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여성학, 법을 통해 진정한 평등을 외치다
법여성학, 법을 통해 진정한 평등을 외치다
  • 조수빈 기자
  • 승인 2019.11.25 19:54
  • 호수 1658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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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 | 정선주 외부기자 webmaster@
일러스트 | 정선주 외부기자 webmaster@

기회의 평등뿐 아니라 조건·결과의 평등 이뤄야 해
법학의 남성 중심성 드러내고 법 재구성에 기여

 

법은 한 나라의 사회구조를 집약적으로 표현하는 것으로 그 사회의 시대적 사고와 철학을 반영한다. 또한 법은 사람들에게 당연하고 필요한 것으로 받아들여지며 가치판단의 기준이 되기도 한다. 즉, 법은 사회의 산물인 동시에 사회는 법의 영향을 받는다. 과거에 ‘남성의 학문’으로 여겨졌던 법학은 양성평등에 대한 의식이 높아짐에 따라 점차 변해왔다. 양성평등에 관한 관심이 높아진 오늘날의 사회에서 법은 어떻게 변화하고 있으며 어떻게 변화해야 할까. 법여성학은 이러한 물음에 대한 답을 건네고 있다.

여성의 관점에서 법을 바라보다
법여성학은 과거 가부장적 사회에서 만들어진 법을 여성의 관점에서 재조명하고 재정립하려는 움직임에서 등장한 여성주의 법학을 의미한다. 법여성학의 목적은 법의 영역에서 여성의 사고를 배제하거나 낮게 평가해왔던 것에 반대하고 법 실무를 여성의 시각으로 재구성하는 데 있다.

법여성학은 여성들이 남성 편향적인 법에 도전하고 인권을 확보하기 위해 진행한 여성운동에서 그 뿌리를 찾을 수 있다. 여성운동 제1의 물결은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반까지 미국과 영국에서 일어난 참정권 운동을 비롯한 ‘평등권’ 운동이었다. 여성이 법적·사회적으로 남성과 동등한 권리를 가졌으며 투표권은 남성만의 권리가 아닌 인간의 권리라는 점을 강조한 참정권 운동을 계기로 법에 대한 여성들의 자각이 높아졌다. 그러나 이러한 형식적 평등만으로는 남성과 여성 간의 실질적 평등을 가져올 수 없었다.

이어 1970년대에 일어난 여성운동 제2의 물결은 법이 남성중심주의를 반영하고 있어 만인에 대한 정의가 실현되지 못한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제기되며 시작됐다. 법학에서의 인간은 남성을 기준으로 하고 있으며 가부장제의 남녀역할의 차이를 당연한 전제로 하고 있다. 따라서 이 시기에는 성 역할 구분에 따른 억압을 복합적으로 분석함으로써 실질적 평등으로 나아가게 했고, 이는 여성학, 법여성학의 연구와 여성 인권을 보장하는 법과 정책의 형성을 촉진하는 초석이 됐다.

한편 국내 법여성학은 1950년대에 최초의 여성 법학박사인 이태영 변호사를 비롯한 법 전문가들이 남성 중심적인 법을 여성 차별적이라며 비판하고 대안을 제시하던 활동으로부터 시작됐다. 이어 1977년 이화여대에 ‘여성학’ 강의가, 1997년에 ‘법여성학’ 강의가 개설되면서 법여성학에 대한 연구가 본격적으로 이뤄졌다. 2000년대에는 법여성학 연구에 남성 법학자의 참여가 증가하면서 점차 성장했다.
 

동등한 기회를 제공하다
법여성학이 실현하고자 하는 평등은 △기회의 평등 △조건의 평등 △결과의 평등이다. 기회의 평등은 여성과 남성에게 차별적으로 주어졌던 기회를 동등하게 제공하도록 하며 조건의 평등은 여성이 남성과 동일한 여건으로 출발점을 같이할 수 있도록 보장한다. 그리고 결과의 평등은 오랜 기간 차별받아 왔기 때문에 현재 열등한 상태에 처해 있는 여성들이 평등한 결과에 도달하도록 한다.

법여성학의 일차적 과제는 성차별적인 제도와 법 조항을 폐지함으로써 기회의 평등을 실현하는 것이다. 기존 법학이 지닌 대표적인 성차별 문제는 ‘공·사 영역의 구분’이었다. 전통적으로 법학에서 남성은 공적 영역을, 여성은 사적 영역을 점하는 것이 타당한 질서로 규정돼왔다. 그런데 근대법의 자유주의 사상은 국가가 개인의 사적 영역을 보장해야 하므로 그에 대한 법적 규제를 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이는 사적인 영역에 속한 여성의 삶이 법으로부터 보호를 받지 못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문제들은 여성의 억압을 조장하거나 그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여성들의 도움의 요청을 무시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일례로 1970년 대법원은 부부간의 강간죄 성립을 인정하지 않았다. 사적 영역인 가정에서 발생한 문제는 법으로 규제할 수 없다는 논리였다. 또한 법여성학은 이러한 영역의 구분이 여성과 남성에 대한 역할을 정형화함으로써 여성의 사회적 역할을 제한하고 공적 영역에의 참여를 어렵게 하는 차별을 가져왔다고 비판한다.
 

같은 출발선상에서 시작해
완전한 평등의 길로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원장 문재완) 이은영 명예교수는 그의 저서 『여성을 위한 법』에서 “법의 영역에서 ‘성 중립적인 평등주의’는 여성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되지 않으며 경우에 따라서는 여성을 해롭게 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여성과 남성에게 동등한 기회를 제공하는 것만으로는 완전한 평등을 이룰 수 없다는 것이다. 법여성학은 여성과 남성이 종래의 지배 관계로 인해 서로 다른 상황에 처해 있으며, 이러한 차이를 무시한 채 동일하게 취급하는 것은 여성의 불평등을 제거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므로 여성과 남성의 경쟁 조건이 같아지도록 하는 조건의 평등을 이뤄야 한다고 말한다.

이와 같은 불평등은 노동영역에서 가장 많이 일어난다. ‘여성의 역할은 가사노동과 양육’이라는 역할분담의 이데올로기 하에서는 형식적으로 여성에게 남성과 같은 노동 기회가 주어진다고 하더라도 같은 결과를 이룰 수 없다. 많은 여성은 가사노동의 책임으로 인해 취업이나 사회활동을 하기가 어려우며 노동시장에 진출한다고 하더라도 사회활동과 가사노동을 병행해야 하는 어려움을 겪는다. 그 결과 사회활동을 중도에 포기하거나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경우가 빈번하다. 또한 여성은 생계부양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남성에 비해 낮은 임금을 받는다. 실제로 지난해 OECD가 발표한 성별 임금 격차를 보면 우리나라는 36.7%로 OECD 국가 가운데 가장 높다.

결과의 평등은 역사적으로 누적된 차별로 인해 경쟁에서 불리한 위치에 있는 여성들에게 잠정적인 우대조치와 복지 측면에서의 배려를 요구한다. 이에 대해 이 교수는 “역사적으로 차별받아 왔던 집단은 우월한 집단과 같은 지위에 접근할 조건이 만들어질 때까지 우대조치를 받음으로써 그들의 경쟁력을 형성할 수 있게 된다”고 설명했다. 이미 여러 나라에서 시행되고 있는 적극적 우대조치(affirmative action)와 할당제는 결과적 평등을 실현하는 제도이다. 이에 대한 사례로는 2002년 시행된 ‘국공립대 여성 교수 채용목표제’가 있다. 이는 국공립대 여성 교수의 비율이 8~9%에 그친 상황에서 ‘대학의 교원을 임용함에서 있어서 특정 성별에 편중되지 아니하도록 해야 한다’는 교육공무원법에 따라 시행됐다.

법여성학이 갖는 의미
지난 3월 국제의회연맹(IPU)이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한국의 여성 국회의원의 비율은 17.1%(51명)로 전 세계 평균 24.3%와 큰 차이를 보였다. 이는 세계 121위에 해당하는 수치다. 지난 3월 대법원은 올해 여성 법관이 889명으로 법관 2918명 가운데 30.5%를 차지하고 있다고 밝혔다. 지방법원 부장판사 중 여성 비율은 19.7%, 고등법원 부장판사 비율은 4.3%, 대법관은 23%(3명)인데, 이는 높은 직급에서의 여성 비율은 더 낮음을 보여준다. 이에 대해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원장 오종근) 김선욱 명예교수는 「법여성학의 연구 동향과 과제」에서 “법 분야에 여성들의 수가 조금씩 늘고 있지만, 이 분야의 여성들은 법과 법학에 관련된 남성적인 전통 안에서 활동하게 되고 남성적 가치가 내면화되므로 법은 여전히 남성적 활동이 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는 법을 여성의 관점으로 바라보는 법여성학이 갖는 한계로 작용한다.

국내 법여성학의 연구자 부족 역시 법여성학의 한계점이다. 부산대 법학전문대학원(원장 이정표) 오정진 교수는 “연구자가 많은 외국에 비해 우리나라 법여성학 연구자가 많지 않아 다양한 분야의 법여성학 연구와 활동이 깊이 있게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한 이유로 그는 “법여성학 연구는 법학 전공자가 아니면 충분한 접근이 어려운데 법학 전공자 중에는 여성주의 시각이 미미한 경우가 많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또한, 법여성학은 여성의 시각이나 경험으로 법을 바라본다는 측면을 강조함으로써 여성들만 참여하고 여성만을 위한 것으로 오인돼 남성의 관심과 참여를 저조하게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법여성학은 가부장적 사회구조와 법의 문제를 드러내고 여성 인권의 보장과 양성평등을 현대 법질서의 기본원칙으로 확립시키는 데 이바지했다는 점에 의의가 있다. 이에 대해 오 교수는 “객관성과 공정성을 표방해 온 법학의 남성 중심성을 드러내고 비판하며 진정으로 모든 이의 자유, 평등, 정의를 위해 법을 재구성한다는 점에 법여성학의 의의가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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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보검 2019-11-26 12:32:46
좋은 글 잘 보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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