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리케 두셀 『1492년, 타자의 은폐』

기자명 나다영 기자 (gaga0822@naver.com)

▲ ⓒaladin
1492년은 그 유명한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역사적인 해이다. 동시에 근대가 탄생한 해이다. 우리에게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근대성은 무엇인가. 인류의 이성을 문명적 미숙함으로부터 해방시키는 것이다. 콜럼버스는 미개 지역인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함과 동시에 유럽의 우월한 가치를 미개인들에게 전파했다. 그 결과로 인류 이성의 발전이 이뤄졌다는 것이 역사 속에서 이해되는 근대화의 과정이다. 그러나 엔리케 두셀은 이 ‘발견’에 반기를 든다. 우리나라에 번역된 몇 안 되는 그의 저서 중 이 책은 근대를 ‘타자성’이란 관점에서 새롭게 통찰하고 있다. 책은 총 3부로 구성돼 있다.
1부는 통용되고 있는 근대화의 형성 과정과 그 허구성에 관해 서술한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명제에서 출발한 근대적 자아는 ‘생각하는 자아’다. 그러나 두셀은 그 시작이 ‘정복하는 자아’라고 말한다. 콜럼버스와 스페인, 포르투갈로 대표되는 유럽 국가들은 정복한 아메리카 대륙을 착취했다. 이 과정에서 ‘타자화’의 논리가 도입된다. 착취의 논리에 따라 유럽의 문명과 역사가 존재하는 나라로, 비유럽적인 모든 것은 역사가 없거나 미발달된 원시의 땅으로 자연스럽게 치부됐다. 유럽 사회는 인류 역사에서 가장 발전한 단계로 간주됐고, 근대화의 중심부가 될 수 있는 논리적 근거를 마련했다. 이것은 타자가 ‘발견’된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들의 역사와 철학이 ‘은폐’됐다는 두셀의 주장을 뒷받침한다.
▲ 근대성의 시작은 데카르트의 '생각하는 자아'인가?/ⓒcommons.wikimedia.org

2부에서 두셀은 서양에 의해 주도된 근대화의 타당성을 검증하고 비판한다. 또한, 1492년 이전의 역사적 기록물을 추적하여 유럽이 이전까지는 세계의 중심이 아닌 하나의 지역에 지나지 않았다는 증거를 제시한다. 이어서 3부에서는 타자의 관점, 즉 원주민 인디오의 시각에서 ‘타자로부터의 해석학’을 서술한다. 두셀은 타자들의 문명에도 그들만의 철학이 존재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 소외된 힘들이 현재에 존재하는 근대를 변화시킬 수 있는 원동력임을 입증한다.
▲ 아니면 콜롬버스의 '정복하는 자아'인가?/ⓒcommons.wikimedia.org

당신의 삶과 아무런 연관성이 없어 보이는 1492년을 재통찰하는 것은 분명 의미가 있다. 주변화되고 ‘은폐’된 모든 의식에는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타자와 나를 구분하는 과정에서 타인의 철학을 주변화하는 흑백논리의 뿌리에는 유럽의 근대화가 숨어있다. 한국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그 속에는 식민지 시절 무비판적으로 근대화를 수용해야만 했던 기억이 남아있다. 두셀은 근대성에 대한 재고찰을 통해 은폐하는 우리 사회에 일침을 주고 있다. 서양의 근대화 논리가 뿌리박혀 있는 이상 식민성은 우리 사회에 있을 수밖에 없다. 타자와 나를 구분하는 문제, 그리고 반복되는 먹이사슬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당신에게 일독을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