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박찬주 기자 (chanjupark7@gmail.com)

주체적이고 입체적인 여성 인물과 그들의 연대를 다뤄

여성 서사를 주목하지 않아도 되는 시대가 도래해야

tvN 드라마 작은 아씨들TV 화제성 분석 기관 굿데이터코퍼레이션이 발표한 TV 드라마 화제성 부분에서 5주 연속 1, 2위를 차지하며 많은 관심을 받았다. ‘작은 아씨들은 은둔 비리 조직 정란회의 여러 악행에 세 자매가 대응하는 모습을 통해 돈과 욕망을 그리는 드라마다. 해당 드라마에는 능동적인 여성 인물이 다양하게 등장하고 여성 연대를 통해 가부장적 자본주의에 도전하는 서사가 담겨 있다. 여성 서사 작품이란 무엇이며, 어떤 흐름을 타고 우리에게 찾아왔을까.


여성 서사는 □□이다?
여성 서사를 정의하고자 하는 시도는 지속해서 진행되고 있지만 명확한 규정은 어렵다. 여성에 의해 창작됐거나 여성이 다수 등장한다는 몇몇 조건만으로 검증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매체 속의 여성을 조명하는 방식으로 미국 만화가 앨리슨 벡델이 고안한 영화 성평등 테스트 벡델 테스트가 사용되기도 한다. 올해 열린 벡델데이 2022’는 벡델 테스트 7을 기반으로 성평등 관점에서 유의미한 성과를 보인 한국 영화 10편을 선정했다. 벡델 테스트 7은 기존 벡델 테스트에 현 시대상을 반영한 항목을 추가한 것으로, 그 기준에는 이름을 가진 두 명 이상의 여성이 등장할 것’, ‘그 두 명이 서로 대화를 나눌 것등이 있다. 고려사이버대 문화예술경영학과 김은영 외래교수는 벡델 테스트는 기존 콘텐츠의 한계를 명확히 인식하도록 돕는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전했다. 그러나 그는 이를 통과했다고 해서 모두 유의미한 여성 서사 콘텐츠라고 볼 수 없다해당 테스트를 활용하는 방식에 대해 지속된 고민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밝혔다. 이처럼 특정 기준으로 재단할 수 없는 여성 서사 작품은 다양한 변화를 거쳐 현재에 이르렀다.


여성 서사, 어떻게 변화했나
한국 TV 드라마의 여성 인물들은 대체로 대상화되거나 단편적인 모습으로 등장했다. 신데렐라와 악녀는 정형화된 여성 인물의 대표적 예시다. 기존에는 상류층 남성의 사랑을 받아 사회 계급이 상승하는 신데렐라가 주로 주인공으로 등장했다. 악녀는 시어머니와 재벌가 사모님, 혹은 성공한 여성이나 성공 욕망을 가진 여성으로 그려졌다. 이들은 세련된 형상으로 등장해 순진한 여주인공을 폭압했다. 국립군산대 국문과 이다운 교수는 그간 한국 TV 드라마 속에서 성공을 욕망하는 여성은 처벌 대상이 됐고, 그렇지 않은 여성은 구원받아 계급적 상승을 이뤘다고 설명했다.

2010년대 중반에 이르러 여성 서사에 대한 관심이 증대됐다. 자기 삶을 개척하는 능동적인 여성 인물이 등장하는 작품들이 주목받았다. 이에 대해 김 교수는 사회적으로 젠더 감수성이 높아지며 여성이 자신의 욕망을 표출하는 것이 이전보다 자유로워졌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여성의 사회·경제적 지위 상승과 더불어 구매력이 높아진 것 역시 관련이 있다고 덧붙였다.


여성 인물, 어떻게 그려지나
최근 여성 서사 작품에 등장하는 여성들은 주체적으로 본인의 문제를 해결하고 자신의 욕망을 실현하는 경향성을 보인다. tvN 드라마 스물다섯 스물하나의 여주인공 나희도는 자신의 목표를 향해 전진하고 망설임 없이 자신의 의견을 밝히는 인물이다. 그는 자신이 속한 펜싱 팀이 없어진 상황에서도 펜싱 선수라는 꿈을 실현하기 위해 스스로 돌파구를 찾고 이후 올림픽 메달리스트로 성장한다.

또한 여성 서사 작품에는 더욱 입체적인 면모를 가진 여성 인물이 등장한다. 지난 9일 종영한 작은 아씨들의 핵심 인물인 오인주는 짝퉁 명품 가방을 메고 부자 남성과의 결혼을 꿈꾸는 속물적인 인물로 그려지지만, 가족 혹은 가족 같은 관계의 여성을 위해 죽음을 불사하기도 한다. 오인경은 정의를 추구하는 인물이면서도 알코올에 중독된 이로 그려진다. 충남대 국문과 윤석진 교수는 인물들의 허점과 단점을 담아내서 단편적이고 대상화된 인물이 아니라 현실처럼 입체적인 인물이 형성된다고 설명했다.

'스물다섯 스물하나' 포스터
ⓒ채널 'TVING' 유튜브 캡쳐.
'작은 아씨들' 속 오인주가 다른 여성을 구하러 온 장면.
ⓒ인스타그램 @tvn_drama캡쳐.

워맨스’, 연대하는 여성들
여성 간의 깊은 우정과 연대를 의미하는 워맨스도 인기를 끌었다. 평소 여성 서사 작품을 자주 시청하는 김서진(사학 21) 학우는 기존에 여성의 시기와 질투만 담는 진부한 구조들이 많았다면, 최근에는 갈등하기도 하지만 서로 연대와 우정을 나누는 다층적 면모가 등장하며 공감과 몰입이 용이해졌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워맨스는 서로 지지하고 응원하는 여성들이 힘을 모아 불합리를 타개하는 연대를 보여주는 것에 의의가 있다는 의견을 전했다. 이러한 여성들의 우정을 워맨스라는 특정 단어로 표현하는 것은 그간 드라마에서 여성들의 우정이 많이 다뤄지지 않았음을 반증하기도 한다.

워맨스가 등장한 드라마의 예로 TVING 오리지널 드라마 술꾼도시여자들이 있다. 해당 드라마는 세 여성 간의 우정을 현실적으로 그려내 주목받았다. 주인공들은 술에 취해 살벌하게 싸운 뒤에도 친구가 괴한에 의해 위험에 처하자 한달음에 달려가 돕고, 가족의 장례식장에서도 서로의 곁을 지킨다.
술꾼도시여자들에 나온 3인 워맨스도 최근 여러 작품에서 자주 출현하고 있다. 이러한 구조가 자주 등장하는 이유는 드라마 속 갈등을 용이하게 조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편 산업적 측면을 제시하는 견해도 있다. 드라마 산업의 규모가 커지면서 흥행 등 제작자의 입장에서 부담이 큰 원톱물보다는 3인 체제가 더 선호되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드라마 서사 전개의 측면을 이야기하기도 한다. 이 교수는 “2인 체제의 경우 서사가 채워지기 부족하고, 4인은 오히려 서사가 복잡하고 단편화될 수 있다“3인의 서사는 다채롭고 시청자가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다고 설명했다.

'술꾼도시여자들' 속 친구 아버지의 장례식을 찾아온 주인공들.
ⓒ채널 'tvN드라마' 유튜브 캡쳐.

여성 서사에서 일반 서사로 나아가기까지
현재 여성 서사 작품이 증가하는 추세지만 절대적인 숫자는 부족한 실정이다. 또한 기존의 남성 인물 서사를 여성에게 부여한 것보다는 진일보한 인물이 등장하는 작품이 늘어날 필요가 있다. 윤 교수는 성별이 전환돼 여성적 질서에 남성이 억압당하는 모습의 등장은 여성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를 강화할 수 있다는 우려를 전했다.

이상적인 여성 서사로 나아가기 위해서 시청자들의 역할도 중요하다. 문제가 있는 부분들은 적극적으로 비판하고, 긍정적으로 조명할 여지가 있는 작품들은 수용하며 콘텐츠 소비자들로서 의사를 드러내야 한다이 교수는 한국 TV 드라마는 면밀한 책임의식을 바탕으로 여성 인물을 창조해야 한다궁극적으로 여성 서사에 주목하지 않아도 되는 시대가 도래해야 한다고 전했다.

일러스트ㅣ서여진 기자 duwls19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