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유수빈 기자 (newbien@skkuw.com)

삼월 이래로 많은 게 변했다.

고등학교 삼학년 때 나는 내가 내 모든 모습을 알았노라고 생각했다. 적어도 다른 사람보다 자신에게 모진 평가를 내릴 수 있다고 나는 생각했다. 수능을 앞두고 열심히 쓴 일기장에 아직 그 흔적이 남아있다. ‘오늘 나는 누구에게 어떤 어떤 감정을 느꼈다. 그 감정은 사실 이러쿵 저러쿵한 이유이기에 부당하게 느낀 감정이고, 넌 이기적이고 어쩌고 저쩌고.’ 하지만 그런 자신감에서 나는 면접에서 말했다. 남들보다 좀 더 객관적일 수 있다고. 어쨌든 지금 그 일기를 다시 보면, 참 나도 공부를 하기 싫었구나,는 생각이 먼저 든다. 퍽이나 내 ‘정신분석’이 재밌게 읽히는 것이다. 하지만 그때의 나는 확실히 오만했다. 물론 지금도 내 자존심은 하늘을 찌르지만, 적어도 내 그 고등학교 삼학년 때, 내게 내린 평가가 틀렸다는 걸 깨달았다. 대학교에 들어오고, 성대신문에 들어온 이래로 나는 나에 대해서 많은 것들을 깨달을 수 있었다.

솔직하게 털어놓겠다. 나는 정말이지 자기 소개를 할 말이 없었다. 내 동기들 중 누구처럼 이 일에 강렬한 열정이 있던 것도 아니고, 과거를 착실하게 쌓아오지도, 재수의 쓴 고비를 딛고 신문사를 두드리지 않았다. 난 그저 누구들의 주문대로 평범하게 수능을 공부해왔고, 운 좋게 이 대학에 합격했을 뿐이었다. 내가 보여줄 수 있는 게 정말 없었다. 책이라면 남들보다 꽤 읽긴 했지만, 그걸 증명해낼 수단도 없었고 그 뿐이었다. 말 그대로 내가 보여줄 수 있는 건 사소한, 겨우 쥐어 짜낸 몇 가지 이야기들과 근거 없는 미래에 대한 약속이었다. 정말로. (고스펙과 열정이 소중한 사회에서 이런 짓을 하다니!) 내가 이 신문사에 들어온 건 정말 지금 생각해도 놀라운 일이다. 날 뽑아준 사람에게 내게서 무엇을 보았는지를 묻고 싶다. 순수하게 궁금해서 그렇다. 그 짤막한 글에서 무엇을 보았고, 그 면접에서 어떤 점을 보았는지. 합격 문자를 받고서 기분이 참 이상했다.

그래도 합격은 기분이 좋은 일이었다. 엄마가 몇 년 전에 썼던 내 계정을 다시 살려야만 했다. 싸이 월드 클럽. 음, 그러니까, 그런 게 있는 줄 몰랐다. 그리고 트레이닝을 시작하게 되었다. 첫날 전부터 나는 눈물을 쏟았다. 그때가 아직도 눈에 선하다. 일요일 낮 12시 30분 경, 트레이닝 공지가 카카오톡 방에 올라왔다. 내일은 부득이하게 7시 40분에 시작해야겠다고. 당시 나는 카톡에 대해서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이 사악하고도 사람들의 시간을 빼앗는 악랄한 기계문명의 산물 같으니라고. 그래서 나는 그 카카오톡을 제대로 확인하지 않았다. 그리고 밤 열한 시가 돼서야 제대로 카톡을 보았고, 그대로 정신이 붕괴했다. 이렇게 늦은 시간에 연락하면 분명 엄청난 문제가 될 게 뻔했기 때문이다. 나는 15분이나 고민하다가 카톡 확인을 잘 못했고, 내가 너무 먼 곳(바로 거기)에 산다는 카톡을 올릴 수가 있었다. 첫 주차 트레이너 분은 다행이도 너그럽게 나를 봐줬다. 그때 전화까지 했지만, 그 분은 내 눈물은 보지 못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 사이 너무 멀었으니까!

3주차까지는 원론적인 논쟁이 계속됐다. 사실 수습 트레이닝 기간 중에서 가장 재미있을 때가 그 때였다. 그때 나온 이야기들은 철저히 이상과 현실을 갈라서 말할 수도 있었고, 그리고 젊은 패기를 보여줄 수도 있었다. 난 정말로 그때의 탁상공론들을 사랑한다. 그런 깊은 이야기를 말할 수 있어서 실은 기뻤다. 지금까지 사람 사는 이야기는 많이 들어왔다. 누구의 고민, 누구의 취미, 누구의 행복에 대해서는 많이 들어왔던 것이다. 신문사에 들어올 때는 전혀 예상한 게 아닌데. 그건 내게 선물이 되었다. 동등하게 서로의 가치를 내걸고 대화할 수 있는 것. 본격적으로 실무를 시작하면서 좀 서글펐던 점이 바로 그거였다.

그거에 대해 더 이야기를 해봐야겠다. 신문사 일 말이다. 물론 기획을 하고 취재를 하고 기사를 쓰는 게 기자일이라지만. 그래도 이건 수습일기니까. 처음엔 잘 몰랐다. 그땐 파업 중이었으니까. 그리고 파업이 끝나고 본격적으로 수습들의 일을 시작하자. 음, 내 생각과는 많이 달랐다. 조금은 기묘했다. 기사가 나가는 과정이 말이다. 그러니까…상상하고 많이 달랐다. 나는 대체 그전에는 어떻게 생각했던 걸까? 정치인들에게 마이크를 들이대면 기사가 생겨날 거라고? 아니면 그냥 앉아서, 어딘가를 어슬렁거리면서 잘 쥐어짜내던가? 정말 순진하기는! 그렇지가 않았다. 사람들은 시간을 쪼개서 기사를 썼다. 퇴고를 받으면서 참 기자들은 시간에 쫓기는 구나. 다른 수습과 트레이너들이 ‘시간은 금이라고, 친구’라고 강조할 때마다 실감했다. 고작 2.2매 짜리 스트레이트를 쓰는 시절인데도 그렇다니. 시간에 쫓기는 신문사를 보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참, 거기엔 나도 들어있다. 다들 바쁘구나. 그런데 그럴 때면, 꼭 지난 널널했을 시절의 기억이 떠오르는 것이다. 자신을 되돌아볼 시간이 있는 건지. 그때 우리는 서로의 생각을 검증했다. 하지만 시간이 없으면 생각을 검증할 수 없다. 행동은 해야 하는데 시간이 없다. 그래서 다들 일을 해야 한다. 그러니까 내가 말하는 생각은 우리들의 본질과 상상에 대한 이야기다. 물론 확고한 정체성을 가지는 것이 멋지고, 기자 일을 하기 실로 알맞다. ‘주진우’ 기자처럼. 우리는 트레이닝을 거치면서 기자로서의, 학보사로서의 완전한 정체성을 다졌는가? 그렇다면 성균관대학교라는건 어디에 어떻게 들어가지? 잘 모르겠다. 그런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당신의 생각의 이유가 무엇이고, 누가 더 나은 생각을 가졌는지 견줘보자. 그런데 그건 아무래도 나만 좋아하고, 신문사랑은 어울리지 않는 주제인 것 같다. 이야기는 더 이상 본격적으로 논의되지 않고, 서로의 입장 차로 끝났다. 완고를 내 KTX를 타고 집에 오는 길에 생각했다. 하루가 다 저물 동안 나는 대체 지금까지 뭘 했을까. 나는 이 기사를 왜 쓰는 걸까. 그러다 졸면 어느새 집에 도착했다. 그 때면 거실에서 티비 틀고 자고 있는 아빠와 야미르가 날 맞이하는데, 아빠는 내 얼굴 보겠다고 안 자고 버티다 그렇게 된 것이다. 당신에게 이 일에 대해 투정을 많이 부렸는데(따지고 보면 그 덕에 시작했으니까) 당신의 하루가 더 고된 걸 알면서도 그랬다는 건 정말 죄송하다. 나는 수습기자 시절을 버텨냈다! 우와아아앙.

여러 모로 내 세상에 큰 충격을 줬지만, 그래도 버틸 수 있었던 이유엔 사람들의 도움이 컸다. 그것도 이름 모를 사람들이. 트레이닝 시간 때문에 6시 반 차를 탈 때면, 늘상 노곤한 얼굴로 출근하는 그 사람들과 내가 같은 열차를 탈 때 말이다. 차를 기다릴 때 꾸벅 꾸벅 조는 사람도 있고 똑똑이전화를 만지는 사람도 있고. 서울역 계단을 휘청이며 오를 그 때가 말이다. 그들 무리에 섞일 때면 이 돈 벌어오는 십구 문 반의 아버지들에게 나를 투영하는 것이다. 불쌍하게도 너무 바쁘고, 일이 많은 사람들. 다행히 내겐 시간이 더 많았다.

수습 시절 나는 신문사에 꽤 자주 들락날락거렸던 것 같다. 그건 소속감 때문인 것 같다. 그냥 사람들하고 다같이 있는 시간이 좋았다. 난 붙임성이 좋은 사람은 아니다. 아직도 신문사의 몇몇 사람들과 어떤 대화를 하고 어떤 나를 보여줘야 하는 건지 난감하다. 하지만 막상 소속감이 두터워질 무렵엔 상처 받을 일들이 몇 번 있었고, 지금은 그 부분에 대해 마음을 정리했다. 그러니까 그건 이런 문제들이다. 힘든 일을 몇 번 겪었는데, 그 일은 절대로 힘들다고 말해져선 안 된다. 말할 때는 아무렇지도 않아야 한다. 왜냐하면 다른 사람들은 더 힘들 수도 있고, 불필요하게 공감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특히 담배 기획 때와 선서식 때는 기묘한 동떨어짐을 겪었다. 담배기획 때는 다들 너무 바쁜 데다 나는 늦은 사람이었고, 선서식 때는 내 이야기를 듣기엔 다들 너무 행복해하고 알딸딸해있었다. 그때 느낀 감정을 잊을 리가 없다. 가끔 심심하면 꺼내보기도 한다. 그날 나는 깨달았다.

학술부 이야기도 적어볼까. 민감한 이야기지만 민감한 이야기는 꼭 해야 한다. 어려웠던 문제다. 그 사명감을 나는 도저히 말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 당위성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머리가 어지러웠다. 여기서 밝히지만 난 그냥 그런 게 좋았다. 그리고 네 개의 부서에서 나라는 사람이 가장 잘 해낼 수 있는 부서가 뭔지에 대한 대답이었다. 여기엔 어떤 문제가 숨어있는데, 그렇다면 애초에 너의 각오에 들어맞지 않는 선택이지 않느냐는 것이다. 나는 정말 내 초심의 의지가 아닌 내 편의를 위해서 여기를 말했던 걸까? 그럴지도 모른다. 어쨌든 첫 폐지 이야기를 받았을 땐 많이 놀랐다. 지금도 기획을 짤 때 이놈을 어떻게 합리적으로 당위성을 설명해야 할지가 가장 어렵다.

왠지 지금이 밤이라서 힘들었던 일들만 잔뜩 적은 것 같은데, 사실 그 힘든 게 바로 내가 의도했던 것이다(이렇게 힘들 줄 몰랐다…). 그래서 성대 신문사가 어떤 존재냐고? 내게 많은 걸 알려줬다. 애초에 내가 바라던 대로 현실 가까운 곳에서 숨 쉬게 해줬다. 많은 생각을 하게 해줬고 또 깨달은 게 많다. 신문사 사람들은 정말 다양해서 좋다. 내가 무엇을 사랑해왔고 무엇을 바라고,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알게 되었다. 나태함의 소중함을 알려줬고, 여느 다른 젊은이들보다 사회 생활의 쓴맛 단맛을 조금 더 일찍 맛보았다. 솔직히 행복한 적은 손에 꼽을 정도였지만. 부서배치엠티 갔을 때 새벽 세 시 반에 수습 방에서 혼자 깨어있을 때랑 일요일 날 탱자탱자 놀고 있을 때가 참 기분이 좋았다. 그러나 언제나 그런 힘듦이야말로 나를 앞으로 나아가게 해준다. 내겐 정말이지 이런 삶이 필요했다.

이따금 내가 여기 있는 게 맞는 지 의구심이 든다. 다들 저렇게 치열하게 현실을 사는데, 어쩐지 나는 보이지도 않는 허깨비들을 혼자 생각하면서 혼자 붕 떠 있는 것 같기 때문이다. 따지고 보면 그네들이 맞고 내가 틀린 것이다. 이건 전부 진짜니까! 사람은 더 무섭게 일에 임해야 하는 것이다. 한 학기 수습기자로 살면서 몸만큼이나 마음도 멀쩍이서 성대신문사를 바라봤던 것 같다. 하지만 이제 진짜 기사 쓰고 그럴 텐데. 게다가 이제 기획주간이다. 앞으로가 참 걱정이다. 밖에 벌레 소리가 나고 밤이 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