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김채연 기자 (bungssa21@g.skku.edu)

인사캠 만남 - 장유승(한문 94) 동문

인생의 의미를 찾던 여정에서 마주한 고전연구원의 길
16세기 조선과 21세기 한국을 연결하는 교량이 되고 싶어

 

“요새 ‘어쩌다 공무원’이라는 말이 있잖아요, 사실 저도 ‘어쩌다 교수’예요.” 인터뷰를 담담히 이어 나가는 장유승(한문 94) 동문에게서 인생의 본질을 꾸준히 탐색하려는 철학가의 면모가 엿보였다. 그가 말하는 ‘어쩌다’가 품은 사연은 무엇일지, 20여 년간 고전 한국학에 매진해 온 장 동문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우연처럼 다가온 옛 철학
“한문학과가 흔하지 않은 전공이라서 선택한 이유를 많이 물어봐요. 재밌게 답하자면, 비관적이던 사춘기 시절의 경험이 저를 한문학으로 이끌었기 때문이에요.” 장 동문은 한문학에 관심을 뒀던 소년 시절을 회상했다. “세상이 무상하게 느껴졌던 시기에 우연히 동양 고전을 알게 됐어요. 그때 한창 도올 김용옥 선생이 활동하던 시기라 당시 인기 있던 동양철학에 눈길이 가게 됐죠.” 그는 한문학과에 진학하게 된 큰 계기는 없었지만 고전을 친숙하게 접해본 일이 전공 선택으로 이어졌다고 설명했다.

내적 갈등의 연속이었던 대학 시절
“공부에 한해서는 좌충우돌이었죠.” 장 동문은 자신의 대학 시절을 간결하게 표현하며 다양한 학문을 접했던 대학 시절을 소개했다. “지적 호기심이 충만해서 동양철학이나 사학 등 한문학과 관련된 다른 전공을 찾아 들었어요. 그 때문에 졸업 학점을 10학점도 더 넘겼던 것 같아요.” 그러나 장 동문의 학업이 순조롭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공부에 회의를 느끼기도 했어요. 한문학 공부를 계속해도 괜찮을지 걱정을 많이 했어요.” 그는 그가 겪었던 상실감을 털어놨다. “자신의 공부에 열의를 가지고 묵묵히 할 일을 해나가는 학생들이 있어요. 그런데 저는 다섯 시간을 공부하면 한 시간만 재미를 느꼈죠.” 대학 시절에 겪은 무기력을 어떻게 극복했는지 묻자 고민할 시간에 공부하면서 직접 행동해 이겨냈다는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줬다.

장 동문은 대학교 1학년부터 3학년까지 약 3년간 야간학교에서 학생들을 대상으로 국어를 가르쳤다. “사회에 이바지하면서도 한문학을 응용할 수 있는 일을 찾다 보니 봉사에 참여하게 됐어요.” 이어서 그는 학생들을 가르치며 자신이 느꼈던 봉사활동의 뿌듯함을 말했다. “야학생은 생계 때문에 공부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학생이 대부분이에요. 그래서 대학을 목표로 삼으시는 경우가 많은데, 제 강의를 통해 공부 자체에서 재미를 찾아내기 시작할 때 보람을 느꼈어요.”

장 동문은 대학교 2학년부터 한국고전번역원(이하 번역원)에 진학해 대학 전공 공부와 번역원의 교육과정을 동시에 이수했다. “도올 김용옥 선생은 나라의 기초를 두텁게 하려면 고전 번역이 잘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어요. 이런 점도 번역원에 진학한 이유 중 하나였죠.” 그는 번역원과 대학 교육과정의 차이를 언급하며 수학(修學)의 가치를 강조했다. 장 동문은 대학에서는 작품을 비평하는 법을, 번역원에서는 전문적인 한문 해독법을 배웠다고 한다. “우리가 왜 학문을 공부해야 하는지, 해당 학문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는 대학만이 가르쳐줄 수 있죠. 이런 깨달음 덕분에 작품을 바라보는 본인만의 시각이 생겨요.”

왜곡된 역사를 바로잡는 고전연구원의 사명
장 동문은 대학 졸업 후 곧바로 경기도 성남에 있는 한국학대학원(이하 대학원)에 진학했다. 그는 대학 시절 한문학을 토대로 폭 넓게 공부한 경험이 대학원 진학으로 이어졌다고 말했다. “졸업 바로 직전인 1997년은 IMF로 경기가 안 좋은 시절이었죠. 고전을 계속 공부할 생각이었으니, 여러 대학원 중에서도 현실적인 부분을 고려해 학비와 기숙사비가 모두 무료인 대학원에 진학했어요.” 이후 대학원을 졸업한 장 동문은 서울 대학교에서 국어국문학 박사 학위를 취득 했다.

장 동문은 한국학 중 고전 한국학, 그중에서도 조선시대 한문 기록을 연구한다. “관심 분야는 현대 한국인이 생각하는 한국의 전통, 그리고 오늘날 한국인의 관념이에요. 최근에는 잘못 알려진 전통을 연구중이에요.” 한 가지 예를 들어달라는 말에 그는 눈을 반짝이며 고사성어인 ‘장유유서’를 설명했다. “지금은 이 고사성어가 나이의 많고 적음을 구분하는 데 활용되지만, 사실은 친족 관계의 윤리를 설명하는 단어예요. 유교 사회는 나이가 아니라 항렬이 중심이니까요.” 장 동문은 이처럼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을 밝히는 일이 고전연구원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또한 장 동문은 연구교수로서 대학생과 대학원생을 대상으로 낯선 고전을 어떻게 가르칠지 늘 고민한다고 전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고전을 도덕책으로 생각하면 안 된다며 우리가 고서를 받아들일 때의 주의할 점을 덧붙였다. “고서에 항상 윤리적인 내용만 담긴 건 아니에요. 그저 현대의 우리와 비슷한 사고방식을 가진 과거의 사람들이 남긴 기록이라고 바라보면 돼요.” 그는 고전을 통해 오늘날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냐는 물음에 고전을 바라보는 자신의 관점을 설명했다. “고전의 교훈을 무작정 현재 상황에 대입할 수는 없어요. 시대상을 고려해서 적절히 활용해야 하죠.”

장 동문은 고전을 공부하면 세상 이치를 넓은 시야로 바라볼 수 있다며 고전이 우리에게 남기는 의미를 말했다. “예를 들어서 사회문제가 발생했을 때, 고전을 비롯한 인문학은 겉으로 드러난 원인만 파악하기보다는 숨겨진 다른 요인은 없을지 생각해 볼 길을 열어줘요.”

글쓰기가 콤플렉스였던 작가
장 동문은 책을 집필하고 신문사에 칼럼을 기고하는 등 작가의 삶을 이어 나가고 있다. 그는 대학 시절까지만 해도 글을 못 쓰는 점이 콤플렉스였다며 글을 쓰며 살게 될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고 웃으며 전했다. “우연히 글을 쓰게 됐어요. 작은 연구소에서 의뢰받아 시작했는데 지금은 정기적으로 기고하는 작가가 됐네요.” 덧붙여 그는 고전에 관해 글을 쓰는 일은 자신의 존재 가치를 생생히 느끼는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연구만 하다 보면 현실과 단절돼서 제가 조선 시대에 살고 있는지, 21세기에 살고 있는지조차 헷갈려요. 그런데 고전을 다루는 제 연구가 글을 통해 현재와 연결되죠. 그 과정에서 제 존재를 확인할 수 있어요.”


그는 2013년에 『쓰레기 고서들의 반란』을 출판했다. 본 저서는 고서로서의 가치가 낮다고 평가받은 *섭치를 파헤쳐 고서 해석의 새로운 시각을 제시한다. 장 동문은 고서는 서지학에서 다루는 분야로 그의 전공인 한문학과는 거리가 멀다고 설명했다. 비전공분야에 관해 집필한 일은 그에게 새로운 도전이었다. “기존의 연구와는 달리 비전문가의 시선에서 바라본 연구 형식 이었기 때문에 오히려 대중의 흥미를 끌었던 것 같아요.”

장 동문은 책의 가치는 그 내용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는 고서에 대한 통념을 언급하며 기존과는 다른 자신의 신선한 시각을 제시했다. “사실 고서 전문가는 책의 가치를 물리적인 성격으로 평가해요. 책이 오래된 건지, 무슨 활자로 찍었는지, 어떻게 만들었는지와 같이 순전히 물리적인 부분만 다뤄요. 물론 물성을 외면할 수는 없지만, 책은 내용이 제일 중요하죠.” 장 동문은 최근 들어 일상적인 내용이 주목받는 이유를 전했다. “과거에는 시를 기록용으로 줄곧 적어왔어요. 요즘 우리가 블로그에 일기를 쓰거나 SNS에 댓글을 적는 행위와 유사한 거죠.” 동시에 그는 일상 기록을 분석할 때의 유의점을 조심스럽게 언급했다. “일상적인 기록이라서 항상 내용의 진위를 확인해야 해요. 글의 전체적인 맥락 내에서 사실과 허구의 구분은 필수예요.”

장 동문은 “우리 사회에서 대중서의 역할을 하고 싶어요”라며 자신을 고서에 비유하며 한문의 보급을 촉진한 대중서의 역할을 설명했다. “조선 시대 고서는 한문을 아는 몇몇 소수를 위한 책이었어요. 후기에 이르러서야 신분제가 무너지고 출판이 발달하면서 대중서가 나오기 시작해요.” 이어 그는 고서연구원으로서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려는 의지를 보였다. “우리 현실과 이어져 피부로 느낄 수 있는 내용을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어요.”

시작은 우연이었더라도 끝까지 사력을 다하길
“인생은 모두 우연이에요. 그 우연한 계기나 기회를 놓치지 말고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하라고 말하고 싶어요.” 그는 두렵더라도 용기를 내서 도전해봤던 경험을 이야기했다. “작가가 되고 난 후 작문 콤플렉스를 극복하기 위해 서점 책꽂이 한두 칸 정도에 있는 작문서를 다 읽었어요. 그 정도 노력은 필요한 거죠. 글을 쓰기 시작한 것도 우연이지만 그것을 진지하게 마주한 결과 고전 분야의 한 집필진으로 자리 잡을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성균관에서의 새로운 시작
장 동문은 단국대 연구교수 생활을 마치고 이번 학기부터 우리 학교 한문학과 조교수로 부임한다. 우리 학교에 조교수로 오게 됐다는 그의 말에서 모교에 대한 애정이 느껴졌다. “이전에도 여러 대학에서 강의했어요.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성균관대에서 강의할 때가 가장 마음 편하고 학생들도 친근하게 느껴졌어요. 물론 연구도 계속하겠지만, 무엇보다 학생들에게 도움이 되도록 노력해야겠죠.”

◇ 섭치=여러 가지 물건 가운데 변변하지 아니하고 너절한 것. 본 책에서는 일상적이고 흔한 내용의 고서를 가리킨다.

장유승(한문 94) 동문. 사진 | 김채연 기자 chaeyeonkim@
장유승(한문 94) 동문. 사진 | 김채연 기자 chaeyeonki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