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황수지 기자 (bungeeinme@naver.com)

문화인과의 동행 - 김명지 단청 문화재수리기능사

미술문화재학원에 들어서자 우리나라 사찰에서 볼 수 있는 화려한 단청이 기자의 시선을 빼앗았다. 호랑이와 학이 오방색의 단청 위에 장엄하게 그려져 있었다. “좋은 것은 멀리 있지 않아요. 단청은 보면 볼수록, 알면 알수록 더 아름답답니다.” 단청과 같이 붉고 푸른 형형색색의 아름다움을 가진 김명지 원장을 만나보았다. 


유일무이한 아름다움을 가진 단청
단청(丹靑)은 △백색 △적색 △청색 △황색 △흑색을 기본색으로 궁궐의 각종 건축물이나 사찰의 전각에 칠을 하거나 무늬를 그리는 예술 행위를 의미한다. 이는 나무의 윗부분이 푸르고 아랫부분이 붉다는 상록하단(上綠下丹)의 이치에 따라 건물 윗부분을 구성하는 처마나 지붕은 푸르게, 아랫부분에 위치한 서까래나 기둥은 붉게 색칠한다. 김 원장은 “단청은 자연과 건축이 조화를 이루도록 한 우리나라 고유 정서와도 맞닿아 있어요. 상록하단을 따라 단청에 색을 입히는 것도 그 때문이죠. 청색과 적색을 바탕으로 그 위에 꽃, 달, 새, 봉황, 호랑이를 그려 예쁘게 장식해요”라고 말했다. 

김 원장은 단청이 미관상 화려하고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목재를 보존하고 목재의 단점도 보완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과거 우리나라의 건축물은 주로 목재로 만들어져 비바람에 의해 썩고 부식되기 쉬웠어요. 이를 방지하기 위해 목조 건물에 광물성 칠감을 바른 것에서 단청이 유래됐죠. 소나무처럼 송진 가루 때문에 건축에 적절하지 않은 목재에 단청을 입혀 송진 가루가 떨어지지 않게 하게 하고 목재를 더 단단하게 만들어주기도 해요.” 

단청은 건축물의 성격을 나타내거나 특수한 건물의 용도에 맞게 장엄성과 위엄을 보이기 위해 그려지기도 한다. 단청은 건물의 위계에 따라 △가칠단청 △긋기단청 △모로단청 △금단청으로 나뉜다. 궁궐 내 관청이나 승려가 생활하는 요사채는 한두 가지 색으로 단순하게 채색된 가칠단청이나 긋기단청이 그려진다. 궁궐의 편전 외부나 편전 앞문에는 5가지 색을 사용한 모로단청이, 궁궐의 정전이나 편전 내부와 같이 가장 장엄해 보여야 하는 곳은 금단청이 사용된다. 금단청은 가장 높은 장엄에 해당하기에 ‘비단 금(錦)’이라는 한자에 걸맞게 화려할 뿐 아니라 비단 문양처럼 곱고 아름다운 문양을 넣는다.
 

하나뿐인 작품을 남기기 위해 
단청을 공부하다

어렸을 적부터 디자인을 전공했던 김 원장은 2016년부터 전통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하루를 아등바등 살아가기에 급급했던 저는 8년 전 암 판정을 받은 뒤, 앞으로 좋아하고 의미 있는 것을 하며 세상에 흔적을 남겨야겠다 결심했어요. 요양 후 2016년부터 미니어처를 배웠는데 당시 외국 건축물 미니어처는 많았지만 한옥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미니어처는 많이 존재하지 않았어요. 한옥의 훌륭한 결구 방식이나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제대로 된 작품을 만들고 싶었죠.”

이후 김 원장은 자신만의 작품을 만들겠다는 결심 하나로 작은 가구와 창호 등 한옥을 구성하는 요소들을 공부했다. 김 원장은 “사실 단청은 제가 계획하고 있는 작품의 5%밖에 차지하지 않아요. 하지만 모든 것을 제대로 알고 해야 훌륭한 작품이 나올 수 있어요”라고 말하며 그의 작품과 전통에 대한 열정을 밝혔다.

김 원장은 작품을 위해 공부하는 과정에서 2017년에 문화재수리기능사 칠공 분야, 2019년에 화공 분야 자격증을 취득했다. 문화재수리기능사는 문화재수리기술사의 관리하에 훼손된 문화재를 원형에 가깝게 복원해 손상을 방지하는 일을 한다. 문화재수리기능사는 문화재청에서 1년마다 여는 문화재수리기능시험에 합격하면 취득할 수 있다.

김 원장은 앞으로 문화재 수리업의 전망이 밝으리라 예측했다. “우리나라는 문화재 복원 및 보존의 역사가 다른 나라에 비해 아주 짧지만 단기간에 문화재 보존에 대한 인식이 급속도로 성장했기에 앞으로의 발전 가능성이 높아요. 지정문화재의 수가 늘어나고 있으며 문화재의 보수 주기가 짧아지고 있어 문화재수리기능자의 인력에 대한 수요가 늘어날 것으로 봅니다.”
 

전통이 융합되는 곳, 미술문화재학원 
김 원장은 서울시 강서구에서 미술문화재학원을 운영하며 단청 그리는 법을 가르치고 있다. 김 원장은 전통미술 문화 사업이 발전할 수 있는 밑바탕을 마련하고 싶다는 목표를 내비쳤다. “한국은 아직 문화재 복원 기술을 배우기에 폐쇄적이고 권위적인 환경을 가지고 있어요. 하지만 단청 산업이 발전하고 뒷세대에 계승되기 위해서 누구나 쉽게 배울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미술문화재학원은 제 소망을 실현하기 위해 설립된 곳이죠.” 미술문화재학원은 전통 문양인 단청을 그리는 법을 알려주는 기본적인 1차 전문 교육과 △단청 프로그램 개발 및 교수법 △단청 융합디자인 △문화재수리기능자 자격증을 목표로 하는 2차 맞춤형 진로 교육으로 구성돼 있다. 

미술문화재학원은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모인 하나의 협업 공간 형태로 운영된다. “학원에 있는 프랑스자수 전문가, 미술 심리 치료사, 손뜨개 전문가, 전자제품 디자이너에게 단청 문양을 교습했어요. 그들 각자의 전문 분야 혹은 예술 작품에 전통문화를 융합시킬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죠.” 현재 김 원장은 미술문화재학원을 국비 학원으로 등록해 교습 비용 부담을 덜어 누구나 단청을 쉽게 배울 수 있는 곳으로 만들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
 

기본을 배워 재해석하라
우리의 전통을 재해석하려는 움직임은 여러 방면에서 나타나고 있다. 김 원장은 전통의 재해석이 시대가 변화함에 따른 자연스러운 현상이지만 기본을 제대로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기본을 닦아놓은 상태에서 변화와 융합을 통해 전통을 재해석해야 해요. 그래야 전통이 본질을 잃고 퇴색되는 일이 발생하지 않겠죠.” 김 원장은 “단청에는 여러 가지 디자인 요소가 융합돼 있다”며 “디자인 실력을 다듬기도 좋을 뿐만 아니라, 서구에서 볼 수 없는 독특한 전통이기에 세계화에 있어 차별화된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김 원장은 단청이 디자인하는 사람들이 필수적으로 배우는 과목이 됐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덧붙였다. 우리의 전통 문양인 단청을 배우고자 하는 학생들로 가득 찬 미술문화재학원에서 김 원장을 보기를 기대하며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김명지 원장과 김 원장의 작품.
김 원장이 제작한 연화 단청 일러스트.
ⓒ김명지 원장 제공.
미술문화재학원의 풍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