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다큐멘터리 '51+'

기자명 배공민 기자 (rhdals234@skkuw.com)

 

   ▲ 두리반에서 인디밴드가 열정적인 공연을 펼치고 있다. / ⓒ인디다큐페스티발2014

'인디다큐페스티발'에서는 사회참여와 노동자의 이야기들이 주를 이룬다. 여기 영화제의 주제를 모두 아우르는 작품이 있다. 힘없는 홍대인의 힘 있는 욕망이 뒤엉킨 곳, 두리반. 그 속에서 뜨겁게 피어나는 무언가에 이끌린 사람이 있다. 인디다큐감독 정용택은 식당 두리반과 인디밴드의 이야기를 영화 '51+'에 그려냈다. 그의 해설과 함께 '51+'를 감상해보자.

 ‘아, 두리반... 두리반 두리반 두리반 두리반’ 한 남자가 굴삭기에 의해 무너져 내리는 두리반 건너편에 앉아 구슬픈 노래를 부른다. 식당 이곳저곳이 붕괴할 때마다 그의 노래는 점점 탄식으로 변해간다. 정 감독은 두리반 바로 건너편에 살고 있었다. 두리반 주인장인 유채림 소설가와 그의 아내 안종녀 씨가 막 길거리로 쫓겨났을 때 즈음 우연히 신문에서 유 소설가의 글을 보게 됐다. “ ‘아내의 눈물 두리반’이라는 제목의 글이었어요. 두리반은 그가 소설을 쓸 수 있게 해주는, 그리고 네 가족을 먹여 살리는 우물이었는데 이를 철거업체에 뺏기면서 사라지고 있다는 내용이었죠.” 그렇게 두리반에 관심이 생기던 찰나 지인이었던 인디음악가 ‘한받’이 두리반에서 공연을 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렇게 이 다큐멘터리의 첫 프레임이 시작됐다.
이후 영화에서는 다른 인디밴드가 하나둘 두리반을 찾기 시작한다. 철거위기의 두리반과 인디밴드의 만남은 엉뚱한 것이 아니었다. 2000년도 중반 이후, 홍대는 과도한 상업화로 인해 임대료가 급격히 상승했다. 두리반이 위기에 처한 것도 장사가 안돼서가 아니라 치솟는 임대료 때문이었다. 인디밴드의 처지도 이와 마찬가지였다. 홍대 문화의 한 축을 담당하는 인디씬에는 유명하지 않은 인디밴드도 많았다. 그들이 공연하던 클럽도 임대료를 내지 못해 문을 닫기 시작했다. “이런 친구들이 공연할 곳을 찾다가 두리반의 처지를 듣게 된 거죠” 정 감독은 인디밴드들이 두리반에 찾아오게 된 계기를 설명했다. “자기들의 처지와 비슷하니 도와주고 싶고, 가면 공연을 할 수 있으니 자연스럽게 두리반을 찾게 된 거예요.” ‘밤섬해적단,’ ‘한받,’ ‘회기동단편선’ 등의 인디밴드가 찾아와 작은 음악회를 열기 시작했다. 그들 중 몇몇은 두리반에서 밴드를 결성하기도 했고, 또 누군가는 첫 앨범발표를 하기도 했다. 그들은 그렇게 자신들만의 크고 작은 연주를 이어나갔다.
 영화에는 그들의 독특한 음악이 고스란히 담겼다. 마이크를 집어삼킬 것처럼 입을 크게 벌리고 발악하듯 내지르는 노래. 그런 무대에 관객은 모두 몸을 흔들며 음악을 즐겼다. 철거로 인해 전기가 끊겨도 끝나지 않는 그들의 열정은 사람들의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두리반에서 축제를 즐기는 그들의 모습은 기사로 옮겨졌고 두리반은 대중의 관심을 받기 시작했다. 마침내 시작된 건설사와의 협상. 이 협상이 끝을 보기까지 장장 6개월의 시간이 걸렸다. 그 과정에서도 그들의 축제는 이어졌고, 결국 두리반은 다시 문을 열 수 있었다. 이 모든 과정을 정 감독도 함께 했다. 자신도 ‘인디다큐계’라는 가난의 현장에서 힘없는 사람을 많이 봐왔기 때문일까. 예상치 못한 결과에 그는 놀랐다. “두리반이 다시 문을 열었을 때 너무 기뻤어요. 저도 두리반에 있던 모든 사람들도.”

▲ 정용택 감독이 다큐멘터리 ‘51+’ 제작 당시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 김은솔 기자 eunsol_kim@skkuw.com

 “노동자는 노동자의 방식대로, 농민은 쌀과 경운기로 싸우는 것처럼, 소설가는 글로써 싸워야 한다.” 소설가는 어떻게 싸우냐는 질문에 대한 유 소설가의 답이다. 두리반에서 인디밴드는 그들의 선율을 관객석을 향해 뿜어냈고 소설가는 이 모든 사건을 글로 써내며 사람들의 눈을 트였다. 그들 이야기의 시작과 끝을 함께 한 정 감독은 객석에 듬성듬성 앉은 관객 앞에서 자신의 영화를 상영했다. 예술가만의 투쟁방법으로 기적처럼 다시 찾은 평화이기에, 적은 관객이지만 감독은 행복하게 너털웃음을 지어보일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