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김은미 기자 (qewret16@skkuw.com)

신당역 스토킹 살해 사건, 수사기관과 사법부의 미온적 대처로 인한 참사

스토킹처벌법 개정 넘어 근본적인 인식 개선 필요해

지난달 14일 신당역에서 스토킹 살해 사건이 발생했다. 피해자가 신고와 고소 등 할 수 있는 모든 조치를 취했다는 점에서 ‘막을 수 있는 죽음이었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스토킹범죄 처벌 등에 관한 법률(이하 스토킹처벌법)이 시행된 지 1년이 다 돼 가는 지금, 스토킹처벌법은 피해자를 안전하게 보호하고 있을까.

신당역 스토킹 살해 사건, 피해자는 보호받지 못했다

가해자 전주환(31)씨는 지난달 14일 밤 9시경 신당역에서 순찰을 돌던 피해자 A씨를 살해했다. 전씨가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이하 성폭력처벌법)과 스토킹처벌법 위반 혐의로 1심 선고를 받기 하루 전이었다. 전씨는 지난 8월 18일 징역 9년을 구형받자 앙심을 품고 범행을 계획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서울교통공사 입사 동기인 A씨에게 사적 만남을 요구했다가 거절당하자 2019년 11월부터 지난해 10월까지 2년간 불법촬영물 유포 협박과 스토킹을 이어왔다. 이에 A씨는 지난해 10월 성폭력처벌법 위반 혐의로 전씨를 고소했다. 고소 후 지난해 11월부터 올해 2월까지도 스토킹을 지속한 전씨는 올해 1월 스토킹처벌법 위반혐의로 추가 고소됐다.

충분히 보호를 받을 수 있는 상황이었음에도 살해 사건으로 이어져 수사기관과 사법부에 책임을 묻는 목소리가 잇따랐다. 정부는 사건 발생 후 피해자를 보호하기 위해 스토킹처벌법 개정을 추진하겠다고 발표했다. 특히 △반의사불벌죄 조항삭제 △구속수사 및 잠정조치 4호의 적극적 활용 △피해자 보호조치 강화 등을 빠르게 검토하겠다고 했다. 그렇다면 스토킹처벌법은 왜 이제까지 A씨와 같은 피해자를 보호할 수 없었던 걸까.

피해자 보호 어렵게 만든 ‘반의사불벌죄’

현재 스토킹처벌법에는 반의사불벌죄 조항이 포함돼 있다. 이 조항에 따라 가해자가범죄를 저질렀더라도 피해자가 원치 않으면 처벌이 이뤄지지 않는다. 조선대 법학과 이원상 교수는 “스토킹이 일정 부분 사적 영역의 문제라는 시각을 바탕으로 당사자 간 해결할 수 있는 기회를 보장하기 위함이다”라고 그 이유를 설명했다. 

그러나 합의를 위해 연락을 취하는 행위 자체가 스토킹의 일환이라는 점이 지적된다. 이는 지난해 10월 스토킹처벌법이 통과될 때까지 전문가들로부터 꾸준히 제기돼온 비판이다. 전씨도 1차 고소 후 A씨에게 합의를 종용하는 문자메시지 등을 20여 차례 보냈다. 김정혜 한국여성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가해자가 합의를 하겠다며 피해자에게 접근하는 과정은 스토킹 행위의 연장선”이라며 “이는 피해자를 보호하기 어렵게 한다”고 설명했다. 

피해자에게 처벌 여부를 선택하게 만들어 부담을 지운다는 문제도 있다. 허민숙 국회입법조사처 조사관은 반의사불벌죄를 삭제할 필요성을 언급하며 “피해자가 고소를 취하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보복범죄가 일어날 수 있다”고 전했다.

구속 판단 시 가해자의 재범 위험성 고려돼야

스토킹 가해자에 대한 낮은 구속률 역시 문제로 제기됐다. 가해자의 구속은 스토킹피해자와 가해자를 분리하는 방법으로 쉽게 떠올릴 수 있는 조치다. 그러나 경찰청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10월부터 올해 6월까지 검찰에 송치된 스토킹 범죄자 4,554명 중5.6%인 254명만이 구속됐다.

전씨에 대한 구속조치 역시 이뤄지지 않았다. 총 두 차례 고소 중 1차 고소에서는 법원이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주거공간이 일정하고 증거인멸이나 도주 우려가 없다는이유에서다. 2차 고소의 경우 경찰이 피해자에게 연락하지 않겠다는 전씨의 진술을받아들여 구속영장을 신청하지 않았다. 경찰대 행정학과 한민경 교수는 “두 번의 구속기회를 놓쳐 범행을 선제적으로 차단할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형사소송법에 따르면 구속은 △피고인의 주거가 일정하지 않을 때 △증거인멸의 우려가 있을 때 △도망할 우려가 있을 때 이뤄질 수 있다. △범죄의 중대성 △재범의 위험성 △피해자 보호 등을 고려해야 한다고 규정돼있지만 실제로 반영되는 경우는 많지 않다. 한 교수는 “스토킹 범죄는 높은 확률로 다시 발생한다”며 “재범위험성을 비중있게 검토하는 등 기존과 다른 대응 방식을 취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판단기준 없는 ‘잠정조치 4호’

대부분의 구속수사는 증거 수집을 목적으로 이뤄진다. 따라서 구속여부를 판단할때 피해자 보호를 우선적으로 고려하기는 어렵다. 이에 스토킹처벌법은 ‘잠정조치 4호’를 통해 가해자를 유치장 또는 구치소에 유치할 수 있도록 했다. 그러나 잠정조치 4호 역시 적극적으로 활용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달 16일 기본소득당 용혜인의원이 경찰청과 법무부로부터 받은 '스토킹처벌법 시행 이후 잠정조치 신청 결과' 자료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7월까지 신청된 잠정조치 4호 500건 중 55%에 달하는 275건이 기각됐다.

높은 기각률의 원인으로는 잠정조치에 있어 명확한 판단기준이 없다는 점이 지목된다. 구체적 기준이 없어 판사마다 판결이 상이하고, 구속이나 체포의 기준을 이용해잠정조치 4호 승인 여부를 판단한 사례도 있기 때문이다. 이 교수는 “잠정조치는 구속이나 체포와는 엄연히 목적이 다르다”며 “현재로선 피해자 보호에 대한 적절한 판단이 이뤄지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보호’조치로도 보호받지 못하는 피해자들

스토킹처벌법은 피해자 보호조치로 잠정조치와 긴급응급조치를 명시한다. 잠정조치는 법원의 결정이 필요한 조치로, 앞서 언급된 4호 이외에도 △서면 경고(1호) △100m 이내 접근금지(2호) △통신기기 접근금지(3호)가 있다. 긴급응급조치는 긴급한 상황에서 법원의 결정 없이도 수사기관이 피해자와 가해자를 분리할 수 있도록 한다. 이를 통해 100m 이내 접근금지와 통신기기접근금지 명령을 내릴 수 있다.

그러나 피해자 보호 조치가 이뤄진 후에도 대부분의 가해자는 범행을 반복한 것으로 나타났다. 9월 19일자 동아일보에 따르면 스토킹처벌법에 따라 형이 확정된 156개의 사건 중 80.7%에서 잠정조치와 긴급응급조치가 내려진 후에도 가해자가 범행을 이어갔다. 이에 대해 한 교수는 “긴급응급조치위반에 대한 행정적 처분이 과태료에 불과한 영향도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현행법상 잠정조치를 위반할 경우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 원 이하의 벌금이 부과되며 긴급응급조치는 1,000만 원 이하의 과태료만 부과된다.

가해자가 접근금지 명령을 준수했는지 확인할 방법이 없다는 것도 높은 위반율의 원인이다. 허 조사관은 “가해자의 접근을 실질적으로 차단할 수 없는 현재의 피해자보호조치가 아닌 다른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말했다. 접근금지 명령을 넘어 더욱적극적인 조치를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어 그는 “미국 테네시주는 스토킹 가해자를 감시하기 위해 GPS를 활용하는 제도를 시행 중”이라며 “우리나라도 피해자가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적극적인 조치를 취할 때”라고 전했다.

스토킹에 대한 인식 개선이 선행돼야

한편 이번 사건에서 정부가 발표한 대응은 대부분 이전부터 제시돼 온 것들이다. 지난해 11월 발생했던 스토킹 살해 사건인 ‘김병찬 사건’ 때에도 경찰은 비슷한 대처를 취했다. 당시에도 잠정조치 4호를 적극 활용하고 긴급응급조치 위반 시 형사처벌이 이뤄지도록 하겠다고 발표했으나 별도의 조치는 없었다. 동일한 대응 방안이 반복해서 논의되고 있지만 시행으로 이어지지 못한 것이다.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법 개정은 물론 수사기관과 사법부의 인식 개선을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스토킹처벌법에서 규정하는 처벌 수위를 통해 법이 아직도 스토킹을 가벼운 범죄로 여기고 있음을알 수 있다. 스토킹처벌법에서는 흉기를 소지하지 않은 스토킹 범죄에 대해 징역 3년 혹은 3,000만 원 이하의 벌금을 처한다. 이 교수는 “스토킹처벌법에서 징역 3년은 집행유예가 가능한 수준의 처벌이다”라며 “스토킹 범죄를 가볍게 본다는 방증”이라고 지적했다.

스토킹의 위험성을 인지하고 대처가 시급한 사안이라는 인식이 필요하다. 허 사무관은 “타 국가에서는 스토킹이 살인사건의 전조 증상이라는 연구 결과가 다수 등장했다”며 “우리나라에서도 스토킹 사건을 깊이 있게 분석해 수사 기법을 고도화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신당역 스토킹 살해 사건이 남긴 과제가 해소될 수있도록 스토킹처벌법과 관련 주체들이 함께 나아가야 할 때다.

신당역 스토킹 살해 사건이 벌어진 역사 내 화장실 앞 추모 공간. 사진ㅣ최혜리 기자 hyeeeeeli@
신당역 스토킹 살해 사건이 벌어진 역사 내 화장실 앞 추모 공간. 사진ㅣ최혜리 기자 hyeeeeeli@

 

출처: 국가법령정보센터, 「스토킹범죄 처벌 등에 관한 법률」
출처: 국가법령정보센터, 「스토킹범죄 처벌 등에 관한 법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