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이유진 기자 (nipit616@skkuw.com)

나는 내가 ‘어른’이 될 것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아주 이상한 이야기지만, 초등학생 때는 중학생이 되기 전에 지구에서 사라질 것이라고 생각했고, 중고등학생이 되어서는 20살이 넘기 전에 반드시 어떤 사고가 일어날 것이라고 믿었다. 어른이 되기 싫었다거나 일찍 죽고 싶었던 것은 아니다. 그저 아무 이유 없이, 직관적으로, 발밑에 그림자가 지는 것처럼 당연하게 그러리라 생각했던 것뿐이다.

그랬던 탓일까. 인생을 장기적으로 바라본 적이 없었다. 주위에서 장래희망이라는 이름을 내걸고 이다음에 무엇을 해서 밥을 벌어 먹고살 것인지 물을 때도 아무렇지 않게 열대 무인도에서 야자열매를 따 먹을 것이라고 대답하곤 했다. 주로 TV에서 잘못된 결혼으로 불행한 삶을 사는 여자나 젊어서 열심히 일했지만 늙고 병들어 비참해진 사람들을 보면서도 그것이 내 이야기가 될 수도 있다는 감각이 없었다.

고등학교 3학년 겨울, 신체적으로나 법적으로나 완벽한 성인이 될 날이 가까워져 오자 나는 혼란스럽고 초조해졌다. 그제야 내 앞에 펼쳐질 평균 6·70년의 세월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남들처럼 세상이 시키는 대로 의무감에 하루하루를 버텨 나가며 그 기간을 채우기는 싫었다. 하지만 어떤 길을 밟아나가야 할지는 아직도 감이 잡히지 않았고, 그 이유는 내 무지에 있다고 생각했다. 절박한 마음에 닥치는 대로 책을 집었다. 아는 것이 많아지면 뭔가 인생의 큰 그림을 그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나태한 기대의 발로였다. 그 기대는 몇 달 만에 깨졌다. 오래된 책장 맨 아래 앨범을 모아두는 서랍에서 나는 25년 전에 쓰인 엄마의 일기를 발견했다. 그때 엄마는 갓 사대를 졸업하고 발령을 기다리는 사회 초년생이었다. 그녀는 그 때까지도 자신의 진로를 고민하고 있었다.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지 모르겠다. 그저 책을 열심히 읽고 있다. 역시 독서는 즐겁다’ 태어나서 그렇게 오싹한 경험은 없었다. 어머니는 책을 열심히 읽고 뭔가를 탐구하며 시간을 보냈지만, 나이가 차서 결혼하고, 교사를 그만둔 다음 남편과 아이들의 뒷바라지를 하셨다. 어머니의 삶을 깎아내릴 의도는 없다. 하지만 이어진 어머니의 선택들이 24세 때의 어머니가 진정 원하던 것이었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책을 읽으며 지식을 쌓고 가끔 시간이 날 때 소파에서 진로를 고민하는 정도로는 내가 절대로 원하지 않는 인생을 피할 수 없었다. 행동해야 했다.

내가 성대신문에 지원한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바로 이런 불안 때문인 듯하다. 지루하게 정해진 길만 따라가고 있는 나를 흔들기를 원했다. 이름 뒤에 준정기자 타이틀을 붙인 지금도 내가 애초의 목적을 달성했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결코 성대신문에 지원한 것을 후회하지는 않는다. 반 학기간의 수습 기간 동안 정신없이 과제를 하고 이리저리 뛰어다녀 보면서 많은 것을 배웠다. 과제를 미루고 미루다 느지막이 작성해 올리는 내 모습과 다른 동기들의 모습을 비교해 보면서 나의 나태함이 큰 문제라고 인식하게 되었고, 수습들보다 몇 배의 업무를 지고 있으면서도 할 일을 척척 해내는 기자들 곁에서 생활하며 스스로 ‘난 너무 힘들었으니까’하고 변명하지 않는 법을 배웠다. 조직생활의 생리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감이 잡힌다. 성대신문 기자생활이라는 자갈길에 올라와서 얻은 소중한 보석들이다.

책임지는 것, 낯선 것을 시도해 보는 것, 다른 사람을 이해하는 것. 그럴듯한 어른에게 꼭 필요한 자질이 아닐까. 이왕 어른이 되어버렸다면 치밀하게 계획을 짜고 나를 움직여서 아주아주 훌륭한 어른이 되어야겠다. 수습이 안된다. 수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