정한 법집행이 이루어지고 있는지 반문하게 만든다.
관객들은 한국의 현실에 좌절한다. 성폭력과 차별관행에 치를 떨고, 부조리의 도가니를 보며 입을 다물지 못한다. 이것이 눈물로, 자조의 발언으로, 영화평으로 이어지고, 유례없는 사회비판물의 상업적 성공을 낳고 있다. 청각장애인 연두(김현수분)가 법정에서 청각테스트를 받는 장면에서는 우리는 우리가 얼마나 정상과 비정상을 나누는데 익숙하고, 흑백의 논리로 세상을 바라보는지 개탄하게 된다. 연두는 음악을 들을 수 없고, 그럴 수 없어야 하며, 연두가 음악을 들을 수 있는 건 정상인인 우리로써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 된다. 이 대목에서 나도, 다른 많은 청중들도 후회와 자괴감의 눈물을 경험한다. 이 아이들의 애처로운 처지가 우리 사회의 큰 단면은 아닌지 한번쯤 생각해 보게 된다.
지난 10년간 한국이 성취한 발전의 결과는 놀랍다. 10대 경제대국이 되었고, G20를 개최한 국가가 되었으며, 원조를 받는 국가에서 주는 국가로 탈바꿈 했다. 민주주의도 성취했고, 인권 분야에서도 비약적인 발전이 있었다. 그러나 한국은 여전히 소수자에 대한 침해와 차별이 만연한 사회로, 청년들이 일하기 어려운 사회로, 경쟁에서 뒤쳐진 자들이 재도약하기 어려운 사회로, 살집 구하기도 힘든 사회로 남아 있다. 분명 이 팍팍한 현실에 많은 사람들이 피로를 느끼고 있다. 이 피로감이 도가니와 같은 영화에 슬픔과 열광을 동시에 표현하게 만들고 있다. ‘광기의 도가니’가 ‘인권의 도가니’로 바뀌기를 간절히 희망하도록 만들고 있다.

구정우(사회)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