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권정현 기자 (kwon@skkuw.com)

나에게 5월은 잔인한 달이었다. 중간고사도 끝나고 날은 더워졌는데 좀처럼 마음을 다잡지 못하고 이리저리 겉돌았다. 공부도, 노는 것도, 동아리 활동도 어느 것 하나도 제대로 해낸 것이 없이 시간만 빠르게 흘렀다. 친구와 마주 앉아 슬픈 이야기를 주고받았고, 학기가 끝나면 일상을 벗어나 어디라도 떠나볼 생각으로 종강 날짜만 세고 있었다. 그러다가 특집기사를 맡게 됐다. 뭐 하나 제대로 못 하던 나에게 제대로 해볼 것이 생긴 것이다.
무엇을 쓸까 고민하다 ‘건축’이 떠올랐다. 지난봄에 영화 <건축학개론>과 <말하는 건축가>를 본 뒤 건축에 관한 관심이 커져 있었다. 무심히 지나던 골목길을 자세히 들여다보게 되고, 괜히 멀리 돌아 명륜동 주택가를 지나 집에 가고, 혼자 북촌에 가 돌아다녔다. 구석구석마다 내가 모르던 이야기가 숨어 있었고 누군가의 추억이 담겨 있었다. 이런 재미를 나만 알기 아까워 많은 이들과 나눠보고 싶었다.
건축이 우리 삶과 밀접하다는 것을 어떻게 하면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을까? 기획을 잡는 것부터 치열한 고민이 시작됐다. 이것저것 구상하다가 한 가지를 선택하고, 다른 기자들과의 회의를 거쳐 취재를 시작했다. 욕심을 부려가며 막연히 쓰겠다던 건축 특집은 좋은 취재원들이 도와줘 나의 역량보다 알찬 내용으로 채워질 수 있었다. 박학다식하고 말 잘하는 건축학과생을 소개 받은 덕분에 건축물 답사는 두고두고 기억에 남을 취재가 되었다. 그렇게 건축 기사를 쓰면서 힘든 일, 마음 아팠던 일은 자연스레 잊혔다.
영화 <건축학개론>은 건축이란 소재를 빌려 온 사랑 영화다. 건축이라는 키워드가 영화 전체에 깔려 있기는 하지만 핵심 주제는 두 남녀 주인공의 사랑이다. 그러나 나의 <건축학개론>에는 사랑이 없다. 나의 5월에 사랑 이야기는 어울리지 않았다. 대신 명륜동의 아담한 주택이, 구불구불 좁은 골목이, 늦은 오후의 조용한 한옥마을이 나를 위로하고 치유했다. 5월도 이렇게 끝나가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