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최재원 기자 (cjjjaewon@skkuw.com)

자과캠 만남 - 박형수(건축공학 97) 동문

좋아하는 일에 빠져 살던 소년, 건축에 빠지다
공공의 행복을 꿈꾸는 건축가로 나아가다

 

'소유의 건축에 공공성의 공간이 조금씩 더해져 도시가 함께 행복해지기를 바라는 마음'  박형수(건축공학 97) 동문이 직접 설립한 건축사무소의 신조다. 건축가로서의 목표를 자신이 직접 만든 건축물을 통해 실천하고 있는 박 동문을 만나 그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로봇 제작을 꿈꾸던 소년, 건축공학과에 진학하다
“어릴 때의 꿈은 건축가가 아니었어요.” 어린 시절의 장래 희망을 묻는 말에 대한 박 동문의 답은 예상 밖이었다. 박 동문은 7살 때부터 플라스틱 모델 제작을 즐겼다. 로봇을 만드는 게 꿈이었다는 그는 중학교 때부터 기계과 진학을 꿈꿨다. 기계과에서 진로를 바꾼 건 고등학교 때 아버지의 말씀 때문이었다. “저희 아버지는 평생 공무원을 하셨던 분이셔서 당신의 아들은 본인만의 기술을 갖고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있으셨나 봐요.” 로봇을 만드는 걸 좋아했으니 건축 쪽으로 가보는 게 어떻겠냐는 아버지의 제안을 듣고, 박 동문은 고민 끝에 건축공학과에 진학했다.

건축에 빠지기 시작하다
그렇게 건축공학과에 진학했지만, 입학 초기 박 동문은 공부에 집중하기보다는 노는 것에 관심이 많았다고 회상했다. 학창 시절부터 축구, 농구 등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만 몰두하는 성격이었다는 그는 대학 진학 후 ‘못갖춘마디’라는 어쿠스틱 밴드 동아리에 들어갔다. 박 동문은 2년간 못갖춘마디에서 활동하며 음악에 빠졌다. 동아리 활동만 했던 건 아니다. 박 동문은 고향인 대구에서 처음 서울로 올라와 가보고 싶은 곳도 많았다. “고향인 대구를 떠나 서울에 처음 올라왔을 때 모든 세상이 신기해서 많이 놀러 다녔어요. 친구들과 소개팅도 하고 여행도 자주 다녔죠.” 박 동문이 건축에 본격적으로 빠지게 된 시기는 군대를 전역한 후였다. 박 동문은 전역 후 건축 동아리에 들어갔고, 친구들과 밤을 새우며 건축 작업을 하던 과정에서 전공에 재미를 붙였다. 그렇게 건축은 박 동문이 가장 좋아하는 일이 됐다. “생각해보면 저는 좋아하는 일을 계속 찾았던 것 같아요. 좋아하는 일을 찾고 나서는 그 일에 몰두하며 열심히 했고요.”

건축공학과에 다니며 가장 좋았던 순간으로 박 동문은 졸업 학년을 꼽았다. 건축공학과는 4학년이 되면 설계실에 자기 자리가 주어진다. “친구들과 설계실에 모여서 온종일 설계하고 건축 이야기를 하는 순간이 너무 좋았어요. 그때 기억과 생활이 너무 좋아서 아마 지금까지 이 업을 계속하고 있는 것 같아요.” 하지만 힘들었던 순간도 있다. 박 동문은 건축에는 정답이 없는 점이 가장 힘들었다고 털어놓았다. “나름대로 열심히 했지만, 기대치만큼 평가받지 못했을 때는 ‘내가 이 분야에 소질이 없나’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어요. 슬럼프를 극복하는 과정이 굉장히 힘들고, 결국 포기하는 친구들도 많아요.”

그런데도 건축가로 일하는 이유
그렇다면 박 동문은 건축가가 된 지금, 이런 고민을 어떻게 극복했을까. “사실 아직도 제가 잘한다고 느끼지는 않아요. 건축은 힘들고 지루한 작업이고, 건축주를 설득하는 과정에서 제가 옳다고 생각하는 방향이어도 받아들여지지 않는 경우가 매우 많거든요.” 그런데도 박 동문이 건축을 놓지 못하는 이유는 초반에 그림을 그리고 모형도 만들며 상상했던 건물이 몇 년 후에 실제로 지어진 걸 봤을 때의 감정 때문이다. “완성된 건물을 봤을 때의 느낌은 정말 매력적이에요. 그만둬야겠다고 말하다가도 건물을 보는 순간 마음이 누그러지고 ‘내가 이래서 이 일을 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이것이 박 동문이 긴 시간 동안 계속해서 건축 일을 하는 이유다.

건축주를 설득하는 건 건축가의 중요한 업무 중 하나다. 박 동문은 설득되지 않는 건축주를 만날 때 어려움을 겪는다고 전했다. 건축주와의 소통에서 의견이 맞지 않을 때는 어떻게 할까. “반 정도는 건축주의 의견을 수용할 때도 있지만 도저히 수용하기 어렵다면 모형을 제작해 보여드리기도 한다. 비전문가들은 공간을 상상하는 게 힘들기 때문에 모형을 만들어 계속 고객들을 설득하는 편이에요.”

실제 건축주를 설득해 좋은 성과를 냈던 경험도 있다. 박 동문이 지었던 아림타워가 그 사례다. 아림타워는 일반적인 건물처럼 직육면체 형태가 아닌 모서리 하나가 완결되지 않은 형태로 돼 있고, 그 열린 공간 안에는 서어나무가 심어져 있다. “처음에는 건축주께서 저희의 제안을 이해하지 못하셔서 저희가 인근의 공공을 위해서 필요하고 그게 건물의 가치를 더 올릴 거라고 건축주를 설득했어요.” 그렇게 박 동문의 지속적인 설득으로 결국 박 동문이 원하는 형태로 건물이 지어졌고, 현재는 건축주도 만족해 박 동문에게 새로운 건물의 건축 작업을 맡기고 있다.

박 동문이 건축주의 반대를 무릅쓰고 선택한 디자인에는 그의 건축가로서의 가치관이 담겨있다. “서어나무가 있는 아림타워의 1층을 의도적으로 비워냈던 이유는 코너에 위치한 아림타워 사이로 사람들이 편하게 지나다녔으면 하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에요.” 박 동문은 항상 그런 공공 공간을 만들고자 노력한다. 또한 그는 건축주가 요청하는 건물을 짓는 게 건축가의 역할이라고 말하면서도 개인 소유의 건물들이 모여 도시를 만들기 때문에 공공의 가치도 잃지 말아야 함을 역설했다. 박 동문은 자신의 가치관을 소유의 건물에 공공의 공간을 설계하며 사람들에게 전달하고 있는 셈이다. “건물을 지을 때 내 욕심을 조금만 덜어내면 여러 사람이 공유할 수 있는 공간이 생겨요. 그러면 건축주도 내가 세상에 기여하고 있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실 수 있고요. 모두가 조금씩 욕심을 덜어내면 전체가 행복해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제가 계획했던 건물에서 사람들이 편하게 웃으면서 시간을 보내는 걸 볼 때 가장 뿌듯해요.” 박 동문은 자신이 지은 건축물을 종종 방문해 살펴보는 편이다. 사람들이 자신이 설계한 건물을 즐겁게 사용하는 모습을 보면 행복감을 느끼지만, 가슴 아픈 점도 있다. “제가 전혀 의도하지 않은 방향으로 건물이 변하면 속상함을 느낄 때도 있어요. 꼭대기에 장식물을 단다든지, 어딘가를 덧댄다든지 할 때요. 건축주의 마음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긴 합니다.” 그래서일까. 앞으로 지어보고 싶은 건물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박 동문은 미술관이라고 답했다. “미술관은 아무래도 개인의 욕망이 덜 들어가는 건물이거든요. 건물의 주인이 미술품이다 보니까 빛을 쏘는 방식, 공간을 구획하는 방식 등을 다양하게 실험해 볼 수 있는 장이기도 하고요.”

프로의 마음가짐으로 짓는 건물
“너무 괴로웠어요.” 첫 건축에 참여했던 순간이 기억나냐는 질문에 대한 그의 답이다. 박 동문이 처음 회사에서 했던 프로젝트는 다른 회사와 경쟁해야 하는 설계 공모였다. 두세 달 동안 늦은 시간에 퇴근하는 힘든 시기가 계속되며, 박 동문은 이 직업이 자신에게 맞지 않는지 고민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 당시 경험했던 시행착오는 시간이 지나며 박 동문에게 좋은 자양분으로 남았다. “프로젝트를 대하는 마인드가 학생에서 프로로 완전히 변하게 된 계기였던 것 같아요.” 박 동문은 학생과 프로의 차이가 무엇이냐는 기자의 질문에 “학생은 프로젝트가 있으면 끝낼 수 있는 기준을 자기 마음대로 정할 수 있지만, 프로는 그럴 수 없는 것 같다”고 답했다. “팀 작업이고 회사에서 원하는 수준이 있기 때문에 그 기준까지 도달해야 하죠. 일을 완벽하게 끝내지 않으면 안 된다는 교훈을 얻었어요.”

박 동문이 지은 건물 중에 눈에 띄는 건물이 있다. 바로 우리 학교 학생회관 리노베이션 건물이다. 리노베이션은 기존 건물을 헐지 않고 재보수해 사용하는 것을 뜻한다. 기존 건물에서 어떤 것을 빼고 어떤 것을 더할 것인지는 박 동문에게 큰 고민거리다. “철거해보지 않는 이상 기존 건물이 어떻게 돼 있는지 잘 모르고 변수도 굉장히 많아서 설계하는 데 제약이 많아요.” 그러나 리노베이션 건물에서만 느낄 수 있는 쾌감도 있다. 새로운 것과 오래된 것이 조화롭게 어울릴 때의 쾌감이다. “학생회관 같은 경우에는 기존의 벽돌과 새로 한 천장재가 어우러졌을 때의 모습이 굉장히 고풍스러워요. 그런 건 리노베이션 건물에서만 느낄 수 있는 맛이죠.” 하지만 박 동문은 리노베이션을 할 때 무조건 옛것을 따라야 한다고 생각하는 편은 아니라고 답했다. “이전 설계자의 의도를 파악하는 게 가장 중요해요. 건물이 현재 어떻게 사용되고 있는지를 보며 설계하셨던 분의 의도를 파악하고, 리노베이션을 하는 과정에서 그 부분이 퇴색되지 않도록 신경 쓰는 편이죠.”

후배들이 학교생활을 더 즐겼으면 좋겠어요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을 묻는 질문에 박 동문은 학교생활을 마음껏 만끽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기회가 많은 나이잖아요. 취직에 얽매이지 않고 조금 더 모험을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 나이에만 할 수 있는 경험, 생각을 많이 했으면 좋겠어요.” 그 또한 저학년 때 친구들과 여행을 자주 다녔고, 당시의 경험은 모두 건축할 때 도움이 됐다. 박 동문은 건축가를 꿈꾸는 사람들에게도 한 마디를 전했다. “건축은 매력적인 작업이에요. 하지만 동시에 힘들기도 해요. 섣불리 들어오기보다는 조금 더 인내하고 진지한 마음가짐으로 들어오시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마지막으로 박 동문에게 5년 후 자기 모습은 어떨지 물었다. 박 동문은 “사무실에서 조금 더 많은 팀원과 다양한 프로젝트를 하고 있을 것 같다”고 답했다. “큰 욕심은 없고 저는 좋은 팀원들과 오래 했으면 좋겠어요. 그게 제 목표입니다.”
 

박형수 (건축공학 97) 동문 사진 | 최재원 기자 cjjaewon@
박형수 (건축공학 97) 동문. 사진 | 최재원 기자 cjjaew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