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가 윤광준 인터뷰

기자명 엄보람 기자 (maneky20@skkuw.com)

사진 정송이 기자 song@
 음악이 좋아 오디오에 관심을 쏟았다. 사진기 너머로 세상을 보는 게 좋아 셔터를 눌렀다. 존재를 확인하고 싶어 글을 썼다. 이렇게 ‘재미’에서 출발한 그의 행보엔 어느새 오디오칼럼니스트, 사진작가, 베스트셀러 작가 등의 수식어가 따라 붙었다. 그럼에도 ‘잡가’라는 수식어가 가장 좋다는 그는 “본인 요청으로 신문에도 잡가라고 하랬다고 해”라며 너털웃음을 짓는다. 한 분야에 구속되기보단 관심에 충실히 살고 싶다는 그. 윤광준 씨를 만났다.

엄보람 기자(이하 엄) 오디오 칼럼니스트로서는 어떤 일을 했나
윤광준 잡가(이하 윤) 모든 오디오에 대한 탐구. 일종의 비평 영역이라고 할 수 있지. 오디오라고 하는 장비를 평가하고 의미를 매겨주는 일이야. 지금은 저술 활동에 좀 더 비중을 두고 있지만 한 때는 가장 좋아했던 일이었지. 지금도 좋아하지만 그게 내 본업이라고 할 수 없어. 여전히 관심을 갖고 있으며 남들보다 조금 더 전문적인 애호가일 수 있는 분야라고 해둘게.

엄 오디오와 음악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윤 우리 아버지는 박봉에도 전축을 사서 음악을 들려주는 분이셨지. 어릴 때부터 난 음악을 듣는 부모님, 책을 읽는 부모님을 보고 자란거야. 근본적으로 탐미주의자 같은 기질을 좀 타고나기도 했고. 음악은 일종의 지적 호기심에서 시작한 것 같아. 문화적 동경 같은 거 있잖아. 저쪽 세상이 좀 더 멋있어 보이고, 일상적이지 않은 것일수록 더 알고 싶고. 음악은 평소에는 느낄 수 없는 어떤 세계가 존재한단 사실을 어렴풋이나마 알 수 있게 해줘서 좋아. 좋아한다면서 모르는 게 너무 많으니까 화가 나더라고. 그래서 음악을 알려고 노력했지. 뭐든지 호기심이 자기의 영역을 키우고 만들게 한다고 생각해.

엄 음악이 좋아서 생긴 에피소드가 있다면
윤 결혼하고 첫 살림을 550만 원짜리 방 한 칸에서 시작했어. 그때 장모님한테 했던 말이 “혼수고 뭐고 다 필요 없으니 그 돈으로 전축이나 하나 사주시오”였지. 세상에 그런 미친놈이 어디 있겠어. 기가 막혀 하시기에 내 돈으로 샀지. 그 오디오가 500만 원짜리였다니까. 당연히 주변 사람들이 그랬지. 두 개 합쳐서 더 큰 데를 가라고. 나는 단호하게 아니라고 했어. 방이야 나중에 돈 벌어서 넓히면 되지만 당장 오디오가 없으면 어떻게 음악을 듣느냐 말이야. 그만큼 절실했던 거야. 라면 먹고 살수는 있는데 음악 없인 못 살 것 같은 강렬한 뭔가가 있었지. 

엄 오디오의 매력, 그리고 그 존재 이유인 음악의 역할은 무엇일까
윤 작곡가가 악보를 쓰면 연주자가 악기를 골라 표현해내잖아. 마찬가지로 녹음이라는 과학적인 방법으로 기록된 음악을 다시 꺼내 놓는 방법이 바로 오디오야. 연주자가 작곡가의 악보를 다양하게 해석하듯 오디오도 그 수준과 개성에 따라 음악을 다 다르게 소화해. 완성된 음악에 자신이 관여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는 점이 오디오에 홀딱 빠지게 만들어. 게다가 음악은 이상(理想)을 다루는 분야기 때문에 정말 중요해. 정량화된 현실 안에서는 꿈을 꿀 수가 없어. 근데 음악의 세계는 인간을 꿈꾸게 하거든. 저렇게 아름다운 선율을 만든 사람을, 그 무대가 됐던 나라를, 분위기를, 한 번 느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잖아. 이렇게 복잡하고 정신이 없는 세상도 음악을 듣는 시간만은 벗어날 수 있는 거야. 현실에서는 도저히 불가능한 것들을 이상의 세계가 오히려 해결해주는 것 같아. 

엄 경제적 부담을 감수하며 오디오를 소유하려는 욕망을 비난하는 시각도 있는데
윤 인간이 절실하게 좋아하는 걸 가지려하는 건 당연하다고 생각해. 특히 오디오는 음악이라는 절대적 가치를 충족시키기 위한 도구란 말이지. 내가 서른 살 즈음에 정말 갖고 싶었던 스피커가 있었어. 그 당시 전세 값을 빼도 못 살만큼 비쌌지. 결국 나중에 그거랑 비슷한 걸 샀는데 지금 생각하면 정말 바보짓 같아. 하다못해 강도짓을 해서라도 진짜 갖고 싶었던 걸 샀어야 했어. 이걸 갖고 싶은 데 저걸 가진 사람이 과연 행복할까? 절실함은 그때 해결하지 않으면 변질돼 버리는 거야. 오디오가 진정으로 좋고, 하고 싶다면 비용을 아끼지 말고 남의 눈도 의식하지 말아야지. 누가 시켰어? 자기의 욕망을 왜 자꾸 감추고 다른 쪽으로 희석시키려고 하냐 이거야.

엄 사진작가로 오래 활동을 하셨다. 그 행로를 들려주신다면
윤 대학갈 때 난 세상을 돌아다니고 싶다는 분명한 꿈이 있었어. 70년대만 해도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지. 근데 기자라는 직업을 택하면 그럴 수 있을 것 같더라고. 그 중에서도 사진기자를 택하면 전 세계를 다 갈 수 있을 것 같은 그런 마음이 들었지. 그 꿈은 이뤄졌어. 세상을 정말 원 없이 돌아다니면서 사진을 찍었고 그 후에도 30년 넘게 계속 개인 작업을 해오고 있지. 선택한 길이 너무 재밌었다는 건 정말 다행이야. 그건 지금도 변함없고. 글도 쓰고 음악도 듣지만 결국 나를 설명하는 밑바탕의 정체성은 결국 사진작가인 것 같아.

엄 오랫동안 꾸준히 사진을 사랑해온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나
윤 새로운 것을 발견하게 해주는 도구라는 점이 가장 좋았어. 유한한 것을 영원히 기록한다는 것도 놀라운 매력이고. 기자는 글을 쓰며 자기의 존재를 확인하잖아? 난 카메라로 그 너머의 바깥세상을 들여다 볼 때 내 존재와 세상을 확인해. 발견이지. 미지의 발견. 단 한 번의 반복 없이 끝없이 새로운 것을 만든다는 게 놀라워. 사진의 또 다른 매력 하나는 진짜 맘대로 안 된다는 거야(웃음). 잘 안 되서 더 재밌나봐. 가질 수 있을 것 같은데 못 가지고, 보이는 데 그대로 옮길 수 없다는 게 끝없이 사람을 애끓게 하거든.
최근엔 저술에 힘쓰고 있다. 음악, 사진에 이어 이렇게 여러 활동을 하시는 이유가 뭔가
관심은 얼마든지 옮아갈 수 있는 거잖아. 2011년 현재라는 시점에 좀 더 관심을 가지는 게 있을 뿐이지. 어떤 게 가장 좋냐, 어느 쪽이냐고 묻는 건 옳지 않다고 봐. 난 그냥 내 관심과 그게 옮아가는 순간을 충실히 사는 사람일 뿐이야. 그게 또 어디로 튈지 알아? 한 가지만 하겠다고 결심을 한 적도 없고 선언을 한 적도 없어. 더 재밌는 일이 있다면 난 또 옮길 거야.  

엄 좋아서 시작한 일도 재미를 잃으면 그만두는 게 옳다고 생각하는 건가
윤 재미없어졌다는 말을 쉽게 한다면 아주 건방진 거야. 그건 죽기직전까지 해보고 나서야 할 수 있는 얘기지. 그런 다음에야 그만둘 자격이 생겨. 지금 한계를 느끼는 건 겨우 그 일의 일부분 때문이잖아. 끝까지 안 해본 사람이 항상 힘드네, 비전 없네, 하는 거야. 이걸 하면 무슨 쓸모가 있을까 따지는 순간부터 모든 일엔 재미가 사라져. 어떤 분야에 진정으로 관심을 갖고 목숨을 바친 사람들은 아무도 그 효용을 따지지 않아. 재미는 현실적 효용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게 아냐. 일 자체를 진심으로 좋아한다면 재미가 사라질 수 없지.

엄 하고 싶은 일을 놓지 않는 어른으로서 20대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윤 세상의 기준에 맞출 이유가 하나도 없어. 스티브 잡스처럼 세상한테 자기에게 맞추라고 주문할 수 있는 사람이 되라고. 서열의 순서를 바꾸라는 거야. 내가 있기 때문에 세상이 있다는 관점의 전환이야 말로 젊은 사람들이 가져야할 가장 중요한 부분이 아닐까 생각해. 당신이 만든 기준이 아닌데 왜 거기에 편입되고자 하냔 말이야. 스스로 개척해 깃발을 꽂고 “니들이 좀 따라오면 안 돼?”라고 말하는 젊은이들이 됐으면 좋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