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황수지 기자 (bungeeinme@naver.com)

문화인과의 동행 - 레더가든 가죽공방 고혜리 대표

 

가죽은 가방, 옷과 가구 등의 형태로 우리 주변에서 오랫동안 조용히 사랑받고 있다. “가죽의 가장 큰 매력은 사용하면서 완성된다는 거예요. 사람의 향기, 손의 온도와 수분감에 따라 다르게 길들기 때문이죠.” 공방의 선반에서는 전문가의 손길로 다양한 색과 모양을 가진 차별화된 가죽 공예품을 볼 수 있었다. 수천 번의 망치질로 정교하게 새겨진 꽃 그림의 옷을 입은 가방이 눈에 띄었다. 가죽 속 꽃이 살아 숨 쉬는 듯한 레더가든 가죽공방의 고혜리 대표를 만나봤다.


색을 더하고 문양을 새겨
유일무이한 작품을 만들어요

충청북도 충주시에 위치한 레더가든 가죽공방은 가죽 공예뿐만 아니라 가죽 염색과 카빙 기술을 가르치는 공방이다. 가죽 염색은 마른 휴지를 이용해 기본적인 색을 입히는 1차 염색 과정과 가죽의 주름과 질감을 살려주는 2차 염색 과정을 거친다. 그 뒤에는 물 빠짐을 방지하는 방수 가공과 가죽이 딱딱해지는 것을 막는 오일 가공을 한다. “가죽 염색에 있어 방수 가공과 오일 가공이 가장 중요해요. 이 과정은 물 빠짐과 질감의 변화를 방지해 가죽의 생명력을 더해주기 때문이죠.”

가죽 카빙은 매끈한 가죽의 표면에 그림을 그린 후 그림을 따라 망치질하며 가죽을 위로 띄워 올리거나 누르면서 입체감을 더하는 작업이다. 1차 염색 이후 가죽 카빙을 통해 모양이나 이니셜 각인을 새겨 넣는다. 고 대표는 가죽 카빙을 하는 것과 *수지판으로 가죽에 모양을 찍 어내는 것은 확연한 차이가 있다고 말했다. 수지판을 이용하면 보통 1~1.5mm 정도의 입체감을 줄 수 있지만, 가죽 카빙은 2cm 이상의 입체감을 만들 수 있다. “가죽 카빙을 통한 입체감은 만드는 사람의 능력에 달려있어요. 마음만 먹으면 양각과 음각에 6cm의 차이를 만들 수 도 있죠. 가죽 카빙은 고도의 기술이 필요한 작업이자 본인의 개성을 담을 수 있는 중요한 작업이기에 이를 통해 공방의 차별화를 두려고 노력해요.

인생 2막을 열게 해준 가죽 공예
고 대표는 처음부터 가죽 공예와 관련된 직업을 가졌던 것은 아니다. “결혼하고 아이를 낳은 후 하던 일이 끊겨 산후 우울증을 겪게 됐어요. 그러다 가족 중에 가죽 공예를 하는 분이 있어서 우울증을 극복할 겸 가죽 공예 특강을 받게 됐죠.”
가죽 공예 특강은 고 대표가 우울증을 극복하고 잊고 있던 손재주를 발견하는 계기가 됐다. 고 대표는 “중학교 때부터 바지와 치마를 리폼해서 입었어요. 바지를찢거나 손바느질로 안감을 덧대기도 했죠. 지금 생각해보면 공방 일을 하기 전부터 공예를 좋아했던 거예요”라고 말하며 미소를 지었다.

손재주가 좋은 고 대표도 처음에는 가죽 공예 일이 익숙지 않아 어려움을 겪었다. 그런데도 고 대표는 공방을 차리기 위해 밤낮을 가리지 않고 가죽 공예를 공부했다. “제 목표는 사람들에게 일회성 체험만을 제공하는 게 아니라 가죽 공예에 대한 견문을 전달하는 공방을 차리는 거예요. 그러다 보니 전문적인 지식을 가지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해 가죽의 역사 등 이론적인 공부도 게을리하지 않았죠.”

정다움이 가득한 레더가든 가죽공방
오전 10시, 공방이 오픈하자 수강생이 오기 시작했다. 고 대표는 중년 남성 수강생에게 안부를 묻고 가죽이 굳었으니 따뜻하게 만져주라고 조언했다.
고 대표는 가죽이 남녀노소 불문하고 다양한 사람에게 사랑받기에 가죽 공예 수강생들의 연령층도 다양하다고 말했다. “가죽 공예가 여성 수강생에게만 인기가 많을 거라 생각하지만 중년층 남성 수강생들이 카빙된 가죽 제품에 관심을 보이기도 해요. 학생들도 공방을 창업하기 위해 많이 찾아와요.”

레더가든 가죽공방은 마감 과정에서 테두리에 고무를 덧대는 방식을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전통 방식으로 마감하는 것을 고수한다. 고 대표는 “약품 처리를 한 단면을 *우드슬리커로 온종일 문지르는 방식”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고 대표는 마감 과정이 지루하고 힘들지만 수강생이 자기 작품에 애착을 가지고 완벽히 마감하는 모습을 보면 미소를 짓게 된다고 말했다. 고 대표는 수강생에게 공예를 가르치며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때가 가장 보람을 느끼는 순간이라고 전했다. “제게 수업받은 분들이 저를 ‘우리 선생님’이라고 소개할 때 가장 행복했어요. 취미로 배우는 공예 일지라도 잘 가르쳐야 한다는 사명감을 가지고 일하는데 이런 말을 들을 때 일할 맛이 나는 것 같아요.”

버섯으로 만든 비건 가죽을 사용해보다
지난해 6월, 고 대표는 국립원예특작과학원과의 협업으로 버섯으로 만든 비건 가죽을 사용해 열쇠고리와 카드 지갑을 제작했다. 비건 가죽 공예 작업은 안감을 많이 덧대는 등 작업 과정에서 손이 더 많이 간다. “비건 가죽이 기존 가죽과 같은 튼튼한 내구력을 가지도록 많은 약품 처리를 거쳐요. 이 과정을 거쳐서 그런지 가죽이 숨을 쉬지 못한다는 느낌을 받았고, 약품 처리를 거쳤음에도 비건 가죽이 여전히 기존 가죽에 비해 강하지 못하다는 생각이 들었죠.”

고 대표는 비건 가죽이 지금보다 상용화되기 위해서 지속적인 연구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밝혔다. “제가 작업한 비건 가죽은 기존 가죽의 특성을 완벽히 재현하지는 못한 것 같았어요. 환경적 의의가 있으면서 비건 가죽을 이용한 공예품 제작을 늘리려면 기술의 발전이 필요하다고 느꼈죠. 환경을 생각하는 움직임에 대한 지원도 발전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취미를 넘어 치유로
최근 청년들 사이에서 가죽과 공예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청년 가죽공방이 늘고 있다. 고 대표는 사람들에게 공예가 친숙하게 다가가는 것 같아 뿌듯함을 느낀다고 말하며 청년 공방을 꿈꾸는 이들에게 조언했다. “요즘엔 정부나 지자체에서 월세나 인테리어를 지원해주는 제도가 마련돼 있지만, 단기적인 느낌이 강해요. 그 뒤로 공방을 어떻게 운영할지는 오롯이 청년들의 노력에 달려있죠. 지속적인 지원과 더불어 이후의 운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청년도 특화된 기술을 찾아 자신만의 브랜딩을 구축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고 대표는 앞으로 가죽 공예가 사람들을 치유하는 활동으로 여겨지기를 원한다고 말했다. “현대인들에게 정신적 건강을 챙기기는 쉽지 않아 보여요. 제가 가죽 공예를 하며 치유하는 경험을 했듯 사람들의 정신적 건강을 위해 가죽 공예와 같은 취미가 보편화되면 좋겠어요.”


◆수지판=가죽에 무늬를 새길 때 쓰는 인쇄판. 수지판의 양각과 음각으로 가죽에 무늬를 만든다.
◆우드슬리커=가죽 단면을 매끄럽게 하기 위해 나무로 제작된 도구.

 

사진 | 황수지 기자 bungeeinme@
레더가든 가죽공방의 내부.
고 대표가 만든 가죽 공예 가방.
고 대표가 비건가죽으로 만든 열쇠고리.
ⓒ레더가든 가죽공방 공식 블로그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