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양명지 편집장 (ymj1657@skkuw.com)

스무 살 풋풋한 그는 벙어리 냉가슴만 앓다가 타이밍을 놓쳤다. 마음 속으로만 간직하고 있다가 언젠가 털어놓으려고 했던 그녀에 대한 마음은 영원히 묻혀 버렸다. 첫사랑은 이뤄지지 않는 게 불문율이라지만, 시도도 못해보고 아프게 끝난 그의 외사랑은 보는 이를 너무도 안타깝고 답답하게 만들었다. 혹시 아는가, 용기 내어 말했으면 그렇게 아프게는 끝나지 않았을지도.
최근까지도 흥행 돌풍을 이어오고 있는 이용주 감독의 영화 <건축학개론> 이야기다. 디테일을 잘 살려 공감이 간다며 좋아하는 이가 있는 반면 너무 식상하고 뻔한 첫사랑 이야기라며 비판하는 이도 많은 것이 이 영화인데, 필자에게는 아무래도 식상한 것에 대한 떨쳐 버릴 수 없는 애정 같은 게 있나보다. 보는 내내 좋았고, 계속 생각하게 되고, 여운이 꽤 진하게 남았다. 첫사랑에 대한 회상과 곱씹음 때문만은 아니었다. 물론 영화를 보고 난 직후엔 짧았지만 나름 절절했던 필자의 첫사랑을 떠올리며 추억하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청춘은 짧고 용기는 위대하다(?)’는 새삼스런 깨달음이 이내 자리를 잡았다.
말하지 않는데 어찌 알겠는가. 상대가 알길 원한다면 말해야만 한다. 하지만 이 당연한 이치를 세상 사람들은 그렇게 쉽게 실천하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쉬쉬하다가 곪아 터져버린 언론5사의 파업이 그러하고 절뚝거리는 오리라 칭해질 때쯤 드러나는 정권의 측근 비리가 그러하고 최근 논란이 많은 <나꼼수>지만 그것으로 대표되는 대안언론의 부상이 그러하다. 언제부턴가 정화하지 않고 직설적인 말을 쏟아내는 이들이 인기를 얻기 시작했다. 그만큼 우리 사회가 하고 싶은 말을 제때, 충분히 하지 못하고 있음을 방증하는 것 아닐까.
최근 여기저기에서 대안·자치 언론이 떠오르고 있다. 가까운 예로는 지난 2004년 발행되기 시작한 연세대학교의 자치언론 <연세통>이 있다. 연세통의 모토는 학보에서는 다룰 수 없지만 누군가는 이야기 해줘야 하는 것을 여론화 시키는 것이라고 한다. 언론이냐 아니냐를 두고 논란이 있기는 하지만 필자는 <나꼼수>, <이털남> 등의 팟캐스트 방송을 비롯해, 유튜브를 통해 제공되는 파업 언론노조의 컨텐츠들도 주류 언론에 대항하고 약자 편을 드는 여론 형성 매체라는 점에서는 대안언론으로 보고 있다.
나름 ‘정론지’라 자부하는 성대신문에 몸담고 있는 필자지만 이런 대안언론의 등장이 결코 아니꼽지 않다. 기성 언론에서 말하지 않는 것을 거침없이 지적한다는 점, 격식을 떠나 오락적인 요소를 풍부하게 갖춘 점, (팟캐스트 방송의 경우) 비교적 개성 강하고 독특한 이력의 구성원들이 이끈다는 점 등이 그들 언론의 매력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또 정치 이야기엔 도통 무관심했던 필자와 같은 청년층에게 정치 얘기도 재밌을 수 있으며 관심 갖는 만큼 보인다는 사실을 일깨워 준 것도 그들의 공이다.
물론 용기 냈다고 해서 아무 말이나 해선 안 된다. 개인적으로 부당하다고 생각하는 면도 있지만 지난 4·11 총선에서 낙선한 김용민 후보의 사례가 보여주듯 거침없는 입담이 비난의 화살이 되어 돌아오기도 한다. 말이 많으면 그만큼 실수도 많은 법이다. 또 공식적인 채널을 통해 말하는 사람일수록 색깔 논쟁이나 여러 구설수에 휘말릴 위험도 높다.
하지만 침묵은 싫다. 잘못된 걸 잘못됐다고 말하지 않는 이상 다른 사람이 알아줄 리 없다. 옳은 외침은 결코 외면 받지 않는다. 크게 이슈화되지 못할지언정 적어도 관심 있는 사람들에게 알릴 수는 있다. ‘내가 말한들 누가 관심이나 가질까’, ‘가만히 있는 게 중간은 가는 거야’라고 생각하지 말자. 클리셰를 연발하는 필자도 이렇게 칼럼을 쓰고 있지 않은가. 벙어리 냉가슴만 앓다가 놓치고서 후회하면 무엇하나. 이미 떠나버린 수지인걸. 필자의 개똥철학에 의하면 청춘은 짧고 인생은 타이밍이다. 용기를 내어 해야 할 말은 하자, 우린 아직 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