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초학문 차별하는 구조조정… 실용 학문 중시하는 경향 뚜렷해

기자명 권정현 기자 (kwon@skkuw.com)

ⓒ 동행 (왼쪽)  / 권혁일 (오른쪽)
동국대는 지난해 12월 9일 △문예창작과와 국어국문학과의 통폐합 △윤리문화학과 폐지 △물리학과와 반도체학과의 통폐합 등 11개 학과의 구조조정을 골자로 하는 ‘학문구조 개편안’을 확정 발표했다. 개편안의 내용이 일부 학과에 불리한 방향으로 설정되자 학생들은 이에 강하게 반발했다.
동국대는 지난해 초 김희옥 총장이 새로 부임한 이후 추진한 ‘RE_START PROJECT’의 하나로 학문구조 개편을 준비해왔다. 뒤이어 지난해 9월 개편안에 반대하는 동국대 학생들은 연합총회를 만들어 반대 농성을 시작했다. 그러나 학교는 학생들의 입장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채 개편안을 확정했고 결국 학생들은 총장실을 점거했다. 이에 대해 동국대 학교본부 측은 지난해 12월 31일 퇴학 3명, 무기정학 2명 등 29명의 학생들에게 징계처분을 내리는 것으로 강경하게 대응했다.
동국대 총학생회장이자 연합총회 대표인 최장훈 대표는 “학교는 재정문제를 이유로 학과를 통폐합한다”며 “학생이 배우고 싶은 전공을 선택할 권리를 침해하고 있다”고 말했다. 더불어 “학생이 자신의 학과가 없어지고 통합되는 것에 대해서 의견을 제시할 수 없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반발했다. 

대학사회의 전반적인 추세
비인기 학과가 위기에 내몰린 것은 동국대만의 상황이 아니다. 건국대 글로컬캠퍼스의 경우에도 지난해 12월 15일에 현재 38개 단위를 2013년에 34개로 변경 축소하는 학사 구조조정 가안을 발표했다. 구조조정 내용은 인문과학대학을 폐지하고 이에 속한 학과를 다른 단과대로 통폐합시켜버린다는 것을 골자로 한다. 중앙대학교도 2010년 대대적인 학과 구조조정으로 화제가 됐었다. 학문단위 재조정을 통해 18개 단과대, 77개 학과를 10개 단과대, 46개 학과ㆍ학부로 통폐합했다. 이외에도 △동아대학교 △순천향대학교 △청주대  등 여러 지방대에서 학과통폐합 문제로 학생들과 마찰을 겪었다.
우리 학교도 지난해 발표된 Vision2020(안) 일부가 기초학문 분야에 불리하게 설정돼 논란이 됐었다. 대부분의 기초학문 관련 학과들이 문리대학(가칭)으로 통합된다는 안에 학생과 교수가 반발해 대자보를 게시하기도 했다. 당시 이종관(철학) 교수는 “현 Vision2020(안)은 학문융합의 개념을 잘못 도용하고 있다”며 “이는 학문융합의 기반을 파괴하고 있다”라고 밝혔다(본지 제1485호 참조).
건국대 문화콘텐츠학과에 다니는 김용식 씨는 “(다른 과가 통폐합되는 것을 보고) 학생들이 우리 과도 통폐합되지 않을까 걱정한다”며 “학교에서 취업 잘되는 과만 살리고 인문학 같은 과는 없애는 것이 문제”라고 말했다. 김 씨는 또한 “학과 통폐합이 필요하다면 그 과정에서 학교가 학생들의 입장을 충분히 듣고 반영해야 하는데 현재는 그것이 잘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것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대학, 기업과 학교사이
학과통폐합의 원인은 대학의 기업화에서 찾을 수 있다. 1990년대 중반 한국 사회는 세계화의 물결과 맞물려 대학의 기업화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1995년 대학의 자율화를 바탕으로 하는 ‘5·31 교육개혁안’이 정부에 의해 발표된 것을 기점으로 대학은 급속히 기업화됐다. 자신을 ‘CEO형 총장’이라고 표방하고 나선 송자 연세대 전 총장을 시작으로 총장의 대학 ‘경영’시대가 본격화됐다. 총장이 발 벗고 기금모음에 나섰고 효율적 학교 운영에 중점을 두게 됐다. 이후 기업들의 대학 진출은 더욱 본격화됐다.
이처럼 대학이 기업화되는 과정에서 실용과목에 비해 경제적 효율성이 떨어지는 기초학문과목은 홀대를 받기 시작했고 그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중앙대 영어영문학과 고부응 교수는 이번 동국대 학과통폐합 사건을 두고 “대학교육이라는 것을 장기적인 안목에서 봐야지 당장 수요가 적다고 특정 학문을 버리는 것은 잘못”이라며 “학문이라는 것은 (그 학교에) 아주 오랜 연구 역사가 있어야 제대로 공부할 수 있는 것인데 이렇게 쉽게 학과를 없애고 만드는 것은 굉장히 우려되는 일”이라고 말했다. 이에 더해 “기초학문과목을 없애버리는 지금의 현실은 수학을 배우지 않고 공학을 하겠다는 꼴”이라며 비판했다.
그러나 대학교육이 기업화되는 것을 당연하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전남대 경제학과 김영용 교수는 ‘국립대 법인화의 쟁점과 과제’라는 보고서를 통해 대학은 이윤을 추구하지 않는다는 점을 제외하면 일반 기업과 다르지 않다고 주장했다. 또한 전국경제인연합회는 지난 2004년에 ‘고등교육 개혁 실천방안’에서 기업형 전문대학 전면 허용을 주장했다. 전경련은 대학설립이 비영리법인으로 한정돼있어 산업계의 인력수요에 맞는 고등교육이 효율적으로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며 대학교육을 통한 이윤추구를 허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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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력 양성소’ vs ‘보편성 추구’
이와 같은 논란의 본질은 대학의 역할을 무엇으로 보는지에 달려 있다. 대학의 역할을 기업에 필요한 인력을 양성하는 것으로 본다면 대학이 기업화되고 효율성을 추구하는 것은 고무적인 현상으로 보는 게 맞다. 그러나 대학의 역할을 특정 이익이 아니라 사회의 보편적 이익을 추구해야 하는 것으로 본다면 이 같은 흐름을 긍정적으로 볼 수 없다.
고부응 교수는 “대학을 인력양성소라고 생각하면 기업화가 맞을 수도 있지만, 학생들이 자신의 돈을 부담해가며 기업 업무에 필요한 공부를 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우려했다.
중앙대 독어독문학과 김누리 교수는 “최근 대학에서 나타나는 소위 구조조정이라는 방식이 학문이 가지고 있는 공적, 사회적 기능을 약화시킬 것이 우려된다”며 “대학은 시장의 수요에 부응하는 것을 넘어서서 사회를 비판하고 대안을 만들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