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송선교 기자 (ddoong0404@naver.com)

자과캠 만남 - 오현주(생명공학 05) 동문

숫자와 과학을 좋아하던 학생이 마주한 방송이라는 꿈

학교라는 울타리를 넘어 다양한 세상을 경험하길

“오늘도 시청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매 주말 저녁, 오현주(생명공학 05) 동문은 앵커로서 TV조선의 뉴스를 책임지고 있다. 동시에 오 동문은 정치부 기자로서 우리나라 정치의 면면을 취재하며 알리고 있다. 오늘도 뉴스를 진행하며 세상의 소식을 전해주는 그를 시민들의 목소리가 가득한 광화문광장 주변 카페에서 만났다.

신약 개발자가 되고 싶었던 학창시절

오 동문은 어린 시절 눈에 보이는 현상에 대해 호기심을 품는 아이였다. “언어나 사회 현상보다 숫자나 과학을 좋아했어요. 어렸을 때 차 안에서 창밖을 보면서 왜 달이 자꾸 쫓아오는지를 아버지께 여쭤봤던 기억이 나요.”

오 동문은 항상 살아가는 이유를 찾아야 한다는 부모님의 가르침을 받고 자랐다. “고등학교 시절 아버지께서 아프신 적이 있었는데 그때 여러 사람의 도움을 받았어요. 도움을 통해 생명도 이어갈 수 있다는 것을 느꼈고 도움을 주는 사람이 되기로 결심했죠.” 오 동문은 신약을 개발해서 사람을 돕겠다는 꿈을 이루기 위해 생명공학과에 진학했다.

삶의 전환점을 맞이한 대학 시절

오 동문은 대학 시절의 추억을 회상했다. “도서관 앞 넓은 잔디밭에서 선후배들과 짜장면을 시켜서 먹었던 기억이 나요.” 생명공학이라는 학문과 달리 실험에는 흥미가 없던 오 동문은 당시 진로에 대한 고민으로 가득했다. “DNA를 추출하는 실험에서 계속해서 실패했어요. 생명과학 분야에서는 가장 기본적인 실험 중 하나였는데 어려움을 느껴 실험은 적성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죠.”

2학년 여름방학에 떠났던 해외 봉사 활동은 오 동문에게 삶의 전환점이 됐다. “카자흐스탄 고려인의 집에 갔는데 TV에서 KBS가 나오고 있었어요. 한국을 너무 사랑해서 한국의 소식을 듣기 위해 돈을 내고 위성을 깔았다며 자랑스러워하셨어요.”

한국을 좋아하는 고려인의 모습을 신기해하던 그때, 오 동문은 집중호우 피해 상황을 보도하는 TV 속 화면을 생생히 떠올렸다. “물 위에 돼지가 떠내려가는 영상을 보곤 고려인께서 심각한 표정으로 한국에 정말 큰일이 났다며 기도를 하셨어요.” 오 동문은 이 순간이 깨달음을 얻은 순간이자 방송인이라는 꿈을 갖게 된 계기라고 말했다. “카자흐스탄은 가뭄이 심한 나라여서 인공비를 뿌릴 정도였는데 고려인께서 진심으로 우리나라를 걱정하시는 모습이 신기했어요. 방송의 위대함을 느꼈고 이것이 제가 꿈꾸던 진정한 선한 영향력이라 생각했죠.”

한국으로 돌아온 오 동문은 현재 환경에서는 방송인으로서의 준비가 어렵다고 생각해 인사캠으로 꿈의 발판을 옮겼다. “수학을 이용해 사회 현상을 배우는 경제학과로 복수 전공을 했어요. 진로와 관련된 내용을 배우면서 학점도 잘 받기 위함이었죠.”

오 동문은 대학 생활에 아쉬움을 보이기도 했다. “나름대로 빡빡하고 치열하게 살았지만 돌아보니 우물 안 개구리처럼 학생 때만 할 수 있는 것을 누리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진로를 바꾼 오 동문의 대학 생활은 쉴 틈 없이 바빴지만 일찍 졸업해서 경력을 쌓아야겠다는 생각에 그는 휴학하지 않고 바로 졸업했다. “지금 돌이켜보면 없는 돈을 모아서라도 여행을 다녔으면 좋았을 것 같아요. 다양한 동아리에 가입하거나 이리저리 여행을 떠나며 견문을 넓혔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아요.”

여러 방송을 거쳐 지금의 기자가 되기까지

“23살에 졸업하자마자 일단 방송국에 입사해야겠다는 편협한 생각을 갖고 있었어요. 그래서 눈에 보이는 대로 어떤 역할이든 시험에 지원하고 봤죠.” 방송에 대한 열정으로 무작정 뛰어든 방송계에서 오 동문은 몇 번의 시행착오를 겪기도 했다. “골프장 리포터에 지원했는데, 가서 보니 얼굴은 하나도 안 나오고 옆에서 질문만 하는 역할이었어요. 당시 자괴감도 들고 ‘내가 원하던 건 이런 게 아닌데’라는 생각에 이 일을 계속해야 하는지 의문도 들었죠.”

오 동문은 6개월의 시간 동안 다양한 경험을 쌓으며 공부했고 마침내 OBS의 기상 캐스터 직에 합격했다. 그는 기상캐스터라는 직업을 통해 1년 동안 방송에 대한 기초를 다질 수 있었다고 말했다. “기상캐스터는 1분 30초의 시간 동안 혼자 방송을 이끌어 가야 해요. 원고도 스스로 작성해야 했는데 이 과정에서 방송의 기본을 많이 배웠어요.”

새로운 분야에 도전하고 싶다고 생각한 오 동문은 KBS 스포츠 아나운서에 도전했다. 오 동문은 두 번의 시험 끝에 스포츠 아나운서가 됐다. 그는 스포츠 아나운서로 일하며 생방송에 필요한 자질을 갖출 수 있었다고 말했다. “야구 경기 직후에 선발 투수 인터뷰를 준비할 때 *끝내기 홈런이 나와버리면 즉석에서 홈런을 친 선수에게 인터뷰 질문을 해야 해요.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홈런 친 선수가 처음 보는 신인이면 관련 정보가 없으니 머릿속이 새하얘지곤 했죠.”

오 동문은 주중에는 경기 현장에서 일하고 주말에는 스튜디오에서 ‘아이 러브 베이스볼’이라는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경기 현장에서의 경험은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데 큰 도움이 됐죠. 훗날 인터뷰를 많이 하는 방송인이 되겠다는 꿈을 심어주기도 했고요.”

하지만 오 동문은 외모가 하나의 중요한 요소로 여겨지는 스포츠 아나운서의 특성에 부담을 느끼기 시작했다. “스포츠 하이라이트가 나가는 동안 시간이 나면 대본을 보고 공부해야 하는데 거울을 보고 있는 제 모습에 회의감이 들었어요. 현장에서 가져온 이야기를 바탕으로 나만의 방송을 만들면 진정한 방송인으로서 오래 일할 수 있겠다고 생각돼 기자와 앵커를 겸직하는 일에 지원했어요.”

뉴스로 차갑게 세상을 바라보고, 따뜻하게 사람들을 감싸다

오 동문은 기자와 앵커 일을 하며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으로 세월호 사건과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당시를 꼽았다. “세월호 사건 당시 속보를 전달하면서 나의 말 하나하나가 생명을 살리기도 죽이기도 한다는 중압감을 느끼며 기자와 앵커로서의 사명감을 다질 수 있었어요.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때도 대한민국 헌정사상 처음 일어나는 일을 기록하고 있다는 사실에 자부심을 느꼈죠.”

또한 그는 가장 보람을 느끼는 순간이 언론을 통해 사회가 바뀌는 모습을 볼 때라며 최근 검수완박에 반대하는 인권변호사와의 인터뷰를 떠올렸다. "변호사님께서 검수완박이 통과되면 어려운 사람을 돕기 힘들어지는 상황에 대해 언론에서 여러 번 안타까움을 표현하셨어요. 결국엔 관련 법안이 어려운 사람을 보호할 수 있도록 소폭 수정됐죠."

오 동문은 기자와 앵커를 하며 힘든 점을 질문하자 뉴스에서 개인과 사회의 부정적인 모습만이 드러나는 것이라고 답했다. “이 일을 하다 보면 남의 잘못이나 치부를 파헤쳐서 드러내야 할 때도 있죠. 사람들은 모두 각자의 사정이 있을 텐데 나쁜 면만 방송에서 비춰야 한다는 점이 힘들었어요.” 그는 이어 부정채용 사건을 취재한 경험을 소개했다. “이 사건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면 지연에 따른 부정채용으로 보이지만 당사자의 말을 들어보면 부정채용이 아니라는 주장도 충분히 이해가 갔어요. 하지만 공정한 채용이 아니라는 기사를 보도했고 당사자는 받아들이고 사임했죠.”

오 동문은 주중 메인 뉴스를 진행할 당시 ‘착한 뉴스’라는 새로운 코너를 만들었다. 해당 코너에는 뉴스의 부정적인 모습을 극복하고자 한 그의 의도가 담겨있다. “세상이 항상 삭막하기만 한 건 아니잖아요. 사람들이 뉴스를 봤을 때 따뜻함을 느끼게 해주고 싶었어요.” 오 동문은 착한 뉴스를 준비하며 매일 일어나는 선한 일을 취재하고 스스로 원고를 작성했다. 오 동문은 이 코너를 개설한 것이 그가 해온 일 중  가장 잘한 일이라며 웃음을 지었다.

오 동문은 순직한 공무원의 유가족 인터뷰에서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눈물을 흘린 이야기를 들려줬다. “정말 펑펑 울었던 거 같아요. 감정을 같이 느껴줘서 고맙다는 반응도 있었고 앵커가 감정 조절도 못 하면서 어떻게 뉴스를 이끌어가겠냐는 반응도 있었죠.” 이후 세월호 사건을 보도하면서 오 동문은 또 한 번의 눈물을 보였다. “눈물이 나오는 상황에서는 슬픔을 억누르려고 하지 않는 것이 진행에 도움이 돼요. 이전의 경험을 통해 저만의 노하우이자 철학을 만든 거죠.” 이후 오 동문은 이성과 감정 사이 앵커로서 가져야 할 마음가짐에 대한 깊은 고민에 빠지기도 했다. “뉴스도 결국 사람의 이야기를 다루잖아요. 그러니 앵커가 감정을 드러내는 것을 금기시하는 분위기에서 이제는 벗어나도 된다고 생각해요.”

기자를 넘어 또 다른 방송의 꿈으로 

오 동문의 최종 목표는 본인의 이름을 건 토크쇼를 여는 것이다. “제가 지금까지 인터뷰하면서 쌓아온 능력을 활용해서 시청자들에게 더 많은 영향을 주고 싶어요. 토크쇼를 통해서 사람들의 마음을 어루만져주고, 희망을 주고, 용기를 주고 싶어요.”

오 동문은 후배들이 뉴스에 많은 관심을 갖기를 희망했다. “현재 사회는 특권을 가진 소수의 사람들이 움직이고 있다고 생각해요. 그들을 견제하고 막을 힘은 학생을 비롯한 다양한 사람들이 목소리를 내는 것에서 시작됨을 알고 뉴스를 접하면 좋겠어요.”

마지막으로 그는 20대를 겪고 있는 후배들에게 견문을 넓히기를 조언했다. “대학 시절 봤던 세상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일찍 알았더라면 지금과 다른 삶을 살고 있었겠다는 생각도 해요. 학교라는 담장을 넘어 새로운 세상을 자주 경험하면 좋겠어요.”


◇끝내기 홈런=야구에서 승리를 결정지으며 경기를 끝내는 홈런.

사진ㅣ송선교 기자 songso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