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엄보람 기자 (maneky20@skkuw.com)

대학생이 된 직후 필자는 바람을 피우기 시작했다. 의도치 않게 시작된 외도는 어느새 고치기 싫은 습관이 됐다. 그 때 그 시절, 캠퍼스를 거닐던 필자의 모습을 좀 보라. 턱을 치켜들고 세상을 걷어차듯 걸을 때마다 온몸에서 ‘젊음, 청춘, 충만’과 같은 글자들이 꽃가루마냥, 팝콘마냥 우수수 떨어지곤 했다. 왼 팔로는 A의 팔짱을 끼고 오른 손으로는 B와 깍지를 낄 수 있던 2년 반의 시간은 정말이지 바쁘고, 달콤하며, 짜릿했다.
연애를 이어달리기처럼 해대던 지인이 “한 남자에게 1만큼 사랑받을 수 있다면 두 남자를 동시에 만날 땐 3만큼 사랑 받더라”고 말했던 기억이 난다. 백번 공감하고 싶은 말이다. 다만, 저기 저 ‘남자’라는 단어를 ‘업무’라고 바꿔준다면 말이지. 그렇다. 필자의 남편이었던 A는 ‘학업’이요, 불타는 사랑을 나눈 애인 B는 다름 아닌 성대신문이었다.
서울생활에 대한 로망, 취업에 내려지는 집행유예 선고에 혹한 나머지 필자는 냉큼 학업과 결혼식을 올려버렸다. 그런데 이게 웬 걸. 지루하고 권위적인데다가 묘하게 껍데기뿐인 이놈은 도무지 사랑받을 자격이 없었다. 실의에 빠진 필자는 신문사와의 달콤 살벌한 연애에 몸과 마음을 홀랑 다 줘버렸다. ‘공부하는 자’에게 내려지는 면죄부와 신문사가 선사하는 자극적인 경험. 둘은 서로 다른 맛의 사탕이었으며 함께 먹을 때에야 비로소 충만할 수 있었다.
모든 양다리의 끝이 그렇듯 필자의 말로도 별 다를 바 없었다. 학점이 이혼도장을 찍자고 덤벼드는 건 그렇다 치자. 백년해로 할 줄 알았던 신문기자의 꿈마저 ‘난 네 길이 아니다’라는 독한 말로 이별을 고했다. 보기 좋게 가랑이가 찢어진 채로 필자는 혼자가 됐다. F딱지를 맞을 수는 없기에 꾸역꾸역 수업에는 들어갔지만 멍하니 시계만 들여다보다 도망치듯 뛰어나오기 일쑤였다. 배포대에 고이 개켜진 신문을 보아도 더 이상 가슴이 머핀처럼 부풀어 오르지 않았다.
침대 시트부터 베갯잇까지 몽땅 꺼내 빨고 점심이며 저녁이며 닥치는 대로 약속을 잡아도 하루는 너무 길었다. 시간이 낯 뜨거울 만치 남아도니 잡념이 쉴 새 없이 끼어들었다. 세상이 필자를 노른자위 부분에서 뱉어낸 것 같아 외로웠다. 철딱서니 없는 열정은 넘치는데 그 녀석들을 풀어 놓을 능력도 장소도 없어서 괴로웠다. 아니, 그보다 앞서 자책이 너무 컸다. “놓치기 싫다”며 감당하지 못할 만큼의 일을 한꺼번에 벌여 놓고는 결국 깡그리 말아먹고야 마는 버릇이 혐오스러웠다. 결국 필자는 공부도 싫고 기사쓰기도 싫고, 나중엔 거기서 떨어지는 콩고물만 사랑했었나보다. 학업, 동아리 활동, 아르바이트, 자취살림이라는 카드들을 쥐고 상호간에 적절히 돌려막으면서 더할 나위 없이 열심히 살고 있는 척 최면을 걸어왔던 거였다. 더 이상 거짓말을 하면 큰일날거라고, 필자의 낭만주의 세상에 빨간불이 깜박이고 있었다. 
개 버릇 남 주냐는 옛말은 역시나 참말이었다. 고심 끝에 내린 처방이 고작 ‘새로운 바람을 피워보자’였으니 말이다. 그런데 신기한건 이별의 상처엔 새로운 인연이 약이라는 말도 참말이었다. 가벼운 마음으로 신청한 도슨트(미술관 자원봉사자) 교육은 또다시 필자를 미친 듯이 설레게 만들었다. 재기 넘치는 예술 감독, 큐레이터 분들의 특강을 듣다보니, 학과 공부가 쓸모없다고 말하던 필자의 혀를 백번쯤 깨물어주고 싶었다. 이번 애인인 도슨트는 남편의 소중함을 일깨워주는 남자라고나 할까. 해야 할 일과 좋아하는 일을 함께 사랑하는 법을 조금씩 배우겠다고 다짐했다.  
사랑에 빠진 필자는 요새 신나게 전시회를 알아보고, 진심으로 미술교양서적을 뒤적이고, 아주 자주 ‘내가 진짜 좋아하는 게 뭘까’ 열심히 생각한다. 도슨트 교육에 늦을까봐 채 끝나지도 않은 수업을 팽개치고 가회동으로 내달리기 일쑤지만, 이번만큼은 말아먹지 않을 작정이다.
해님은 당분간 무럭무럭 길어지고, 밤공기는 갈수록 향기로워질 테다. 하루 중에 24시간을 다 살고만 싶은 요즘이다. 여러분, 이것 참 바람피우기 좋은날이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