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안세현 기자 (eva3661@naver.com)

 

인공지능이 가져올 노동 패러다임의 전환
윤리적 공백을 메우기 위한 다양한 논의 필요해

 

증기기관의 발명에서부터 현재의 4차 산업혁명에 다다르기까지, 기술의 발전에 따라 시대가 우리에게 요구하는 노동은 달라지기 마련이다. 누군가의 일자리는 사라질 것이고 다른 누군가에게는 새로운 일자리가 주어질 것이다. 노동자로서 인간에게 놓인 선택지는 무엇인지, 우리 인간의 노동은 어떻게 보호받아야 하며 어떤 방향으로 새로이 나아가야 하는지 인간 노동의 미래를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본 기사에서는 편의상 ‘로봇’을 인공지능과 혁신 기술을 비롯한 4차 산업혁명 전반을 포괄하는 단어로 사용했다.)

로봇에게 빼앗기기 시작한 일자리
2017년 영국 옥스퍼드대 연구팀의 논문은 로봇의 도입과 자동화로 미국 전체 직업의 절반가량이 사라질 수 있다는 경고를 전했다. 그로부터 몇 년이 지난 지금도 로봇으로 인한 일자리 감소를 체감할 수 있다. 한국은행이 지난해 12월 발간한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근로자 1000명 당 로봇 한 대를 도입할 경우제조업과 단순 업무 직종의 구인 인원 증가율은 각각 2.9%포인트와 2.8%포인트 하락하는것으로 나타났다. 국민대 소프트웨어학과 이재구 교수는 이에 대해 “노동은 효율성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발전해왔다”며 “같은 맥락에서 로봇의 노동은 인간의 노동을 상회하는 효율을 갖추고 있으므로 미래에는 로봇이 인간 노동력을 대체할 것”이라 설명했다. 실제로 키오스크 시장의 경우 1999년에는 10억 원 규모에 불과한 규모였지만 현재는 30배 이상 성장해 3000억 원 이상으로 평가받고 있다. 키오스크로 직원 한 명을 대체한다고 가정했을 때 키오스크 도입 비용은 200만~300만 원 수준으로 단 두 달이면 그 비용을 회수하고 효율을 극대화할수 있다. 단순 반복만을 필요로 하는 업무나 제조업의 직군에서 인간의 노동력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게 된 것이다.

유령노동, 로봇을 위한 노동이 시작되다
로봇은 기존의 일자리를 대체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노동 개념의 변화를 일으킨다. 서울과기대 디지털문화정책과 이광석 교수는 “로봇의 도입은 인간이 생산에 간접적으로만 참여하는 노동 형태들을 양산한다”며 “로봇만이 직접적인 생산을 담당하며 인간은 로봇을 위한 허드렛일을 도맡는, 피폐한 인간 노동 형태가 등장할 가능성이 크다”고 경고했다. 실제로 인공지능 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유령노동이라는 개념이 등장했다. 유령노동자는 기계 뒤에서 투명 인간처럼 일하는 노동자들을 지칭한다. 인공지능이 사진을 인식할 때의 정확도를 높이기 위한 이미지 바운딩, 즉 사진 속 물체들에 사각형의 박스를 입히는 작업이 유령노동에 해당한다. 인간이 임금을 받고 작업한 이미지 바운딩을 기반으로 학습한 인공지능이 실질적인 결과물을 만들어낸다. 로봇이 노동에 투입되며 눈에 보이지 않는 중간 과정, 말 그대로 ‘유령’노동이 생긴 것이다.

노동 패러다임의 전환
한편 기술의 발전에 따른 노동의 변화를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시각도 있다. 이재구 교수는 “인간은 과거의 불필요한 노동에서 해방돼 여유로운 시간을 갖게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즉 땀을 흘리는 육체적인 노동의 관점에서 벗어나 문화를 생산하는 등의 새로운 산업군을 창출할 수 있으리라는 것이다. 한국직업능력개발원의 2021년 조사에 따르면 초등학생이 희망하는 직업 4위는 *크리에이터였다. 과거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크리에이터가 유튜브와 같은 디지털 플랫폼의 발달로 등장하며 새로운 선호 직업으로 떠오른 것이다. 이재구 교수는 “구체적인 방향은 아직 모호하지만 분명 시간을 소모하기만 하는 노동을 탈피해 새로운 가치를 인정받는 새로운 노동이 창출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노동 패러다임의 전환과 함께 인간과 로봇의 공존을 모색하려는 노력도 진행되고 있다. 특히 인공지능이 인간의 전유물이라 여겨졌던 예술과 창작의 영역까지 넘나들며 관련 논의에 박차가 가해졌다. 이광석 교수는 “머신러닝을 통해 피카소의 화풍을 똑같이 구현하는 인공지능 피카소가 나올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인간만이 지닌 창작 능력이 소멸되지는 않는다”며 “사진과 영상 등의 뉴미디어 아트가 미술을 대체하지 못했던 것처럼 인간과 인공지능은 서로 공존하면서 진화할 것”이라 설명했다. 

변화된 노동, 변화될 윤리
이렇듯 노동은 로봇의 도입으로 그 개념부터 현상까지 다각도로 변화하고 있다. 그러나 로봇이 차지하는 노동 비중이 늘어난 만큼 인간 사회에 필요한 윤리까지 갖췄는지는 아직 미지수다. 인공지능은 이미 생성된 데이터를 토대로 학습을 진행하기 때문에 데이터 속의 편향을 그대로 흡수한다. 2016년 마이크로소프트가 공개한 ‘테이(Tay)’는 트위터 사용자들과 대화하며 언어를 학습하는 AI 챗봇으로, 공개된 지 24시간이 채 지나지 않아 서비스가 중단됐다. 인터넷 사용자들로부터 욕설과 인종차별을 학습해 이를 그대로 따라했기 때문이다. 이광석 교수는 “인간의 수많은 사회적 편견이 반영된 데이터로 인해 인공지능은 그 편견을 재생산할 가능성이 높다”며 “기술과 노동의 발전에만 집중하기보다는 그것이 우리 사회를 제대로 운영하는 데 도움이 되는지 성찰하는 시각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실제로 지난해 9월 미첼 바첼라트 유엔 인권 최고대표는 유엔 인권이 사회의 개막 연설에서 인공지능에 대해 합당한 안전대책이 마련될 때까지 인권침해의 우려가 있는 인공지능의 판매와 사용을 중지할 것을 촉구했다. 인간 중심의 노동을 위한 교육 역시 요구된다. 발전하는 인공지능에 끌려가기보다는 이를 이해하고 활용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다. 이재구 교수는 “첨단 기술과 공존하며 이를 도구로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며 “내 분야와 환경에 맞는 인공지능을 적재적소에 맞게 선택하고 활용하는 방법을 대학 교육에서부터 고민하고 준비해야 한다”고 전했다. 노동의 흐름은 이미 바뀌었다. 건강한 노동을 위한 새로운 논의가 필요하다.

◇크리에이터=유튜브 등의 디지털 플랫폼에서 주제를 가지고 영상 및 방송 등을 제작하는 사람.
 

마이크로소프트가 공개한 AI 챗봇 테이. ⓒ경향신문 캡처
마이크로소프트가 공개한 AI 챗봇 테이. ⓒ경향신문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