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김신혜 기자 (iriskim053@naver.com)

트라우마 경험 후 고통을 느끼는 것은 자연스러운 과정
당사자가 아니라도 어려움을 느낄 수 있어

지난달 29일 발생한 이태원 참사는 많은 이들의 목숨을 앗아갔다. 이에 따라 가족과 친구를 잃은 이들은 물론, 이태원 참사 소식을 접한 국민들의 정신건강에도 적신호가 켜졌다. 간접적으로든, 직접적으로든 재난과 같은 충격적 상황을 마주하고 나면 사람들은 유사한 상황에서도 고통을 느껴 이상 증상을 보이기도 한다. 우리는 과거의 고통에 얽매이게 하는 트라우마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기억에서 쉽게 사라지지 않는 트라우마
트라우마는 좁은 의미에서 고통을 유발하는 충격적인 사건 자체를 의미하며, 넓게는 부정적인 감정이 되살아날 때 겪는 심리적 불안과 감정적 동요를 포괄한다. 한양대 정신건강의학과 김대호 교수는 “사랑하는 사람을 잃거나 지진과 같은 재난을 겪은 후 슬픔과 두려움의 감정을 느끼는 것은 트라우마 초기 반응에 해당하며, 이는 치료가 필요하지 않은 정상적인 반응”이라고 밝혔다. 시각·청각적 정보와 감정은 기억으로 저장되는데, 트라우마를 겪는 사람은 충격적인 상황에서 느낀 고통도 함께 장기 기억으로 저장한다. 한편 장기 기억이 만드는 신경 회로망은 감정과 생각을 담는다. 정상적인 장기 기억으로 인한 신경 회로망은 망각의 과정을 통해 사라지지만, 트라우마 관련 정보가 저장된 장기 기억이 만든 신경 회로망은 더 강하고 단단해 뇌에서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경희대 정신건강의학과 백종우 교수는 “장기 기억으로 인해 고통스러운 상황이 뇌에 그대로 남아있으면 일상적인 일에도 트라우마 증상을 보일 수도 있다”며 “환자들은 트라우마가 발생하는 특정 상황을 알 수 없어 더 고통받는다”고 밝혔다.

다 같은 트라우마가 아니다
트라우마는 개인을 특정 기억에 영원히 가두기도 한다. 지난 8월 강남에서 홍수 피해를 경험한 A씨는 “비가 많이 오면 그날이 생각나 외출을 꺼리게 된다”고 밝혔다. 학창 시절 부모님으로부터 체벌받았던 B씨는 “그 시절을 떠올릴 때마다 유난히 우울해진다”고 전했다. 전문가들은 이에 대해 ‘A씨와 B씨는 트라우마를 겪고 있다’고 판단한다. 트라우마는 그 규모에 따라 큰 트라우마와 작은 트라우마로 분류된다. 김 교수는 “A씨가 겪은 재난처럼 일상적이지 않은 사건이 개인의 삶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는 사건을 큰 트라우마라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B씨처럼 자신감 혹은 자존감을 잃게 만드는 일상적인 사건을 작은 트라우마라 한다”고 밝혔다.

트라우마는 사건 발생 횟수에 따라서도 분류될 수 있다. A씨처럼 충격적인 경험이 한번 일어난 경우를 단일 트라우마라 한다. 이 경우 가해진 충격은 한 번이지만 충격의 강도가 강하기 때문에 개인의 감정이 일상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반면 B씨처럼 트라우마를 반복적으로 겪어 감정조절의 어려움과 만성적인 수치심 등 복합적인 감정을 느끼는 것을 복합성 트라우마라 한다. 복합성 트라우마를 오래 겪으면 시간이 지날수록 자신감이 사라지고 우울해져 점점 더 무기력해진다. 백 교수는 “복합성 트라우마의 경우 약물치료뿐만 아니라 다양한 정신치료법을 장기간 지속할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

트라우마가 ‘원인’이라면, PTSD는 ‘질환’
트라우마는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이하 PTSD)와 같이 정신 건강을 악화시키는 원인이다. 한편 트라우마가 회복돼 긍정적인 삶의 의지가 발현되는 것을 외상 후 성장(이하 PTG)이라 한다. 김 교수는 “PTG를 겪는 사람은 트라우마 이전에도 몰랐던 삶의 의미를 발견하게 된다”며 “PTG는 자신이 겪었던 트라우마와 관련된 사회봉사, 기부 활동 등의 방식으로 나타난다”고 밝혔다. 반면 트라우마 발현 후 고통이 오랫동안 지속되는 환자는 PTSD를 진단받는다. 보통 트라우마는 자연스럽게 회복되지만 트라우마로 인한 고통을 자연적으로 회복하지 못하는 경우 PTSD가 발병한다. 다만 백 교수는 “모든 트라우마가 PTSD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기에 지속적인 연구를 통해 영향을 미치는 생물학적 및 사회적 요소를 정확히 파악하는 것이 의학계의 목표”라고 밝혔다.

혹시 나도 PTSD 환자?
PTSD 환자의 트라우마 발현 후 증상이 늦게 나타나면 자신이 PTSD를 겪고 있음을 자각하지 못할 수 있다. 백 교수는 “PTSD의 구체적인 증상에는 재경험, 과각성, 회피가 있다”고 설명했다. 재경험이란 현재 안전한 곳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트라우마와 관련 있는 고통스러운 기억을 떠올리거나, 꿈에서도 고통스러운 상황을 반복적으로 겪는 반응을 의미한다. 한편 스트레스 호르몬이 급격하게 증가하면 PTSD 환자는 과각성 상태를 보인다. 땀이 나거나, 심장이 빨리 뛰거나, 손발이 저리거나 어지러운 상태가 유지된다면 과각성을 의심해 볼필요가 있다. 마지막으로 트라우마를 연상할 수 있는 것이라면 무조건 피하는 행동을 회피라 한다. 예를 들어비행기 사고를 경험한 환자가 비행기 탑승을 힘들어하는 건 물론, 좁은 공간조차도 두려워하는 것이 회피에 해당한다.

백 교수는 “일상 속 다양한 PTSD 증상은 충분한 시간이 지난 후에는 나아질 수 있다”고 전했다. 김 교수는 “PTSD 환자의 주변인들도 PTSD 증상을 이해하고, 환자가 트라우마를 떠올리도록 자극하지 않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트라우마를 겪은 사람의PTSD 발병은 흔히 있는 일”이라며 “주위 사람들이 환자의 치료를 돕는다면 최대 1~2년 안에 충분히 회복할 수 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