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나지윤 기자 (nanana@skkuw.com)

도축 혹은 살처분뿐인 농장동물의 미래
이들의 권리를 위한 인식 개선과 제도적 보완 필요해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로 인해 인류는 마스크를 끼고 사회적 거리두기를 시행하고 있다. 하지만 농장의 동물들에게는 거리를 둘 공간이 허용되지 않는다. 대부분의 농장동물은 좁고 열악한 환경에서 고통스럽게 지내다 도축 당하거나 전염병으로 인해 살처분된다. 심지어 전염병에 걸리지 않았는데도 근방에 병이 발생했다는 이유만으로 심한 고통 속에서 죽어가야 하는 실정이다. 반려동물, 전시동물 등과 달리 우리는 농장동물을 살아있지 않은 상태로 마주한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기본적인 권리를 보호받지 못한 채 인간의 이기적인 이익만을 위해 ‘농장’ 동물이 된 이들의 권리에 대해 알아보자.


농장 속 동물들의 권리
농장동물이란 경제적인 이용을 목적으로 농장에서 사육되는 동물을 뜻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지난해 기준 약 2억 2천 마리의 동물이 농축산업 분야에서 상품으로써 사육·생산됐다. 농장동물은 반려동물과 같이 동물보호법이 보호하는 ‘동물’의 범주에 포함되며 동물로서의 고유한 가치를 지닌다. 하지만 축산물을 얻기 위해 길러지는 농장동물은 상품화가 불가피하다는 점에서 주로 축산물 위생관리법이나 가축전염병 예방법의 적용을 받는 대상으로만 인식되고 있다. 

죽어야 나갈 수 있는 동물공장
공장식 축산 시스템은 농장동물이 기본적인 권리조차 보호받지 못하게 하는 근본적인 원인이다. 공장식 축산은 최소한의 비용으로 생산량을 극대화하기 위해 동물을 한정된 공간에서 대규모 밀집 사육하는 축산의 형태다. 국내 가축농장의 대부분은 동물의 기본적인 욕구와 습성을 고려하지 않은 채 스톨과 배터리 케이지를 이용해 공장식 축산을 하고 있다. 스톨은 좁은 감금 틀로, 돼지 농가의 대부분이 스톨을 사용해 돼지를 신체적·정신적 고통 속에서 사육한다. 임신한 어미 돼지의 경우 고개를 돌릴 수도 없는 스톨에 갇혀 새끼를 낳고 다시 임신하기를 반복해야 하는 현실이다. 또한 배터리 케이지는 *산란계를 밀집 사육할 수 있도록 만든 0.05m² 크기의 철망을 이른다. 이는 A4용지 2/3 크기와 같다. 창고에 3~4단으로 배열된 배터리 케이지에서 닭은 날개를 펼칠 수조차 없다. 이에 강원대 법학전문대학원(원장 정진근) 함태성 교수는 “밀집 사육은 전염병을 대량으로 빠르게 확산시키는 원인이기도 하다”며 친환경 축산으로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도축 과정에서 또다시 고통받아
열악한 환경에서 사육된 농장동물은 도축 과정에서도 큰 고통에 직면한다. 동물보호법 제10조에 따르면 모든 동물은 혐오감을 주는 잔인한 방법으로 도살돼서는 안 되며 반드시 의식이 없는 상태에서 고통을 최소화해 도살 단계로 넘어가야 한다. 그러나 농림축산식품부 조사에서 전기기절시킨 돼지 중 10% 이상이 의식을 회복한 것으로 추정되는 상태에서 도축된 것으로 밝혀졌다. 함 교수는 “도축장에서의 법 위반을 막기 위해 행정기관의 엄격한 감시 및 법적 개선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규정 외의 방법으로 잔인하게 죽이는 불법 도축 문제도 심각하다. 염소나 토끼 등 수요가 비교적 적은 동물은 허가된 도축장이 아닌 전통시장과 사육시설에서 잔혹한 방식으로 불법 도축돼 유통된다. 소량 도축되기에 도축장은 수익을 기대할 수 없으며 농가는 큰 도축 비용을 부담해야 하기 때문이다.

예방 접종이 아닌 예방적 살처분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920개 농장에서 23만 1016마리의 동물이 전염병에 걸렸다. 이렇게 양성 판정을 받은 동물들은 치료가 아닌 살처분에 처해진다. 농장동물 살처분이란 가축전염병 예방법 제20조에 따라 전염병으로 인한 피해 방지를 목적으로 동물의 생명을 박탈해 처분하는 것을 뜻한다. 이에 지난해 10월부터 전국적으로 확산된 조류인플루엔자(이하 AI)로 2천800만 마리의 가금류가 살처분되기도 했다. 돼지의 경우 농림축산식품부령에 따라 비닐로 덮인 구덩이에 몰아넣은 후 이산화탄소를 분사하는 방식으로 살처분된다. 이때 돼지들은 고통에 괴성을 지르고 서로 짓밟으며 땅 위로 올라오려 발버둥 친다. 최근 AI의 빠른 확산으로 하루 20만 마리가 넘는 닭들을 살처분하며 중장비로 짓누르거나 때려서 죽이는 경우도 발생하고 있다.
전염병에 걸린 동물만 살처분 대상이 되는 것은 아니다. 동물복지농장으로 유명한 산안마을의 닭들은 음성이었음에도 AI에 감염된 농장의 반경 3㎞ 내에 있었다는 이유로 모두 살처분됐다. 전염병 발생이 우려되는 경우에도 동물을 살처분할 수 있는 예방적 살처분의 법적 근거가 마련돼 있기 때문이다. 함 교수는 “예방적 살처분은 질병 관리라는 행정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건강한 동물의 생명을 박탈하는 것”이라며 “정부가 일괄적으로 3km와 같은 구역을 설정하기보다 농장별로 지형적 요소 등을 고려해 확산 가능성을 판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예방적 살처분의 대안으로 백신 접종이 논의되고 있다. 한국가금수의사회 윤종웅 회장은 “바이러스에 감염된 농장이라도 백신을 맞았다면 바이러스 배출량이 1/100 이하로 감소하면서 전파 속도가 매우 떨어진다”며 백신으로의 대체 가능성을 제시했다. 이어 윤 회장은 “살처분은 경제성 측면에서 수행됐으나 백신은 마리당 약 200원 수준으로 1만 원 정도의 살처분보다 더 효과적인 대안이 될 수 있다”라고 덧붙였다. 

동물농장에 권리를 담다
농장동물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농장동물 복지라는 개념이 등장했다. 농장동물 복지란 도축을 하더라도 살아있는 동안에는 동물로서의 근본적인 권리를 지켜주고, 최소한의 고통으로 도축하는 등 가축의 존귀함을 지켜주기 위해 등장한 개념이다. 미국 농장동물위원회에서는 ‘동물의 5대 자유’를 발표해 이들의 기본적인 권리에 대해 명시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농장동물의 복지를 위해 동물복지축산농장 인증제와 난각표시제를 도입했다. 동물복지축산농장 인증제는 동물의 복지를 증진하는 축산농장에 대해 정부가 동물복지축산농장임을 인증해주는 제도다. 동물복지축산농장과 공장식 축산농장을 구분하는 주요 기준으로는 사육 과정에서의 신체 훼손 여부, 감금 틀 사용 여부 등이 있다. 하지만 ‘2020년 4분기 가축동향조사’에 따르면 국내 주요 가축 사육 농가 10만 8천여 가구 중 동물복지축산농장으로 인증받은 가구는 280여 곳으로 실질적인 참여도가 낮은 편이다. 함 교수는 “동물복지에 입각한 축산의 활성화를 위해 축산계열화사업자의 의무를 강화하고 인증제도를 보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난각표시제는 2018년 8월부터 실시된 사육환경표시제로, 소비자는 달걀 껍데기에 적힌 마지막 숫자를 통해 배터리 케이지에서 생산된 달걀을 구별할 수 있다. 하지만 동물자유연대의 ‘케이지프리 인식조사’에 따르면 난각표시제를 정확히 알고 있는 시민은 6.4%에 불과했다. 

동물복지에 대한 인식이 반려동물을 넘어 농장동물에도 조금씩 확산되고 있지만, 아직 한계가 존재한다. 이에 윤 회장은 “농장동물의 복지에 대해 지속적이고 폭넓은 사회적 합의와 제도적 준비가 필요하다”며 “소비자들의 인식 변화 및 사육환경 개선을 위한 논의가 지속돼야 한다”고 전했다. 

*산란계=계란 생산을 목적으로 사육되는 닭.

 

일러스트 I 김지우 기자 webmas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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