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김채연 기자 (chaeyeonkim@skkuw.com)

사기 수법 지능적으로 발전해

정보 비대칭 해소가 핵심

성균이는 요즘 부동산 문제로 근심이 가득하다. 지금 살고 있는 원룸에 대해 공인중개사와 전세 계약을 체결했는데, 며칠 전 임대인으로부터 “3개월 치 월세가 밀렸다”는 전화를 받았기 때문이다. 알고 보니 공인중개사는 성균이와 전세 계약을 맺고 임대인에게는 월세 계약이라고 알려 보증금을 빼돌린 것이다. 곧장 공인중개사에게 연락했지만, 그는 이미 잠적해 버려 보증금을 돌려받을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성균이의 사례처럼 세입자의 보증금을 가로채는 범죄를 전세사기라고 한다. 전세사기는 왜 일어나는 것일까? 전세사기의 수법을 바탕으로 그 원인과 해결책을 찾아보자.

전세사기 초래하는 무리한 갭투자
전세란 세입자인 임차인이 임대인에게 보증금을 맡기는 조건으로 임대인의 집에 거주한 뒤, 계약기간이 끝나면 임대인으로부터 보증금을 다시 돌려받는 주택 거래다. 이는 임대인과 임차인의 경제적 이해관계를 모두 충족시킬 수 있는 방식이다. 임대인은 보증금을 또 다른 투자에 활용할 수 있고, 임차인은 월세와 달리 매달 임대료를 낼 의무가 없기 때문이다. 이때 보증금은 주택 매매가의 50~60%로 형성된다. 

전세의 발달은 우리나라 부동산 금융시스템의 영향을 받았다. 과거 우리나라 금융기관의 가계대출은 엄격한 편이어서 개인이 목돈을 만들기 어려운 구조였다. 반면 전세는 보증금으로 비교적 쉽게 목돈 마련이 가능해 개인들이 활발히 찾았다. 또한 아파트 공급이 급증하던 1970년대에는 임대인의 자금부담을 완화하기 위해 전세가 빈번히 사용됐다. 임대인이 새 아파트를 분양받아 임차인에게 전세를 주면 매매가와 전세금 차액만으로도 주택을 매입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후 전세는 더욱 활성화되며 2020년 기준 *일반가구 주택계약의 15% 이상을 차지할 정도로 자리를 잡아갔다.

그러나 최근 임차인을 상대로 한 전세사기가 증가하고 있다. 경기대 도시교통공학과 김진유 교수는 “갭투자를 통해 주택과 건물 매매를 무리하게 확장한 점이 전세사기의 주된 원인”이라고 설명했다. 갭투자란 시세차익을 목적으로 전세 임차인을 구하는 동시에 매매를 진행하는 투자방식이다. 때문에 매매 당시에는 매매가에서 전세가를 뺀 금액만으로 주택을 구매할 수 있다. 재작년 초부터 집값 상승기가 이어지자 임대인들은 갭투자의 범위를 늘렸다. 매입한 주택에 전세를 들여 보증금을 받고 해당 주택을 담보로 대출받은 후, 보증금과 대출금으로 또 다른 주택을 구입하는 식이다. 일부 임대인들은 이를 악용해 보증금 상환 능력이 없음에도 소유 주택을 늘려갔다. 그러나 작년부터 시작된 금리 인상 기조와 이에 따른 집값 하락에 임대인들은 대출 이자를 감당하지 못해 매물을 내놓거나 보유하고 있던 주택을 압류당했다. 이 같은 임대인의 파산으로 임차인들은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하는 전세사기를 당하게 된 것이다. 
 

대표 사기 유형은?
전세사기는 내용 및 범위에 따라서 다양하게 분류된다. 대표적인 전세사기 유형은 △대항력 악용 △이중계약 △무자본 갭투자 등이다. 이 중 고전적인 수법으로는 대항력 악용과 이중계약을 들 수 있다. 먼저 대항력 악용은 집에 대한 임차인의 권리를 주장하고 보증금을 지킬 수 있는 대항력의 효력 발생 시기를 교묘히 이용한 경우다. 대항력은 전입신고 다음날 발생하는데, 임대인이 그 전에 주택을 담보로 대출을 받아버리는 식이다. 예를 들어 임차인이 5월 15일 오후 2시에 전입신고를 완료하고 임대인이 같은 날 오후 4시에 주택담보대출을 받으면 대출의 효력은 당일 발생해 임차인의 권리가 후순위가 되고 만다. 그 결과 임차인은 대항력을 상실하게 되거나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할 수 있다.

이중계약은 공인중개사와 같이 임대인의 권리를 대신하는 대리인이 임대인과 임차인 모두를 속이고 금전을 취하는 경우다. 예를 들면 임대인에게는 월세 계약을 약속하고, 임차인과는 전세 계약을 맺은 후 보증금을 가로채는 수법이다. 2019년 경기도 안산시에서 공인중개사 중개보조원으로 일하던 자매가 이중계약을 통해 100여 명의 계약을 중개하는 과정에서 보증금 47억여 원을 빼돌리기도 했다. 

자기자본 없이 보증금으로만 다른 주택을 사들이는 무자본 갭투자 방식도 있다. 이는 매매가보다 전세금을 높게 설정해 임차인을 속인 후 보증금을 빼돌리는 수법이다. 지난해 기소된 ‘세 모녀 전세사기’의 경우 계획적으로 전세금을 부풀려 임차인 219명에게 보증금 497억여 원을 가로챈 혐의를 받았다.
 

조직적으로 지능화되는 수법
사건의 수법과 범위도 점차 복잡해지고 있다. 지난 2월 수면 위로 떠오른 ‘인천시 미추홀구 전세사기’ 또한 건축업자와 공인중개사 등 여러 세력이 가담한 대사기극이었다. 공인중개사들은 건축업자 A씨와 담합해 주택에 은행 대출이 있지만, 보증금에는 문제가 없다며 임차인들을 안심시키고 계약을 유도했다. A씨는 무자본 갭투자 방식을 이용해 보유 주택을 늘려나갔다. 하지만 빌라와 아파트의 전셋값이 계속 떨어지면서 대출금의 이자를 보증금으로 충당하기 어려워졌고 결국 주택이 경매로 넘어가게 됐다. 그러나 경매에서 낙찰되더라도 시중 은행과 같은 선순위 채권자의 채무가 변제되고 나면 임차인이 받을 수 있는 돈은 거의 없어 피해자들의 한숨만 늘고 있는 상황이다.
 

인천시 미추홀구 전세사기피해 대책위원회가 시위를 하고 있다.​​​​​​​​​​​​​​ⓒ인천일보 챕처
인천시 미추홀구 전세사기피해 대책위원회가 시위를 하고 있다. ⓒ인천일보 캡처


전세사기의 핵심, 정보 비대칭
전세사기는 법의 허점과 임대인과 임차인 간 정보격차를 노린다. 법무법인 로윈 조세영 변호사는 “전세사기의 주 대상이 되는 빌라는 계약 체결 시 얻을 수 있는 정보가 부족한 편”이라고 지적했다. 빌라는 아파트와 달리 실거래가 신고 의무가 없다. 아파트는 단지별로 평형과 건축구조가 정형화돼 있어, 일정 기간의 실거래가를 통해 시세를 산정할 수 있다. 그러나 빌라는 동일한 지역에 위치한 같은 평형의 건물이라도 생김새와 특성이 제각각이어서 시세정보가 제공되지 않는다. 이 때문에 인천시 미추홀구 전세사기처럼 건축업자와 임대인, 공인중개사 사이 담합을 통해 시세를 조작할 수 있었다. 또한 세금체납 여부, 사기 전력 등 임대인에 대한 정보 부족도 문제로 제기된다. 지난 3월까지만 하더라도 임대인의 재무 정보는 계약 체결 전 임차인에게 제공되지 않았다. 정보격차는 주택 계약에 익숙하지 않은 청년들에게 이중으로 부담이 되기도 한다. 김민률(경영 21) 학우는 “주로 공인중개사무소나 주변 지인에게 의존해 집에 대한 정보를 구할 수밖에 없었다”며 “임차인에게도 계약 정보가 충분히 제공되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전세사기 어떻게 예방할 수 있나
사회적으로 임차인에게 폭넓은 정보를 제공하고 안전한 거래환경을 조성할 수 있도록 대책이 요구되고 있다. 정부는 지난 2월부터 임대인과 임차인 간 정보 비대칭을 완화할 방안을 순차적으로 발표했다. 우선 계약 시 확인해야 할 주요 정보들을 한눈에 제공하는 ‘안심전세 앱’의 배포다. △세금체납 여부 △악성 임대인 명단 △적정 시세 등을 확인해 의심 매물 여부를 임차인이 사전에 판단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적정 시세는 주택매매가격에 대비한 전셋값의 비율인 전세가율과 경매낙찰가율을 바탕으로 계산한 값이다. 또한 정부는 일부 은행과 업무협약을 맺고 *확정일자 정보와 보증금을 확인한 뒤 대출을 실행할 방침을 발표했다. 대출 기준을 강화해 보증금 상환 능력이 있는 임대인에게만 대출이 가능하게 하는 것이다. 이외에도 임차인의 권리를 강화하는 내용과 피해자들에 대한 사후 구제 방안을 다수 담았다.

그렇지만 정부의 대책에 아쉬움을 표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지난 28일 ‘전세사기·깡통전세 피해자 전국대책위원회’는 전세사기 피해자 요건 충족이 까다롭다며 구제 대상에서 제외되는 피해자들에 대한 방안도 마련해야 한다는 의견을 밝혔다. 김 교수 또한 “실거래 정보가 공개되는 주택의 지번까지 명시하는 등 정보의 투명성을 더욱 제고해야 한다”며 “주택을 지나치게 많이 보유한 과다주택임대인에 대한 관리도 강화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한편 정부의 대책이 보완된다 해도 개인 차원의 노력도 필요하다. 조 변호사는 “전세와 같은 보증금 거래는 신뢰성이 낮은 사적 거래기 때문에 계약과정에서 개인이 안전장치를 많이 확인할수록 도움이 된다”며 그 중요성을 강조했다.

◆일반가구=1인 또는 2인 이상이 모여서 생계를 같이하는 가구.

◆확정일자=주택임대차계약의 체결 날짜를 증명하기 위해 계약서에 공증기관이 도장을 찍어준 날짜.