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발성과 창조성 바탕으로 국내서도 활성화

기자명 김은진 기자 (eun209@skkuw.com)

엄마: 엄마는 날 이해해주려고 하지 않아
딸: 넌 항상 엄마 속만 썩이는 불효자야
위의 대화는 주체가 바뀐 잘못된 대화가 아니다. 이것은 서로 역할을 맞바꿔 상대의 입장을 이해하도록 하는 정신심리치료 사이코드라마의 기법의 하나인 역할 교대(role reversal)의 한 예시다.

한국사이코소시오드라마학회 제공

자발성과 창조성을 근간으로
사이코드라마는 정해진 대본 없이 생각나는 대로 연기를 하도록 유도해 주인공의 억압된 감정과 갈등을 행동으로 표현할 수 있도록 하는 집단심리치료법이다. 사이코드라마에 대해 정신과 의사 김정일 씨는 저서 『사이코드라마』에서 “자신의 갈등 상황을 말로 표현하기보다는 직접 연기함으로써 문제의 심리적 차원을 탐구할 수 있도록 돕는 방법”이라고 정의했다. 이때 극의 주제는 사회문제, 인간문제보다는 주인공 개인의 문제로 제한된다.
사이코드라마를 창시한 정신과 의사 모레노(Jacob Levy Moreno)는 이것의 바탕이 되는 것을 ‘자발성과 창조성’이라고 강조했다. 여기서  자발성은 ‘상황에 적절한 반응을 다양하게 구사할 수 있는 정도’를 말하며 창조성은 행위와 관련이 있다. 즉, 모레노는 사이코드라마 속에서 주인공이 자발적으로 자신의 상황을 만들고 이를 언어가 아닌 행위를 이용해 즉, 창조성을 통해 표출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이론을 실전에 대입하면

한국사이코소시오드라마학회 제공

이제 사이코드라마의 구성을 살펴보자. 사이코드라마는 △주인공 △연출가 △보조자아 △관객 △무대로 구성된다. 주인공은 환자를 지칭하는 말로 자기 자신 이외에도 많은 역할을 맡는다. 또 연출가는 무대 감독이며 치료자다. 보조자아는 치료자의 조수로, 필요에 따라 주인공과 함께 극중 인물이 되어 주인공의 문제를 끄집어내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한다. 사이코드라마에 참여하는 모든 사람은 관객이라 불리며 무대는 극이 진행되는 장소를 말한다.
그렇다면 사이코드라마로 인해 얻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사이코드라마』에 따르면 이를 통해 “자신의 무의식적 심리를 통찰할 수 있기 때문에 자신에 대한 깊은 이해와 문제 인식이 가능”하며 “나아가 자아 영역까지도 확장시킬 수 있다”고 한다.
그럼 이제부터 위의 내용을 참고해서 사이코드라마 사례를 살펴보자. 다음은 사이코드라마 기법 중 하나인 ‘시간퇴행기법’에 대한 내용이다. 시간퇴행기법은 현재에 겪고 있는 어려움이 과거의 경험과 관련이 있을 때, 과거로 돌아가 그것을 현재 일어나는 일로 다루는 것이다.
다음은 시간퇴행기법의 한 대본이다.

(임철은:대인 기피증으로 인해 사람을 만날 때 긴장하고 말을 더듬게 된다. 연출가가 과거의 얘기를 묻자 그는 고등학교 발표시간을 떠올린다)
연출가: 그때로 한번 돌아가 보시겠습니까? (웃으며) 힘들면 구경하셔도 괜찮아요.
보조자아1(선생): (위압적으로) 성민이 이리 나와 발표 해봐!
보조자아2(성민): (쭈뼛쭈뼛 무대로 나온다)
(성민이 더듬거리고 발표하자 선생이 계속 꾸짖는다)
(중략)
연출가: 저 학생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임철: (화난 듯) 선생님이 나빠요. 조금만 격려해줘도 잘할 텐데.
연출가: 선생님이 한번 되어보세요.
(임철이:선생님이 되어 성민에게 용기를 주고 성민은 자신감을 찾는다. 그리고 임철은 기분이 좋아진다.)

한국사이코소시오드라마학회 제공
위 사례를 보면 대인 기피증인 주인공은 과거의 불행한 경험,  즉 학창시절 선생님에게 받은 상처로 인해 현재 생활까지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하지만 시간퇴행기법을 통해 상처를 입었던 과거로 돌아가 치유함으로써 현재의 문제를 극복해냈다. 여기서 연출자는 주인공의 심리를 파악하고 상황에 따라 주인공에게 적절한 질문과 방향을 제시해 주인공이 문제점을 극복할 수 있도록 도왔다. 그리고 △면접관 △선생 △성민으로 대변되는 보조자아는 주인공이 꺼려하는 역할인 ‘성민’을 대신 맡아 주인공이 상황을 더욱 생생하게 느낄 수 있도록 유도했다.

 

사회에서의 반응
사이코드라마가 국내에 본격적으로 도입된 것은 1975년으로 이후 1995년에는 한국사이코·소시오드라마학회가 설립됐다. 학회는 1998년도부터 한국사이코드라마학회지를 발간하고 매달 지역별로 학술행사를 여는 등 사이코드라마에 대한 활동을 꾸준히 지속해오고 있다. 학술행사와 관련해 한국사이코·소시오드라마학회 구본덕 사무간사는 “하나의 주제를 정해 사이코드라마와 관련된 기법·실현 방식 등에 대한 강의가 진행된다”고 밝혔다.
한편 사이코드라마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도 존재한다. 『제이콥 모레노-사이코드라마의 창시자』에 의하면 그 중 하나는 바로 사이코드라마가 연출자의 지시를 주인공에게 강요해 진행된다는 우려다. 주인공이 자발적으로 행해야 하는데 연출자가 너무 지시에 관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책에서는 “사이코드라마는 연출자가 주인공이 어떤 행위를 하도록 주문한다는 점에서 지시적이지만 환자에게 직접 해석을 해주거나 탐색의 초점을 정해주지 않는다”며 “연출자는 사이코드라마 내 상황에서 주인공의 선택을 최대한 존중하려고 노력한다”고 설명했다.
만약 사이코드라마가 특정 정신질환을 앓는 사람에게만 적용되는 것이라 생각한다면 주의를 요하라고 말하고 싶다. 이와 관련해 『사이코드라마-이론과 실제』의 저자 최헌진 씨는 사이코드라마가 단순히 치료의 방법으로만 국한되기를 바라지 않는다고 밝혔다. 모레노 또한 ‘사이코드라마는 어느 범위까지 적용되는가?’라는 질문에 다음과 같이 답했다. “그것은 모든 인간(all human beings)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