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김혜균 (sgprbs@skkuw.com)

뉴트로와 한국 문화 위상 발전으로 새롭게 주목받는 ‘K-전통’
전통 본질에 대한 논의와 함께 재해석 이뤄져야

 

‘전통은 젊은 감성과는 거리가 있다’는 인식도 이젠 옛말이 됐다. K-문화 콘텐츠가 세계적으로 주목받으면서 ‘한국적인 것’에 대한 인식이 제고되는 현재, 본지에서는 현대 사회 속 청년이 전통을 인식하는 모습을 되짚어보고자 한다.




한복과 댕기, 전통 넘어 이벤트와 문화로
현연지(사학 21) 학우는 4월이 되면 동기들과 한복을 입고 경복궁에 놀러 갈 예정이다. 현 학우는 “친구들과 공강 시간을 미리 맞추고 있다”며 “경회루 앞에서 함께 사진도 찍을 계획”이라고 말했다. 

봄·가을이 되면 현 학우처럼 색색깔의 한복을 갖추고 광화문이나 북촌 등 문화유적지를 방문하는 청년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한복을 입고 거리를 걷는 것에 대한 부담도 과거에 비해 많이 줄어든 추세다.

거부감을 낮추는 데는 미디어의 영향이 한몫했다. 방탄소년단은 2018년 멜론뮤직어워드에서 노래 ‘IDOL’을 국악 버전으로 편곡해 한복을 입고 공연을 펼쳤다. 지난 2월 제28회 미국 배우조합상(SAG)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정호연 배우는 시상식에 한국 전통 머리 장식인 댕기를 달고 등장해 눈길을 끌기도 했다.

일상에서도 *철릭 원피스나 우리나라 전통 *배자를 변형한 자켓처럼 한복에서 영감을 얻어 제작된 의류가 2030대 사이에서 소소한 인기를 끌고 있다. 그 이유에 대해 한국전통문화대 무형유산학과 정성미 교수는 “현대적 관점에서 재해석된 생활한복 디자인이 청년들에게 새롭고 신선한 이미지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이라며 “청년들은 한복을 통해 고유 정체성과 개성을 표현하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우리 학교 의상학과 임은혁 교수는 “한복이 일상 속 ‘데일리옷’으로 자리 잡은 것은 아니지만, 결혼 예복으로만 소비하던 과거에 비해 한복의 접근성이 높아진 것은 사실”이라며 “현재 청년에게 한복은 일상에선 느끼지 못하는 재미있는 경험과 새로움을 주는 하나의 놀이 문화로 자리잡았다”고 밝혔다.
 

반가사유상의 은은한 미소부터 
고궁 유리등까지, 내 방에 모십니다

‘암행어사 출두요!’라는 말을 들으면 암행어사가 놋쇠로 된 마패를 번쩍 들고 외치는 모습이 머릿속에 그려진다. 마패는 조선시대 말을 빌리는 수단이다. 조선시대에 말은 교통수단이었으니 마패는 오늘날 교통카드의 기능을 했던 셈이다.

이러한 아이디어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마패 교통카드’는 지난해 6월 서울시가 주최한 제9회 서울상징관광기념품공모전에서 대상을 수상했다. 마패 교통카드는 크라우드 펀딩 사이트 텀블벅에서 이번 달 말에 출시될 예정이다. ‘*힙(HIP)하고 재치 있다’는 평을 받으며 큰 화제를 모았던 해당 제품은 지난 18일 기준 3만 9627명이 제품 입고 알림을 신청했다.

한편 청년들 사이에 힙한 전통문화를 소유하고자 하는 문화가 자리잡으면서 뮤지엄샵이 큰 인기를 끌고 있다. 2020년 10월 국립중앙박물관 반가사유상 브랜드관 개관을 기념해 출시된 반가사유상 미니어처는 현재까지 1만 개 이상 팔렸다. 실제로 이를 구매한 30대 직장인 A 씨는 “평소 불교문화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며 “전통문화재가 지닌 멋을 고스란히 살린 점이 마음에 들었다”고 말했다.

이뿐만 아니라 국립중앙박물관은 온라인 사이트 ‘뮤지엄숍’에서 고려청자 문양을 활용한 에어팟 케이스, 단청 우산 등 다양한 굿즈를 판매하며 청년들에게 긍정적인 반응을 얻었다. 국립고궁박물관에서 큐레이터 추천 왕실 유물 사업으로 공개된 조선왕실 사각 유리등은 처음엔 판매 목적으로 기획된 것이 아니었으나, SNS에서 20, 30대에게 큰 인기를 끌면서 DIY 키트로 정식 출시됐다. 해당 제품은 세 차례 품절 대란을 일으킨 뒤 현재까지 2만 점 넘게 팔리며 꾸준한 인기를 얻고 있다.


청년은 왜 전통에 주목하나
현재 청년은 전통문화를 힙하다고 인식하고 있다. 그 이유 중 하나로 패션계의 영향이 두드러진다. 임 교수는 “패션계에서는 지역 토착의 전통문화에서 새로움을 느끼고 이러한 문화 요소를 차용하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전통 요소가 들어간 최신 유행의 패션을 접하면서 청년들이 전통 또한 힙하다고 인식하게 된다는 것이다.

청년이 전통을 선호하는 현상이 ‘뉴트로’의 연장선이라고 보는 시각도 있다. 뉴트로는 뉴(New)에 복고를 의미하는 레트로(Retro)를 합친 말로, 이색적인 경험을 추구하는 청년들이 경험해본 적 없는 과거에 새로움과 매력을 느끼는 것을 말한다. 한국전통문화대 무형유산학과 최영성 교수는 “과거에는 한국 고유문화가 특별한 것으로 인식되지 않았지만 시간이 흐르고 사회가 서구화됨에 따라 다시 ‘한국적인 것’에 대한 관심이 증대됐다”며 “뉴트로를 즐기는 청년이 한국 전통문화에 주목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라고 설명했다.
 

재해석에 앞서 전통에 대한 
이해도 뒷받침돼야

전문가들은 청년들이 전통을 지나간 시대에 가두지 않고 이를 즐기고 향유하는 문화로 인식하는 현상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무비판적인 변형은 지양해야 한다고 말한다. 임 교수는 “최근 ‘문화적 전유’가 중요한 문제 중 하나로 불거지고 있다”며 “우리나라에서도 전통을 현대적 관점으로 재해석하고 타 문화와 융합하는 과정에서 그 본질을 훼손하고 있지 않은지 성찰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문화적 전유란 타 문화를 자신의 창작물 속에 차용하면서 벌어지는 직접적 또는 파생적 분쟁과 관련한 현상을 말한다. 블랙핑크가 2020년 발표한 곡 ‘How You Like That’ 뮤직비디오에서도 문화적 전유 논란이 빚어졌다. 해당 뮤직비디오에서 인도 전통문화 요소를 차용하기 위해 힌두교의 신 가네샤 상을 바닥에 배치한 장면이 있었는데, 이 신을 섬기는 인도의 누리꾼들이 모욕감을 느낀 것이다. 논란이 불거지자 해당 장면은 삭제됐다. 우리 학교 의상학과 서승희 교수는 “전통과 역사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을 바탕으로 전통을 재해석해야 한다”고 전했다.


◇철릭=조선시대 무신이 입던 공복.
◇배자=저고리 위에 덧입는 단추가 없는 짧은 조끼 모양의 옷.
◇힙하다=고유한 개성과 감각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최신 유행에 밝고 신선하다.
 

마패 교통카드.
ⓒ텀블벅 캡처.
SAG 시상식의 정호연 배우와 반가사유상 미니어처.
ⓒ조 제니 스타일리스트 인스타그램 캡처.
ⓒ뮤지업숍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