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손재원 기자 (magandsloth@skkuw.com)

오늘도 노동자 사망 사고는 끝나지 않는다
우리 모두 미래의 노동자라는 인식 필요해

 

지난달 27일 저녁 양재역 SPC 본사 앞에는 노란 풍선이 둥둥 떠다녔다. 풍선을 들고 단상에 오른 시민대책위 위원들은 ‘파리바게뜨 노동자의 친구들’이 되자고 제안했다. 촛불을 든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들고 거리를 지나치던 시민들의 시선도 한 번씩 머물렀다. 이들은 왜 여기 모였을까? SPC는 파리바게뜨와 삼립 등이 속해 있는 모회사다. 4월 27일은 민주노총 산하 화섬식품노조 파리바게뜨지회 소속 임종린 지회장이 노동자의 권리 보장을 요구하며 시작한 단식이 한 달째 이어지던 날이었다. SPC 파리바게뜨 시민대책위가 본사 앞에서 시민선언 촛불문화제를 개최한 이유다.


죽은 노동자들의 사회는 언제까지?
2021년 한 해 동안 사망한 노동자는 얼마나 될까. 우리나라는 근로복지공단의 산재보험 유족급여 수령 건수로 사망자를 파악한다. 중앙대 사회학과 이병훈 교수는 “공단 통계는 행정적 절차로서 실제 산재 상황과는 차이가 있다”고 지적했다. 우선 유족급여를 신청하지 않았거나 미수령한 경우는 포함되지 않는다. 급여 처리 일자가 기준이기 때문에 당해 사망자 수가 정확히 반영되기도 어렵다. 또한 해당 통계는 사고 사망만을 대상으로 한다. 고용노동부의 2021년 산업재해현황 통계에 따르면 사고 사망자 수는 828명으로 전년 대비 6.1%가량 감소했다. 반면 질병 사망자 수는 1252명으로 오히려 약 6.1% 증가했다. 사고와 질병 사망을 합친 실질적인 산재 사망자는 2000명 이상이다. 이 교수는 “법이 통과돼도 산재는 계속된다”며 사고를 줄일 수 있는 실질적인 개선방안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노동자를 위한 안전벨트, 노동법
노동권과 관련하여 가장 기본이 되는 사회 제도는 노동법이다. 노동과 관련된 법안은 △근로기준법 △산업안전보건법(이하 산안법) △중대재해처벌법 등 다양하다. 그중 산안법은 2019년 故 김용균 씨 사망 이후 약 3년간 6차례 개정됐다(본지 1645호 ‘24세 하청업자 노동자 김용균, 한국 사회에 숙제를 남기다’ 참조). 2021년 8월 일부 개정된 가장 최근의 개정안은 올해 8월부터 시행을 앞두고 있다.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박귀천 교수는 “6회라는 횟수를 보편적이거나 특수하다고 단정 짓기는 어렵다”며 “노동법은 급변하는 노동 및 사회적 환경에 따라 상대적으로 자주 개정되는 편”이라고 전했다. 현재까지도 노동법을 둘러싼 사회적 논의는 지속 중이다. 박 교수는 “현대에는 산업구조가 급변하고 다양한 고용 형태가 출현해 항상 문제가 발생한다”며 “법은 노동 환경의 사각지대가 없는지 끊임없이 감시·경계하는 차원에서 필요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노동자‘들’의 목소리: 노동조합
지난달 20일부터 국제노동기구(이하 ILO)의 핵심협약 중 3개의 비준 효력이 발생했다(본지 1661호 ‘국제노동기구의 핵심협약 비준, 우리나라는 몇 걸음 남았나’ 참조). 이를 통해 △강제노동 철폐 △노동자의 결사의 자유에 대한 기본 원칙 규정 △단결권 및 단체교섭권 등이 보장된다. 해당 협약은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의 양대 체제로 구성된 국내 노동조합(이하 노조)에도 영향을 미친다. 이 교수는 “노조는 일종의 목소리”라며 “자본주의 경제 체제에서 상대적 약자에 속하는 노동자들이 집단으로 힘을 모으는 방법”이라고 말했다. 개인 차원에서 목소리를 내기 어려운 노동자들은 노조를 통해 교섭·협의·파업 등 단체행동에 나서기도 한다.

국내에서 노조에 대한 인식이 긍정적이기만 한 것은 아니다. 옛날부터 이어진 부정적인 시선과 더불어 일각에서는 ‘귀족노조’에 대한 비판이 제기된다. 이 교수는 “국내 노조는 기업별로 나눠 체계가 구성돼 있다”며 “권익 보장을 위한 활동도 주로 해당 기업 내에 국한된다”고 한계를 짚었다. 특히 대기업 정규직 위주로 구성된 경우가 많아 그만큼 노조 바깥의 노동자들이 소외되기도 한다는 설명이다. 박 교수는 “소규모 사업장일수록 노동자 보호에 소홀하거나 환경이 열악한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5인 미만 소규모 사업장은 근로기준법을 포함한 대다수 노동법이 적용되지 않는 사각지대에 속한다. 노조에 소속되지 못한 비정규직이나 노조가 존재하지 않는 소규모 사업장 노동자의 경우 권리를 보호받기 어렵다.

한편 노조가 시민 사회와 연대하는 경우도 있다. 임 지회장의 단식에 연대하는 해시태그가 SNS에 퍼지고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SPC그룹 산하 브랜드 불매에 나선 것이 그 예다. 이 교수는 “노조 내에서도 소외되는 노동자들에 대한 연대나 배려가 필요하다”며 “노조의 활동 방식과 시민들의 인식 변화가 함께 이뤄져야 할 것”이라는 의견을 전했다.

노동의 목소리가 잘 들립니까?
노동자의 이야기가 사회적으로 전달되려면 대부분 언론을 거쳐야 한다. 대표적인 뉴스 가치로는 △시의성 △영향성 △저명성 등이 꼽힌다. 지난주에도 △인천 △제천 △울산 등에서 노동자가 사망해 관련 기사가 나왔지만 조회수나 포털에 노출되는 빈도 등에서 주목도가 낮다. 상당수 노동자의 사망 소식은 지역과 연령대, 업종 등만 짧게 전해진다. 올해 초 노동건강연대가 기획해 출간한 ‘2146, 529: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노동자의 죽음’은 지난 한 해 동안 사망한 노동자의 현황이 담겼다. 부연설명 없이 신문 기사에서 발췌한 부고를 나열하는 방식으로 노동자들의 죽음을 전한다.

한편 20대 대학생에게 노동 이슈는 다소 거리가 먼 문제로 여겨지기도 한다. 노동과 관련된 기사를 따로 찾아보지 않는다는 대학생들에게 이유를 물었다. A(21) 씨는 “메인 화면에 뜨는 뉴스만 주로 보는 편”이라고, 한가은(23) 씨는 “내 얘기가 될 거라고 생각하지 않아 찾아 읽지 않는다”고 전했다. 우리 학교 김태영(한문 20) 학우 역시 “사망이나 파업 등 큰 사건이 많아 대학생의 일상과 관련이 있다는 생각은 잘 들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나 노동 이슈를 멀게 느끼는 대학생에게도 노동권 침해는 낯선 일이 아니다. 남연송(연기예술 18) 학우는 방송국에서 영상 편집 계약직으로 일하며 업계의 노동 환경에 의문을 품게 됐다. 남 학우는 “편집이나 촬영 노동자 상당수는 하청업체에 소속돼 일한다”며 “중간에 떼는 액수가 커 실수령 금액은 최저시급을 겨우 웃도는 수준”이라고 밝혔다. 한 씨는 파리바게뜨에서 근무하던 중 매니저가 사장 앞에서 외모를 평가한 경험과 더불어 “타 지점에서는 사장이 월급을 주지 않고 잠적해 노동청에 신고하게 됐다”고 말했다. A씨 역시 “주점 홀서빙을 할 때 주휴수당 없이 일했다”며 “대부분 부당하다고 느꼈지만 역설적으로 가게 분위기는 좋아 아무도 말을 꺼내지 못했다”고 모순적인 상황을 전했다.

‘남의’ 일이 아니라 ‘내 일’이기도 합니다
2021년 기준 노동자들이 가장 많이 사망한 업종은 건설업(사고, 50.4%)과 광업(질병, 27.2%)이다. 그러나 1·2차가 아닌 3차 산업 노동자의 사망도 적지 않다. 박 교수는 “과로로 인한 화이트칼라 노동자의 질병 및 산재사망 비율도 높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직종에 무관하게 한국에서 안전한 일터 자체가 상당히 적은 게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1·2·3차 산업을 나누지 않더라도 사회적으로 노동권에 대한 논의가 꾸준히 필요한 이유다. 이 교수는 “해방 이후 경제 발전을 중시하는 과정에서 상대적으로 노동 문제가 뒤로 밀렸다”고 전했다. 이제는 노동자들의 인격과 권리를 존중하는 게 당연해져야 한다는 얘기다.

노동이 ‘남의 일’처럼 여겨지지 않으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본지가 만난 학우들은 노동 이슈가 대학 생활이나 취업 등의 고민과는 거리가 멀게 느껴진다고 얘기하기도 했다. 반면 특정 업계에 종사할 계획이 있고 해당 업계가 노동 정책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는 학우는 본인의 일상과 노동이 보다 밀접하게 여겨진다고 말했다. ‘영상을 업으로 삼고 싶은 학생’이라고 스스로를 소개한 남 학우는 “영상 종사자는 뿌듯함으로 일한다는 말도 있지만 그와 함께 합당한 금전적 보상도 주어지길 바란다”며 앞으로의 노동 환경 개선에 대한 소망을 전했다.

 

2021년 노동자 사망 사고가 발생한 지역을 시, 군 단위로 표시한 지도.
해당 내용은 책 '2146, 529: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노동자의 죽음'에 수록된 부고(2021년 산재사망자 수의 추정치 2146명)를 기준으로 했다.
지난달 27일 양재 SPC 본사 앞에서 진행된 촛불문화제 모습.
사진 | 김가현 기자 dreamer7@
'파리바게뜨 노동자의 친구들'이 되자고 제인하는 시민대책위 위원들. 
사진 | 김가현 기자 dreamer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