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촌 한옥마을 공정여행 스케치

기자명 김도희 기자 (dhayleykim@skkuw.com)

▲ ⓒ조성임 제공
지구의 진동으로 ‘섬’이 태어났다. 근처의 어부들과 히피들이 섬에 정착했다. 어느 날 섬이 가이드북에 소개되면서 관광객이 하나둘씩 찾아왔다. 섬에는 관광객을 위한 시설이 생겨났고 원주민들은 자기 문화를 버리게 됐다. 결국 섬의 생태계까지 변해버리고 섬은 죽었다.
우리 학교 후문에서 마을버스 종로 02번을 타고 10분 정도 가면 ‘북촌 한옥마을’이 나온다. 한옥이 쭉 늘어선 골목을 걸으면 마치 조선 시대로 온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주말이 되고 사람이 많아지면 북촌은 그저 하나의 볼거리로 전락하고 만다.
그 폐해를 극복하고 북촌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돕기 위해 ‘공감만세’가 나섰다. 공정여행은 현지인의 입장에서 해당 지역을 바라보고 올바른 여행의 형태를 제시하고자 하는 여행이다. 이 취지에 맞춰 공감만세에서 북촌 공정여행을 진행하고 있다. 기자도 지난 7일 북촌 여행을 다녀왔다. 이날 여행은 공감만세의 조수희 코디네이터와 북촌에서 10년가량 생활한 주민 옥선희 씨가 가이드를 맡았다.
▲ 북촌문화센터에서 옥선희 씨가 북촌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조성임 제공
여행은 계동길을 따라 걷는 것으로 시작했다. 걸으면서 주위를 둘러보니 카페와 기념품점이 상당수였다. 정작 주민들에게 필요한 △미용실 △세탁소 △학교 등의 시설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옥선희 씨는 “국가에서 관광객을 위한 주차장을 마련하기 위해 재동초등학교를 없애려고 하고 있다”며 우려를 나타냈다. 계동길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마을 한복판에 자리 잡은 중앙탕이었다. 한눈에 봐도 오래된 목욕탕은 푸근해 보이는 인상의 한 할머니가 지키고 있었다. 소박하지만 주민들이 40년째 사용하고 있는 시설이다. 닳아있는 문턱에서 주민들이 이 목욕탕과 함께 한 시간을 짐작해 볼 수 있었다.
별궁길에서는 국내 최초의 공정무역 패션 브랜드 ‘그루’를 방문했다. 공정무역은 가난한 생산자들에게 노동의 대가가 정당하게 지불되는 일자리를 제공하는 무역이다. 공정무역 하면 커피가 떠오르기 마련이지만 그루는 옷에 초점을 맞췄다. 옷은 생산 단계가 세분화돼 있어서 그만큼 일자리가 많이 창출돼서다. 그루는 현재 △네팔 △방글라데시 △인도의 여성 노동자들을 위한 일자리를 창출해 경제적 자립을 돕고 있다. 가게에 들어가 보니 갈색, 회색, 카키색 등 눈이 편안한 색상의 옷들이 벽면에 걸려 있었다. 입구도 그루라는 이름에 어울리게 나무로 만들어져 있어서 포근한 느낌을 줬다.
반면 가회동 31번지는 시장 바닥 같았다. 분명히 주민들이 사는 곳임에도 관광객들이 시끄럽게 대화하며 걸어 다니고 있었다. 한옥이 가장 많이 모여 있는 곳임에도 누구도 이곳이 주거지라고 생각하지 않는 듯했다.
가회동의 언덕을 올라가 북촌의 가장 높은 곳에 있는 북촌동양문화박물관에서 여행을 마무리했다. 이날 함께 한 대전 충남중학교의 유호철 학생은 “직접 발로 걸어 다니며 그 동네에 대해 더 잘 알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공정여행의 취지가 좋다”며 “다른 사람들도 이 취지에 공감했으면 좋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어느 지역으로 여행을 가던 그곳은 누군가에게는 삶의 터전이다. 사진만 찍고 떠나는 수박 겉핥기식의 여행이 아닌, 현지와 소통하는 여행을 떠나는 것은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