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유영재 편집장 (ryuno7@skkuw.com)

“자긍심은 자기가 지닌 압도적인 가치를 부동적인 것으로 확신한다는 것이다. 이에 반해 허영심은 이러한 확신을 타인의 마음속에 불러일으키려고 하는 소망이다. 타인의 마음속에 확신을 불러일으키면, 그것을 자신의 확신으로 삼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은밀한 기대가 수반된다는 점에 바탕을 두고 있다. 때문에 허영심은 사람을 능변가로 만들며, 자긍심은 과묵하게 만든다.” 염세주의 철학자 쇼펜하우어(Schopenhauer)의 『처세술 잠언』 중 한 대목이다. 영어권 문장의 번역체는 길고 어려우니 “빈 수레가 요란하다”는 쉬운 속담으로 고칠 수도 있겠다. 사람은 명예욕이라는 본능에 따라 자신의 장점은 과시하고 단점은 숨기려 한다.
그런데 여기에는 더 근본적인 이유가 있다. 낭중지추(囊中之錐)라는 사자성어에서도 엿볼 수 있듯, 특장점이 많은 사람이라면 잠자코 있어도 빛을 발한다. 반면 그렇지 못한 사람이 남들에게 돋보이려 한다고 생각해보라. 자신의 능력을 갈고 닦아 내면의 결과물을 얻으려면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입해야 한다. 자신을 이리저리 과시해 훌륭한 사람이 된 것 같은 착각을 얻는 데는 비교적 적은 노력만 투입하면 된다. 즉, 편하기 때문이다. 이로써 인간의 허영심과 그 근원에 있는 편의주의적인 단면을 동시에 진단할 수 있는 것이다.
개인은 더 말할 것도 없으니, 지성과 학문의 전당이자 실존주의의 광장일 것 같은 대학의 모습을 진단해보자. 혹 앞에서 수식했던 말에 벌써부터 조금 낯간지러워지지는 않는가? 국가고객만족도 5년 연속 종합대학 1위, 세계 100대 MBA 평가에서 SKK GSB 66위, 조선일보-QS 아시아 대학평가 24위, 교과부 대학특성화 최우수대학 11회……. 수많은 순위싸움에서의 승전보가 학교 홈페이지와 대성로 현수막의 가장 눈에 잘 띄는 곳을 차지하고 있다. 분명 볼 때마다 자랑스럽고 뿌듯해질 만도 하다. 그런데 필자는 왠지 모르게 대성로를 오르내릴 때마다 고전의 몇몇 구절이 떠오를 뿐이다.
우리 학교가 화려한 홍보에 비해 내실이 없다는 섣부른 판단은, 일개 학생인 필자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생존을 위해 기업화를 택했을 것이고, 기업의 생존에는 홍보가 필요충분조건으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 가지 환기해야 할 점은, 역사적으로 대학은 숭고한 본질적 가치를 지닌 곳이기 때문에 집단 자체가 철학적 의미에서의 실존이 가능했다는 점이다. 반면 기업은 타인의 수요에 의해 생존한다는 점에서 실존과는 거리가 멀다.
그렇다면 질문 하나. 과연 기업화라는 것이 오늘날의 유일무이한 생존 방식이었는지, 혹 구성원의 편의주의가 낳은 자충수는 아니었는지를 성찰해볼 필요가 있다. 과연 존재 자체를 기업과 같은 타율적 존재로 격하시켜야만 할 정도로 시대적 상황이 냉혹했을까? 인간의 허영심이 근본적으로는 편의주의로부터 비롯된 것처럼, 대학의 기업화 역시 당대 구성원의 편의주의가 아니었는가를 진단해봐야 한다. 이미 기업화가 깊게 진행된 오늘날을 살아가는 우리는 이런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울까? 최근 일본이 과거사를 대하는 태도가 논란이 되고 있는 점을 보면, 아닌 것 같다.
개강하는 날부터 너무나 어렵고 찝찝한 숙제를 안게 돼 심히 불쾌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이는 대학을 구성하고 있는 우리부터 실존하기 위한 첫 번째 숙제라는 점을 명심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